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출마포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출마포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확히 한 달 전인 1월 2일, 필자는 이 란을 통해서 “반기문 총장은 아예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다”는 요지의 칼럼(제목 : 반기문? 후보 자체가 못될 수도…)을 썼다. 반 총장을 호출한 정치세력이 괴멸상태에 빠졌고, 반 총장 자신의 자생적 정치력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증국면을 통과하기 힘들 것이며, 무엇보다도 정치적 정체성이 불분명해서 자신만의 세를 형성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당시 예측의 주안점이었다. 

반 총장은 지난 1월 12일 귀국 즉시 공항에서 “정치를 교체하겠다”며  출마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그의 주변에는 새누리당 구 친이계 인사들과 외교관그룹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귀국 다음날부터 현충원 참배를 비롯해 김해 봉하마을, 팽목항과 전국 주요도시를 매우 바쁘게 오갔다. 수십 년간 익히 봐왔던 대선 후보들의 행보 그대로였다. 그의 기민성에 놀라는 한편, 구태에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늘고 지지율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다. 

성찰 부족한 사퇴의 변

반 총장은 어제 돌연히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태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 나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요지의 사퇴회견이었다. 주변의 정치토양이 잘못됐으며, 자신에 대한 비우호적 여론을 탓하기도 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지내고,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는 실망스러운 사퇴의 변이었다.

일단, 자신의 지지율이 왜 오르지 않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또, 주변 구태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적 태도를 비판하기 전에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자신에게 잘못을 먼저 돌렸어야 했다. 불과 20여일 전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돕겠다며 문전성시를 이뤘을 때, 환한 웃음으로 악수하며 승리를 다짐하고 정치교체를 주창하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새누리당 친박계에 의해 느닷없이 대선후보로 호출된 그는 21일 만에 역시 느닷없이 무대를 떠났다. 심지어 최측근 참모들에게조차 상의하거나 귀띔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라지만, “집권하겠다는 천하도모의 일이 그렇게 가벼운 것인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애당초 그에게 진정한 참모는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후보는 줄었지만 양상은 더 복잡

관심사는 앞으로의 상황이다. 잠재적 후보 한 사람이 사라졌으니 구도는 좀 더 단순해져야 할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 양상으로 펼쳐질 것 같다. 우선 반 총장이 얻고 있었던 지지율 15% 정도를 누가 가져갈지가 관심사인데, 예측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정치적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지율은 ‘콘크리트 표’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반 총장 지지자들이 대부분 구 여권 지지자들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반 총장 지지표가 야권 후보들에게 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황교안 결국 출마?

그렇지만 그의 지지표를 이어받을 구 여권 출신 인사들이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이다. 출사표를 던진 유승민 남경필 두 사람의 지지율은 아직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그런데 출마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황교안 국무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구 여권에서 유-남 이외의 ‘다른 누군가’를 찾는 수요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황 총리의 출마가능성은, 무책임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반반이라고 본다. 

반 사퇴 후 여론조사 특징 두 가지

반 총장 사퇴 직후 조사된 jtbc-리얼미터 여론조사(2월 1일 조사. 응답률 9.8%. 기타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자. “반 총장 사퇴 후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문재인 26.1%, 황교안 12.1%, 안희정 11.1%, 이재명 9.9%, 안철수 9.3%, 유승민 4.3% 순으로 집계됐다. 1주일 전인 1월 23~24일 같은 리얼미터 조사치는 문재인 32.8%, 반기문 15.4%, 이재명 9.5%, 황교안 7.4%, 안희정 6.4% 순이었다. 

황교안-안희정 신장세 괄목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황교안 지지율이 1주일 전(7.4%)에 비해 무려 4.7%p가 높아졌다.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과 1주일 만에 약 5%p가 높아진 것은 그에 대한 호출요구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 총장 사퇴는 그런 요구를 더 증폭시킬 것이다. 

또 하나는, 안희정 충남지사의 상승세다. 안 지사 역시 1주일 새 4.7%p가 오른 11.1%를 기록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는 32.8%에서 26.1%로 6.7%p가 빠졌다. 문재인 지지율 축소분이 거의 안 지사에게 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사퇴영향이라기보다는 안 지사의 출마선언 후 나타난  ‘컨벤션 효과’로 보는 게 일단은 맞을 듯하다. 물론 1주일  간의 이 변화가 ‘추세’로 이어진다고 말할 근거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은 변동이 거의 없었다. 반 총장 지지표는 주로 구 여권 후보에게, 일부는 야권의 ‘상대적 중도성 후보’에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세론’ 굳히기?

반 총장 사퇴로 ‘문재인 대세론’이 굳히기에 들어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유는 이러하다. 반 총장이 사라진 마당에 안철수 손학규 김종인 김부겸 등은 ‘친노-친문’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위 후보 반 총장이 사라지고 ‘제3지대 빅 텐트’가 거의 와해된 상황에서 선거 구도를 ‘문재인 대 반 문재인’으로 끌고 가려는 후보들의 행동반경이 확장됐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지지율 너댓 후보들 사이의 합종연횡보다는 각자도생이 치열해질 것이고, 그럴수록 문재인대세론에 대한 공격이 드세질 것이다. 문재인의 반대축에 자신이 서기 위해서다. 

‘반문’ 집중공격 효과는?

물론 문재인 측이 그런 공세에 대응하지 않고 ‘정책행보 마이웨이’에 집중하면 그런 ‘집단적 공격’은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전 후보 측에서 끊임없이 제기할 경우, 파괴력은 크지 않더라도 대선 내내 해묵은 친노패권 논쟁은 계속 따라다닐 것이다.  

큰 선거를 한 번씩 치르면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희망한다. 그것이 역사발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반 총장 사퇴 후 선거 ‘양상’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기에 뒷맛이 씁쓸하다. 이번 대선은 지난 2012년 대선처럼 진영 간 사활을 건 총력전은 아닐 것이다. 누가 촛불정신을 명확히 계승하고 실천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의 답은 촛불정신

반 총장의 등장부터 돌연 사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정치적 자생력과 공동체정신이 결여된 후보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확히 알려준 ‘요란한 해프닝’이었다. 해프닝 치고는 교훈이 많은 해프닝! 이렇게 조금씩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을 교훈이자 위안으로 삼는 대선이 되길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