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좌)와 안희정 충남도지사(우)가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방송사 합동토론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좌)와 안희정 충남도지사(우)가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후보자 방송사 합동토론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열혈 지지자인 ‘빠’를 ‘헌신적이고 순정적인 지지자’로 착각하는 한 우리 정치는 구체제로부터 반 발짝도 나가기 어렵다. 한 마디로 줄이자면, 빠는 중독이다. 중독은 합리성을 마비시키고, 마비는 결국 질식을 부른다. 그런 점에서 빠(문화)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빠는 중독… 중독은 합리성을 마비시키고, 결국 질식

지금 이 시간 광주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 호남경선이 진행되고 있다. 중대 분수령이라는 오늘 호남 경선일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예비후보 진영 간 빠들의 극성과 네거티브는 하루하루 촉매제를 부은 듯 위험수위를 향해 달려왔다. 기폭제이자 시작점은 문재인 예비후보의 특전사 복무시절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안희정 예비후보 진영에서 “전두환표창을 자랑스레 말한 것은 호남의 아픔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라며 공격 드라이브로 나갔다. 각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휘발유가 부어졌다. 며칠 간 전두환표창이 자랑이었냐 아니냐로 저급한 말싸움이 심화됐다. 지난 21일자 <민주당, 제발 시민들 수준을 따라오라> 제하의 칼럼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 있지만, 예상대로 공염불이었다. 

문 후보의 그 사진과 표창발언 부분이 적어도 자랑이 아니었음은 정상적으로 한국어를 익혀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동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란과 시비는 전기톱처럼 돌아가며 큰 구멍과 상처를 냈다. 이후로도 사사건건 트집잡기성 공격과 역공이 오갔다. 

빠는 맹목이다. 무오류주의라는 덫에 스스로 갇히는 것이다. 빠 자신뿐 아니라 그가 그렇게 지지하는 정치인도 결국 망하게 한다. 이 간단한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왜 이런 비이성적 빠문화가 극성을 부릴까. 대선이라는 인화성 높은 빅이벤트가 사람들을 흥분케 하고, 비이성적 휩쓸림으로 내모는 속성에서 일단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SNS 파워가 커지면서 집단화-조직화라는 날개 달아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SNS의 기능과 파워가 커지면서 빠는 집단화와 조직화라는 날개를 달게 됐고,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지니게 됐다. 여기에 일부 ‘카더라’ 소문과, 페이크성 헐뜯기가 가세될라치면 그 폭발력과 확산력은 통제 불능수준으로 치닫는다. 이는 감정싸움으로 비화되고, 각 진영의 지지자들에게 확산되면서 피아, 즉 적으로 에스컬레이트 되어버린다. 

빠, 비유컨대 축구의 훌리건

영국 프로축구리그인 EPL 융성의 이유로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서포터즈를 든다. 서포터즈는 축구사랑을 명분으로 폭력과 난동, 상대진영에 대한 공격을 예사로 감행하는 훌리건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지금 문제되고 있는 빠는 굳이 비유하자면 훌리건이다. 서포터즈는 주인이자 동료지만, 훌리건은 ‘떠날 때까지 신경쓰이는 손님’일 뿐이다. 사고치지 않고 조용히 떠나주기만을 바라게 되는…. 신사라는 영국경찰도 난동피우는 훌리건은 무차별 강제진압한다. 

문제는, 지금 정치판에 훌리건이면서 서포터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본시 선거나 승부란 이성을 마비시키는 속성이 강하다. 같은 당 지지자이지만, 서포터즈는 후보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신중히 행동하고 발언한다. 반면 훌리건은 그동안 억눌렸던 걸 일시에 배설하듯 쏟아내면서 통쾌해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훌리건은 본인의 만족만을 위하기에 결국은 무슨 논리로도 환영받지 못한다.
 
각 캠프, ‘스피커’급 빠 제어 나서야

합리적 흐름과 환경을 조성해가는 것이 시민의 정치의식이고, 정치민도이다. 그럼 빠들을 누가 제어해야 할까? 후보의 호소나 단속이 실효를 거두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지경이다.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소방관들은 직접 진화보다는 일단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방화선’을 치고, 불길이 기승을 다 할 무렵 진화를 시작한다. 선을 넘어선 빠들의 행태는 극점을 향해가는 불길과 흡사하다. 화재는 방화선을 치고 잡으면 되지만, 빠들의 행태에 방화선을 구축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 화재와의 차이다. 

촛불광장의 대동(大同)정신,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각 캠프는 캠프와 연결되거나 교통하고 있는 ‘스피커’급 빠, 즉 빠 집합체 중 리더급을 제어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해야 한다. 그러나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촛불광장의 대동(大同)정신에서 그 답을 찾는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그리고 거기에 이번 촛불의 ‘역사성’이 있다. 각 캠프와 예비후보들은 최소한 리더급 빠들을 통제하고, 이후는 시민들의 자정에 맡기는 수밖에 아직은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구시대 적폐를 청산하자고 다들 외치면서 실상은 민주를 위협하고 있는 빠. 선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동일 진영 내건, 진영을 달리하는 대결이건 빠들의 활동범위는 더 커질 것이다. 빠 문화를 제어하느냐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정치풍토가 달려있다. 지난 넉 달, 촛불광장에서는 모두 다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극도로 절제하는 서포터즈였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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