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 얘기가 자꾸 나오고 있다. 말썽이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거액 모금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지목되면서 정치권에서 해체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경련으로서는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전경련은 초기에는 국가 산업화에 기여하면서 정부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매년 연초가 되면 대통령을 단체로 만나 투자 계획과 계획을 발표해 점수를 땄고, 큰 일이 있을 때는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잘 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경련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위해 며칠 사이 20여 개 대기업으로부터 744억 원의 모금을 주도한 게 도마 위에 올랐다. 기업들이 두 재단의 일을 돕기 위해 스스로 돈을 냈다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지만 이렇게 큰돈을 순식간에 스스로 낼 기업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전경련은 역대 정부에서 큰 현안이 있을 때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는 10년간 북한에 쌀과 비료, 경공업 원자재 등 무려 4조5000억 원을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서민대상 저리 대출사업인 ‘미소금융재단’에 10년간 1조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년희망펀드 등에 1440억 원을 내기로 했다.

이런 일이 모두 잘못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전경련이 정부가 하는  일에 협력하면서 대기업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늘 있어왔다. 쉽게 말하면 전경련이 정부를 대신한 ‘모금단체’, 더 험악하게 말하면 ‘수금 기구’로 전락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오늘의 전경련이다.

전경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에 맞는 일을 주도적으로 했지만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대기업이 모인 단체로서 정부의 일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도 있고, 반대로 막강한 힘을 이용해 대기업의 입장을 지나치게 대변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경련은 이제 자신을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냉철하게 판단해서 해체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서면 없애는 게 좋다. 반대로 그래도 유재해야 한다는 평가가 내려지면 체제와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지금처럼 간다면 돈은 돈대로 내면서 동네북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경제단체가 너무 많다. 대기업 중심의 전경련, 중소기업 중심의 중소기업중앙회, 수출기업이 모인 한국무역협회, 경영자들의 모임인 한국영영자총연합회, 상공인들의 모임인 대한상공회의소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름만 다를 뿐 대부분이 겹치기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퇴직 공무원들의 자리나 만드는 이런 많은 단체는 정비돼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전경련이 관료화돼 있다는 점이다. 회원들보다 전경련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더 세다는 게 회원사들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돈 내는 놈 따로 있고, 생색  내는 놈 따로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경제단체, 특히 전경련이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정부에 부탁할 게 많다. 정부도 물가문제, 고용문제 등을 풀어가려면 전경련의 협력이 필요하다. 양쪽의 필요와 요구가 맞아 떨어지면 정경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음은 전경련의 위상이다. 초기에는 정주영 현대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거물급이 회장을 맡았으나 최근에는 회장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전경련은 1년에 회원사로부터 600여 억원을 갹출하는데 대부분이 삼성이나 현대차, SK, LG 등에서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전경련을 아예 해체하거나 싱크탱크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야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사실상 대선 출정식을 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경련을 냉혹하게 비판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전경련은 역사적 소임을 다해 지금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도 전경련은 회원사 의사에 따라 해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국감에서 전경련은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나오면 전경련은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전경련은 이제 결단을 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지금처럼 욕을 먹더라도 정권과 밀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지낼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옷을 갈아입고 친목단체로 남을 것인지, 아예 독립적인 싱크탱크가 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전경련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당장의 어려움은 넘길 수 있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전경련은 여야 정치권에서 전경련 해체 얘기가 동시에 나온 이유를 똑바로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전경련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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