북한의 제7차 노동당대회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당대회 전에 핵실험과 같은 위협의 ‘축포’가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일단은 더 이상의 상황 악화조치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7차 노동당대회는 북한 ‘변화’에 대한 내외의 여러 기대와는 거리가 먼 당대회이기도 하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공식 사상노선으로 확정했으며, 핵무력 경제발전 병진노선은 더욱 강조되었고, 경제 분야에서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아니고 두리뭉실하게 ‘5개년 전략목표’만 제시되었다. 무엇보다 ‘하나의 조선’이 근래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다. 그리고 더 우려스러운 것은 김정은 총화보고에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 데는 평화적 방법과 비평화적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다 준비되여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이 언급은 ”남조선당국이 천만부당한 《제도통일》을 고집하면서 끝끝내 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우리는 정의의 통일대전으로 반통일세력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릴 것이며, (…) 민족자주와 민족대단결, 평화보장과 련방제 실현 (…)” 부분과 연결된다.   

사실 이번 당대회가 있기 전에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이번에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언급된 통일방침과 관련하여 이를 보다 정식화한 ‘연합연방제’ 통일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북한은 ‘하나의 조선’과 ‘연방제통일’을 더욱 소리높였다. 거기에 더해 ‘비평화적 방법’의 통일까지 이번 당대회에서 언급된 것이다. 

군사국가 북한과 6.15공동선언

분단·전쟁 체제 하의 북한 국가는 항일유격대의 경험이 그대로 굳어진 유격대국가, 선군(先軍)국가로 표상되는 매우 강고한 군사국가·안보국가이다. 북한의 안보국가는 스탈린시대 자본주의진영의 봉쇄전략에 맞섰던 안보-동원체제의 이식으로 출발하였고,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의 오랜 고립과 봉쇄 속에서 중공업·국방 중시노선이나 핵·경제 병진노선 등 북한 스스로 선택한 노선과 정책에 의해 군사국가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체제’의 본질적 속성으로까지 깊이 결합되었다. 

남한의 안보국가는 미국의 냉전전략 아래 미국의 안보국가 시스템이 일제 유산 위에 이식된 것이고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강력한 군사독재와 결합되었다가 87년 6월항쟁 이후 일정한 규율 속에 들어가게 된다. 시민항쟁은 안보국가에 대한 시민통제를 강화시켰고, 이명박 박근혜정부와 같은 보수정부의 안보국가 재강화와 회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보의 문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안보국가를 규율할 시민사회가 아직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북한의 경우에는 그 강력한 군사국가를 어떻게 규율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비평화적 방식’의 통일과 전군 전민이 고도의 격동태세를 유지하면서 통일대전에 임하겠다는 북한의 군사국가를 어떻게 ‘성찰’과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남한의 ‘선제적 군축’을 통해 북한의 변화와 나아가 동북아 질서변화를 추구하려는 평화국가론의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현실화된 조건에서는 군비증강을 통한 문제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한이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통상 전력의 축소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한반도에서 위협에 관한 인식을 전화시키는 것이 한반도 평화 보장을 위한 더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군비증강과 같은 도발적 방위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으나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소극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쌍방의 소통이 시작하여 상호 통제를 낮은 수준에서라도 시작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남북이 이미 6.15공동선언을 통해 남의 연합제와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한 역사적 합의가 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한반도적 맥락에서는 형식적으로는 남과 북의 두 주권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또 느슨한 수준이라도 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사실상 서로를 규율하는 낮은 수준의 상호통제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을 다루는 ‘오래된 방법’

두 주권국가가의 느슨한 연합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공영하겠다는 것을 구체적인 행동과 제도 등을 통해 현실화하는 노력이 전제된다. 이는 남북이 상호 인정과 공존을 위해 각기 자기중심의 국가주의를 ‘규율’해야 가능한 일이고, 남북이 각각 자신의 국가주의를 규율한다는 것은 곧 분단체제 아래 상대를 적대하는 쪽으로만 과대성장한 안보국가를 규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규율’에는 체제통일이나 비합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아니라, 남과 북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나 한미 양국의 핵 ‘확장억지력’은 물론이고 남의 경제적 흡수 위협이나 북한의 혁명주의적 대남공세는 상대에 대한 존재적 위협의 근원들이다. 

그래서 제7차 당대회를 새롭게 노선과 정책을 정비한 북한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은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다시 재검토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남과 북이 서로 최소한의 수준에서 군사적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상호 규율의 약속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이를 다시 남북관계의 전면에 내세우는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북한의 안보국가주의를(남한도 포함하여) 규율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국제연대와 다자간 협약의 추진이다. 이는 세 가지 문제영역을 포함한다. 우선 국제연대와 다자협약 추진을 위해서는 적대적 군사동맹에 가입하지 않거나 그것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전제가 된다. 남한의 경우 전시작전권 환수 등 적대적 군사동맹으로서의 한미동맹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동맹 재조정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로는 6자회담과 같은 틀을 공동안보를 위한 지역평화협력체제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는 다자간 협약의 틀에서 북한의 국가주의를 통제하는 유력한 방안이 된다. 유라시아프로젝트 혹은 남북러 가스관협력사업 등도 비핵화 추진과 관련한 다자간 경제프로젝트의 의미를 갖는다. 세 번째로는 민간 주도의 무장갈등 예방 노력인 ‘울란바토르프로세스’나 시민사회-의회의 공동 이니셔티브 아래 ‘동아시아평화회의’를 추진하려는 움직임 등의 ‘초국경적 시민운동’이 있다. 이는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경적으로 국가주의를 넘어서려는 시민외교 혹은 민간 국제연대라 할 수 있다. 

북한을 다루는 이런 방략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비평화적 방식’으로 전면항쟁의 다짐을 되새김하고 있는 북한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 ‘북핵문제 해결’만 주장하면서 핵 선제타격 대 핵 선제타격의 군사위기 심화는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상호소통을 시작하면서 6.15선언이 만들어낸 상호규율의 길에 다시 들어설 것인가. 선택은 명백하다. (*)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