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명 책임지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절망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나라에 지진의 충격이 엄습했다. 북한의 핵실험, 그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초강경 발언들에 따라 조성되고 있는 전쟁의 위험은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지 못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경우 남과 북 모두 사람이 살 수 없는 잿더미의 지옥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가 하면 경주에서의 강진이 안겨준 공포 또한 심각하다. 자연의 재앙을 인간의 힘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강진의 발생 지역 인근에 원전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는 현실은 인간이 만들어낸 대재앙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만약 원전들이 있는 곳에 예상을 넘어서는 강진이 닥칠 경우, 북한 핵 미사일이 날아온 것과 다를 바 없는 재앙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이처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심각히 위협하는, 나아가 나라 전체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위험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의 정부는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리하여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 실망스러운, 아니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말했다.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그리고는 느닷없이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지시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의 입에서는 감정적인 언사들만 쏟아지고, 엉뚱하게도 비판세력을 겨냥한 공격을 행한다. 이쯤되면 아무런 지혜도 전략도 없는 무능함 그 자체이다. 대통령이 이러니까 군에서도, 북한의 핵 사용 징후가 있을 경우 평양을 뭉게버려서 지도에서 사라지도록 하겠다는 발언이 나온다. 마침내 대통령은 정당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을 꺼내기에 이르른다. 대통령과 정부가 쏟아낸 말 속에는 전쟁을 하면 북한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엄포만 있지, 한반도를 지옥으로 만들 전쟁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의 흔적은 담겨있지 않다.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진에 놀란 국민들은 정부의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지진 상황을 파악하기에 분주했다. 황교안 총리가 등장하여 피해 지원 지시를 내린 것은 지진이 발생한지 두 시간도 넘어서였다.
국가안전처는 지진이 나고서 9분 뒤에야 긴급재난 문자를 보냈다. 그것도 수도권 주민들은 받지도 못했다. 국가안전처 홈페이지는 다운이 되어버렸고, 재난방송 주관사인 KBS는 재난 보도 대신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었다. 지진 사태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북핵과 전쟁위기, 그리고 지진, 이 모두가 국민의 생명이 좌우되고 나라의 존망이 달릴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그 대처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보인 모습에서는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읽혀지지 않는다. 위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안들의 중대성을 생각한다면, 정부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한반도에서의 재앙을 막고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길이다. 그리고 지진이 불러올 수 있는 원전 재앙을 막기 위해서 원전 확대 정책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안전점검을 철저히 하라는 식의 판에 박힌 대책만으로는 재앙의 위험을 막을 수가 없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수 없다고 국민이 생각할 때, 불신받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는 내부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안보에도 무능하고 지진에도 무능한 정부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새삼 정책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것은 ‘소 귀에 경 읽기’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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