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만을 찾는 야당 문화에 대한 우려

마네의 <올랭피아>(1863)는 서양미술사에서 큰 파문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는 비너스라는 여신을 묘사한 것이었는데, 마네의 그림에는 매춘부가 등장했다. 당시 파리 화단에서 벌거벗은 여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여신의 모습이었는데, 마네는 매춘부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렸다.

마네는 매춘부 올랭피아의 모습을 대단히 도발적으로 표현했다. 매춘부는 흑인 하녀와 대조를 이루며 극도로 요염하게 그려졌다. 그림에서 타락을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 벗겨진 실내화, 숭배의 꽃다발, 머리에 꽂는 난초꽃 등은 모두 섹스를 암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매춘부의 당당하고도 도발적인 시선은 그림을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너는 깨끗하냐’는 질문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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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네 <올랭피아>(1863)


이 작품이 전시된 뒤 논란은 뜨거웠다. 당시로서는 매춘부를 쿠르베적 사실주의로 표현한 것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더구나 매춘행위가 공공연했던 파리의 부르주아 사회는 자신들의 비도적적 관념을 감추려는 반발로 한층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파리 사회의 비밀스러운 문화를 폭로했던 이 작품은 훗날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마네의 친구인 모네는 1889년에 이 작품을 거의 2만 프랑의 돈을 주고 사들였고, 오늘날 프랑스의 소유가 되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마네의 <올랭피아>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 정치로 오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와 함께 국회에서 주최한 전시회에 등장한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마네의 그림을 모티브로 한 이 그림에는 매춘부 대신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했고, 흑인 여성 대신 최순실의 얼굴이 등장한다.

이 그림 또한 한 시대의 비밀을 풍자적으로 폭로했다는 주장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상이 특정 인물이 되었을 때, 이런 식의 성적 모욕을 안겨주며 조롱하는 것은 풍자의 범위를 넘어선다. 언제 남성 대통령을 이렇게까지 발가벗기면서 풍자를 한 적이 있었던가. 여성이기에 이런 식으로 발가벗기는 풍자를 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풍자의 효과 보다는, 이런 방식으로까지 모욕당하는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을 촉발시킬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사고(事故)이다. 민주당이 표 의원을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한 것도 사안이 미칠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짐작된다.

표 의원은 최근에도 ‘선출직 공직자 65세 정년 도입’ 주장을 하여 논란의 한복판에 선 일이 있다. 주장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노인 세대를 폄하한다는 논란을 촉발시키기가 쉬운 내용임에는 분명하다.

꼭 표 의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야당 안팎의 주류처럼 되어버린 문화가 있다. 누가 더 튀는가를 보이면서 시선을 모으고 매니아들의 박수를 받으려는 정치가 득세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SNS와 팟캐스트, 때로는 청문회에서 자극적이고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쏟아내는 정치인이 스타처럼 대접받고, 반대로 합리성을 지키며 조용하게 말하는 정치인들은 변방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표를 모아야 하는 정치인들이 인기에 매달리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연예인화 된 정치인들이 우리 정치를 이끄는 것이 정상은 아닐 게다. 물론 그것이 정치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사이다’만을 찾는 팬들의 욕구가 우리 정치문화를 그런 방향으로 끌고 가는 셈이다. 더 쎄고 자극적인 것을 찾고, 실제로 그런 것이 주류가 되는 방식은, 신자유주의 시장이라는 정글에서의 경쟁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런 문화가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정치는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다. 여야 불문이다. 그런 문화가 특히 야당 안팎에서 힘을 발휘한다면 설사 정권교체가 된들 모든 것은 이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정치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조용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밤에 찾아와서 내 손을 잡아주고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전 이른 새벽에 남몰래 돌아가는 그런 정치인. 나는 그런 정치인이 평가받는 정치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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