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제공>
▲ <사진=KBS 제공>

[폴리뉴스 김재영 기자]'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고려의 역사를 뒤흔든 무신정변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26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문신의 씨를 말려라 – 무신 정변 3일' 편을 다룬다.
 
"문신의 관을 쓴 자는 모조리 죽여 씨를 말려라!" 고려 건국 이래 최대의 난이 일어났다.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단 3일 만에 고려를 장악한 무신 정변. 향후 100년간 지속된 무신들의 시대가 시작된다.
     
문신의 씨를 말린 무신 정변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170년 8월의 마지막 날. 개경 동쪽에 있는 보현원에 피바람이 몰아친다. 무신들의 반란이었다. 고려 제18대 왕 의종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 문신들과 연회를 즐긴 지 벌써 여러 해였고, 무신들은 밤낮으로 연회장을 호위했다.
    
고려사에서는 "문신들은 기고만장해 취하도록 퍼마시는 반면 무신은 모두 배고파 죽을 지경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라고 나온다.
   
의종의 차별 대우에 무신들의 불만은 나날이 깊어져 가고, 마침내 이러한 불만을 폭발시킨 결정적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바로 종5품 문신 한뢰가 종3품 대장군으로 최고위급 무신인 이소응의 뺨을 때린 것이다. 무신들은 이를 계기로 보현원의 병력을 장악하고, 문신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무신 정변의 서막이었다.
    
무신 정변의 주역은 하급 무신 이의방과 이고다. 파죽지세로 보현원을 장악하고, 개경의 궁궐까지 위세를 떨친 무신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무신 정변을 일으킨 핵심 세력이 왕의 측근에서 왕을 호위하는 '친위군'이라는 점이다. 정변의 주동자로 흔히 알려진 정중부 역시 친위군 출신으로 왕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 정변을 주동한 인물은 종3품 대장군인 정중부가 아니라, 정8품 산원에 불과한 이의방과 이고였다. 하급 무신이었던 이의방과 이고는, 자신들만으로 거사를 준비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고위 무신 정중부를 포섭한다. 그리고 고위 무신들과 하급 군졸들을 잇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정변을 성공으로 이끈다.
    
의종이 폐위되고 무신들의 시대가 열리다

정변이 진행된 3일 동안 죽임당한 문신의 수는 대략 150명이다. 눈앞에서 벌어진 살육에 두려움을 느낀 의종은 무신들에게 칼을 하사하고 무신들을 승진시키며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정변 둘째 날, 궁궐에서 뜻밖의 사건이 터지고 의종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환관 왕광취가 동료를 모아 무신들에게 반격을 시도한 것이다. 무신 정변의 목적은 왕조를 바꾸기 위함이 아니라, 문신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 그럼에도 환관들은 왜 정변을 막으려고 했을까. 결국 왕광취를 비롯한 환관과 내시 20여 명은 무신들에게 죽임당하고, 의종은 폐위돼 거제도로 유배 간다. 이후 무신들은 의종의 동생을 새로운 왕으로 세운다.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제19대 왕 명종. 무신들은 왕까지 교체하고,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다.
    
이의방은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고려 1인자가 된다. 

1173년 8월, 문신 김보당이 군사를 일으킨다. 이의방과 정중부를 토멸하고 의종의 복위를 위함이었다. 무신 정변이 일어난 이후, 문신이 일으킨 대표적 반(反)무신란이었던 김보당의 난. 하지만 이의방은 군사를 보내 김보당의 군대를 토벌하고, 반란은 한 달 만에 진압된다. 이후 무신들은 김보당의 난을 빌미로 의종을 시해하고, 남은 문신들마저 제거한다. 반대 세력을 모두 숙청하고, 1174년 자신의 딸을 태자비(太子妃)로 만든 이의방! 그는 명실상부, 고려의 1인자로 우뚝 서게 된다.
    
하급 무신 이의방을 중심으로 문신들을 숙청하고 3일 만에 고려를 완전히 장악한 무신들. 고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무신 정변에 대해 26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의 '문신의 씨를 말려라 – 무신 정변 3일' 편에서 이야기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