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경남대 교수, 정치학)

   7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 후속 개최를 통해 김정은 체제는 일단 완성되었다. 짧은 후계 기간과 젊은 지도자라는 불안감을 불식하고 5년의 과도기를 정리하면서 김정은 정권은 안착하게 되었다. 36년만의 당대회가 갖는 최우선의 의미는 당대회가 개최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당대회를 개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체제 위기와 정권 불안의 시기를 넘고, 선군의 비상통치를 감수해야만 했던 비정상의 시대를 접고 드디어 당대회를 열게 됨으로써 이제 김정은 시대는 체제 안정과 정상화를 대내외에 선포하게 되었다. 당대회에서 휘황한 설계도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따가운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된다. 당대회를 개최했다는 사실만으로 김정은 정권은 셀프 대관식과 당국가 시스템의 정상화와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의 선포를 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경제핵 병진노선 정도면 '휘황하진 않지만' 설계도로서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당의 공식이데올로기 채택을 특징으로 한다. 조선로동당도 이번 당대회에서 공식이데올로기로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재확인했다. 2012년 당대표자회에서 채택된 김일성-김정일 주의는 이번에도 그 내용이 풍부하게 구체화되지 않았다. 당규약 맨 첫 구절을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이다’로 시작하면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명시해놓았다.

   당의 지도사상이지만 여전히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이름만 있을 뿐, 주체사상 및 선군사상과의 관계나 구체적 내용들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번에 채택된 규약에도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사상을 결합시켜 추상화시킨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선대수령의 사상을 계승하고 높이 모시는 의미에서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동렬 결합시켜 구체성보다는 추상적 개념으로 자리매김해놓은 상황이다.

   오히려 최근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구체적 내용 대신에 ‘김정일 애국주의’를 보다 풍부하게 설명하면서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번 당규약에도 김정일애국주의는 김일성-김정일주의에 결코 밀리지 않게 자주 등장하고 있다. 김정일 사후 2012년부터 제시된 김정일 애국주의는 철학적 원리 등을 강조하는 주체사상과 달리 나라사랑, 인민사랑, 후대사랑 등 정치사상의 성격보다 충성심과 애국심 고취운동의 성격이 더 강하다.

   특히 2016년부터 강조하고 있는 ‘5대 교양’을 ‘위대성 교양, 김정일애국주의 교양, 신념 교양, 반제계급 교양, 도덕교양’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 교육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5대교양에 주체사상 교양이 공식적으로 빠져 있는 셈이다. 5대교양의 내용도 추상적인 세계관 수준의 정치사상이 아니라 당과 국가에 필요한 공산주의 인간형 교육에 맞춰져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선대수령의 사상을 ‘선반위에’(on the shelves) 올려놓고 당장은 김정일 애국주의를 필두로 한 ‘5대교양’으로 정치사상 교육을 주력하면서 김정은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은 향후 당의 전략기조와 비전에 맞게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주의 국가가 맑스레닌주의를 추상성이 높은 ‘순수이데올로기’로 채택하고 동시에 당정책과 노선을 정당화하는 하위 수준의 ‘실천이데올로기’를 따로 구분함으로써 순수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현실적 노선변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향후 김정은 시대의 공식이데올로기도 앞선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추상화시킨 후 김정은만의 독자적인 실천이데올로기를 새롭게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김정은의 실천이데올로기는 주체와 선군을 넘어 선민과 선경으로 제시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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