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결의안 주도 안한 것은 북미관계 개선 때문”<전문가>

‘북한 인권결의안 초안’이 한국이 기권한 가운데 20일(현지시간) UN 총회 제3위원회에서 찬성 97표, 반대 23표, 기권 60표로 통과됐다.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UN 표결에서 기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해까지 결의안을 주도했던 미국이 빠지고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주도로 결의안이 제출돼 급진전된 북미관계를 우회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결의안은 다음달 총회 본회의에서 최종 채택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192개 회원국의 의결을 거쳤기 때문에 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UN, 北 인권결의안 찬성 97, 반대 23, 기권 60으로 통과

이번 결의안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북한 인권상황을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한국의 기권과 관련, ‘ASEAN+3 정상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중인 노 대통령을 수행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유엔 대북결의안 문제에 대해 보고를 했고,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천 대변인은 이어 “이는 최근 남북관계 진전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해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의 성공적 진행 이후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고려한 결정이었음을 내비쳤다.

천 대변인은 또 “지난주 안보정책회의와 그 단위 구성 멤버들간 지속적인 의견 교환이 있었다”면서 “실질적으로 어제 오후까지 최종 결정이 나 있지 않았지만 그 뒤로 장관과 실장이 협의해 기권안으로 정리해 보고 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이 진행됐을 때에는 불참했으며 2004, 2005년에는 기권했으나, 지난해에는 북한의 핵실험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배출 등을 감안해 찬성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결의안 채택 표결에서 기권한 것은 북한이 연내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를 마치기로 하는 등 북핵문제가 해결국면에 진입한 만큼 예전으로 돌아갔을 뿐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보수진영 “정부 기권은 동포의 고통 외면한 것”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정부가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기권키로 한 것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북한 눈치 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비판했다.

나 대변인은 이어 “인권은 체제와 이념,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보편적인 개념”이라며 “오히려 남북관계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라도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앞장서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지적했다.

북한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도 21일 논평을 통해 “지난해 대북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정부가 북한의 인권상황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조건에서 투표를 기권한 것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스스로 내팽개치고 동포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북핵문제가 해결국면에 들어섰고 남북관계에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이번 기권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접근은 단계적으로 나가야 한다”며 “남북간 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통일의 길을 넓히는 가운데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이어 “북한의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인권이 없는 미국이 북한 인권을 체제 붕괴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식 인권문제 해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정부가 UN의 투표에서 기권한 것은 지금 ‘2007 남북정상선언’이 이행국면에 들어가고 남북관계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 내부문제 뿐 아니라 미국의 제재 등 외부문제라는 지적도…

특히 이 전문가는 “유엔에서 논의하는 인권의 개념은 문제가 있다”면서 “인권개선을 위한 북한 자체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외적 요인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미국의 대북제재로 전쟁위기, 전쟁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내부 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북한의 인권문제는 내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미국의 제재 등 외부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번 북한 인권결의안을 EU와 일본이 주도하고 미국이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는 입장도 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지난해까지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주도했었다”면서 “결의안을 EU와 일본이 주도하고 미국이 빠졌다는 것은 현재 북미가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등 북미관계가 개선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소장은 이어 “한국 정부가 기권한 것 역시 남북관계가 정상회담, 총리회담을 거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 소장은 또 “곧 열리게 될 부총리급이 참여하는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와 남북국방장관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에 통과된 ‘북한 인권결의안 초안’에서는 북한이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의 임무를 인정하지 않고 협조를 제공하지 않은 점과 공개처형,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사형 집행, 다수의 범죄인 수용소 및 광범위한 강제노역,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강제실종 형태의 외국인 납치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결의안은 이에 따라 북한에 인권침해의 즉각 종식, 난민의 근원적 원인 타개, 특별보고관에게 협력 등을 촉구했다.

다만 결의안은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채택 및 최근 6자회담의 진전 등을 환영한다”고 명시한 것은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다.

北, “UN 결의안, 완전히 거부한다”

결의안은 또 “최근 홍수에 대한 북한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과 외부 지원을 구하는 데 있어 보여준 북한의 개방사례를 주시한다”며 북한의 개방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은 UN의 인권결의안에 대해 “완전히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덕훈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는 미국은 인권문제를 국가별로 선택적으로 제기하는 등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EU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시민들의 희생이나 일본의 소수민족 억압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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