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예방 취소가 남긴 것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가 전두환 씨를 예방하려다가 취소했다. 당내의 반발이 터져나오고 최고위원들도 반대함에 따라 이루어진 번복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신봉하는 제1야당의 대표가 군사반란과 시민학살의 주범인 전 씨를 예방하려 했던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를 취소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었다. 전 씨의 경우는 법적으로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되어 있고 보수층까지도 지탄하고 있는 범죄자이다. 제1야당 대표가 찾아가서 웃으며 덕담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추 대표는 왜 느닷없이 전 씨를 예방하려 했던 것일까. 추 대표는 국민통합을 말한다. 전 씨와 같은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국민통합이라는 생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의 표를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법하다. 이것이 단순한 억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그동안 추 대표의 행보를 보면 일관되게 ‘표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더민주 전당대회 때 쟁점이 되었던 문제이지만, 추 대표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참여했던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 측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추 대표의 적극적인 러브콜이 있었다. 그리고 탄핵에 대한 참회가 있었다. 대표로 선출된 직후에는 봉하마을에 가서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정치인의 판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거에는 옳았다고 판단했던 일이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잘못이었다고 뉘우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추 대표의 행보에서 진정성 보다는 표의 논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생각의 변화 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없이 180도 달라진 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당혹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 측을 향한 적극적인 러브콜의 결과 추 대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자 다시 얘기가 달라진다. 경선 과정에서는 김종인 대표를 그렇게 비판하며 당의 정체성 문제를 부각시켰다. 그래서 당 강령에서 ‘노동자’ 문구의 삭제를 저지했고, 당 대표가 되면 사드 배치를 반대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히 당의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정작 대표가 되고 나자 사드 얘기가 쑥 들어갔다. 성주 투쟁위원회 지도부가 찾아와 사드 배치 반대 당론을 요청해도 답을 피했다. 사드 배치 반대 당론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역력하다. 사드 배치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 자체를 새삼스럽게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렇다면 어째서 전당대회 때는 사드 반대 얘기를 했는가라는 질문만은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눈에 비치는 광경은 이런 것이다. 전당대회에서는 야당 당원들, 특히 진보 성향 주류 측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드 반대를 내걸었다. 그런데 막상 대표가 되고 나니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년 대선이다. 대선에서 표의 확장성을 생각하면 사드 반대 당론을 정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대략 이런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해석이 편견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그동안 추 대표가 보여온 행보를 보면 언제나 표의 논리가 우선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결국 표를 위해서 전두환도 방문하려 한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태도도 180도 달라진 것이고,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도 오락가락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선거를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정치인이 표를 중시하는 것 자체를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들 표 많이 얻으려고 정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정권교체를 다짐하는 제1야당의 대표라면 국민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 있다. 표의 논리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가 했던 정치적 언행을 스스로 무겁게 대하는 모습을 보일 때 정치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가능한 것이다. 지금 추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1야당 대표로서의 일관성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