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리틀 노무현’ 별명, 자랑스럽지만 부담돼”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사진=폴리뉴스 이은재 PD)
▲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사진=폴리뉴스 이은재 PD)

[폴리뉴스 이혜진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김두관 의원(초선‧김포 갑)이 대권 도전에 대해 “아직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며 사실상 준비 중임을 시사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면서도 “(국회 상임위원회로 배정받은) 기획재정위원회 활동이나 열심히 하라면서 ‘대권의 ㄷ자만 말해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자수성가형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은 이력으로 ‘리틀 노무현’이라 불리는 것과 관련해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서) 노 전 대통령이 제기했던 ‘균형 발전’을 계승했지만, ‘남북 평화’와 ‘저출산 고령화’ 같은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다만 (과거 노 전 대통령처럼) 경남에서 지역주의에 여러 번 도전한 점 때문에 언론에서 (리틀 노무현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첫 상임위를 기획재정위원회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선 “제가 행정자치부에서 지방 분권 및 자치와 관련된 일은 해봤지만 경제 전반을 운용해 본 경험이 없다”며 “여기(기재위)서 한 2년 정도 활동하는 동안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공부하다보면 아무래도 경제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가 경제 정책에 강한 대선 후보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다음은 김두관 의원과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88년 민중당 후보 출마 후 28년 만에 국회의원 당선돼

- 국회에 처음으로 등원하시게 된 소감은.

감회가 좀 남다르다. 국회의 문을 처음 두드렸던 때가 88년 민중당 후보로 하동‧남해에서 출마했을 때인데, 2016년에 (국회에) 왔으니 햇수로 치면 28년 만이다. 하동‧남해에서 3번 낙선하고, 김포에서 한 번 낙선 했으니까 4전5기만에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사실 제 고향에서도 국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안 주셨는데, (지난 2014년 상반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지) 만 2년이 채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김포 시민들이 저를 선택해주셔서 그 뜻을 무겁게 이해하고 있다.

김포가 빠르게 성장‧발전하면서 교통‧교육 인프라 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지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직에) 도전도 했고 국무위원(행정자치부 장관) 했으니까, 저를 선택하면 지역의 여러 가지 현안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신뢰가 (유권자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사실 ‘(경남에서 온) 철새’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보궐선거 뒤) 2년 간 원외위원장을 하면서 어제(16일) 최종 통과되었지만, 김포시가 7~8년 (동안 추진하던) 숙원사업이 있었는데 ‘한강 시네폴리스 사업(문화 콘텐츠와 첨단 기술이 융합된 도시 조성 사업)’을 경기도에서 (공업용지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두 번이나 보류했다가 결국 어제 오후 최종 통과됐다. 그 전에도 환경부 등 정부의 9개 관련 부처에서 협의를 받기까지 힘들었는데, 제가 갖고 있는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또 국토부에서 추진하는 유스테이(민간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 김포에 들어오는데, 기존 아파트보다 (층수가) 높게 설계되어 있어서 이를 낮춰달라는 민원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원외위원장인데도 이런 심부름까지 하니까 (김포 시민들께서 제가 지역 현안과 관련된) 일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신뢰해주신 것 같다.

사실 전 예전부터 입법부(국회)에 들어오고 싶었다. 정치가 국회와 정당이 있는 여의도를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나. 2006년에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고 난 뒤 3개월 만에 경남으로 내려가면서 여의도 멤버십에 정착하지 못하게 된 적이 있다. 저는 광역단체장(경남도지사)도 했던 사람이지만 그런 계급장 다 떼고 김포 현안을 잘 챙기기 위해 노력하겠다. 더 크게는 평소에 관심 있는 불평등, 불공정,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들을 동료 의원들과 같이 해소하는데 기여하겠다.

- 김포가 신도시로 발전하고 있어 젊은층의 유입도 많겠다.

2년 전(재보궐 출마 당시) 당(새정치민주연합)에서 수원에서 (선거에 이기기) 가장 어려운 팔달구엔 손학규 의원을, 3선의 새누리당 유정복 의원이 버티고 있는 김포에는 제게 출마를 권유했다. 중장년층 이상의 인구 비중이 높은 도시여서 당에서는 상대적으로 험지로 인식됐는데, 말씀하신대로 김포가 신도시다보니 최근 1년에 약 2만5천 명씩 서울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있다. 이제 김포는 (정치공학적으로) 더민주가 (새누리당보다) 좀 더 유리한 곳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옛날엔 (김포가) 난공불락의 지역으로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압승을 해왔는데, 여야 정치지형이 바뀜에 따라 이젠 달라졌다.

“주요 상임위 與에 내줘…기재위서 경제 공부할 것”

- 이번 20대 국회가 역대 국회보다 빨리 개원해서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당혹해한단 농담이 나온다.

어차피 법정 (국회 개원) 시한을 넘겨 부담감이 좀 덜어지지 않았나 싶다. 사실 원 구성에 한 달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야가) 하루 만에 (원 구성을) 협상해서 산뜻하게 출발하게 됐다. 국민이 만들어준 프레임에 입각해서 (여야가 원 구성에 대해 서로) 양보한 것 같다.

다만 (원 구성 협상 과정에 있어서) 국회의장은 (총선) 민심을 반영해 우리(더민주)가 맡았어도, 대신 주요 상임위를 (새누리당에) 내주게 된 것 같다. 여성가족위원회나 윤리위원회 같은 경우 아무래도 비중이 좀 낮지 않나. 새누리당 입장에선 통 큰 양보라 할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선 아니다.

- 상임위원회는 오히려 새누리당이 더 알차게 가져간 것 같다.

훨씬 더 많이 챙겼다. 국민의당도 산업자원통상위원회, 교육문화관광위원회 등 알짜 상임위를 가져갔다. 우린(더민주는) 국회의장을 얻었지만 실리는 오히려 새누리당이 가져갔다.

- 상임위는 어디로 배정받았나.

기획재정위원회로 받았다.

- 아시다시피 더민주의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이 기재위로 갔다. 특별히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기재위가 국가 경제 정책의 전반에 대한 큰 모델을 짜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산뿐만 아니라 장기 정책 방향까지 기재위에서 논의하지 않나. 사실 제가 행정자치부에서 지방 분권 및 자치와 관련된 일은 해봤지만 경제 전반을 운용해 본 경험이 없다. 반면 다른 분들은 관련 경험이나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기재위를 선택한 이유는 여기서 한 2년 정도 활동하는 동안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공부하다보면 아무래도 경제 전반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원내대표실의 배려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같이 맡았는데, 거기서 다시 한 번 더 (예산을) 볼 수 있게 됐다.

-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럽다. 저는 (참여정부의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으로서) 노 전 대통령이 제기했던 ‘균형 발전’을 계승했지만, ‘남북 평화’와 ‘저출산 고령화’ 같은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송구스럽다. 다만 (과거 노 전 대통령처럼) 저도 경남에서 지역주의에 여러 번 도전한 점 때문에 어느 날부터 언론에서 (리틀 노무현이라는) 닉네임을 붙여준 것 같다.

“박원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

- 혹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직·간접적인 지원 의사를 밝힌 적이 있나. 

저뿐만 아니라 (당내에서) 박홍근‧기동민‧금태섭 의원 등도 박 시장에 대해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박 시장이) 당의 중요한 자산인 만큼 힘을 보탤 생각이 있다. 그런데 전 박 시장 말고도 다른 (대선) 후보들이 다 잘 되길 바라고 있다.

- 박 시장을 (대선 주자로서) 특별히 지원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박 시장과 저는 예전부터) 같이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자주 본 사이다. 어쨌든 (박 시장이) 당내 유력한 (대선)주자 중 한 분인 만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 김 의원은 대권 잠룡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분이다. 도전 의사가 있나.

아직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상임위로 배정받은) 기재위 활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대권의 ㄷ자만 말해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