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집권기에 벌어진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에 대한 죄의식이 없어 보인다.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인사청문회-추경안정국에 임하는 한국당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만일 선거결과 불복이라면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자, 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한국당은 대선 직후 패배를 인정하며 “협치에 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동안 숱하게 벌어졌던 불합격 인사를 생각하면 지금의 행태는 억지나 행패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애시당초 ‘협치’에는 뜻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원칙 훼손될 경우 민심은 다시 요동칠 것 

짧게는 이명박-박근혜 집권기 9년 간, 길게는 정부수립 이후 누적된 병소들이 ‘적폐’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질식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문재인정부에 90% 가까운 지지를 보내며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 이기는 주장 없고, 민심 이기는 정치 없다. 촛불은 문재인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들었던 게 아니라, 적폐청산을 맡길 새 지도자를  뽑기 위해 든 것이다. 청와대는 물론, 여야 모두 유일한 협치 대상은 국민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한국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원칙을 양보할 경우 민심은 다시 요동칠 것이다. 

구 새누리 억지 계속될수록 입지 좁아질 것

한국당과 바른당을 합하면 127석이다. 둘이 심술부리면 뭐든 안 되게 돼있다. 선진화법을 우회 돌파하는 ‘패스트 트랙’ 제도도 어차피 1년가량 걸리게 돼있다. 그러니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절치부심의 자세로 개헌과 적폐청산 정지작업에 매진하는 게 중요하다. 구 새누리당 계열들이 억지 부리는 건 개헌정국에서 칼자루를 쥐겠다는 계산일 텐데,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구 새누리당의 억지가 지속될수록,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다음 총선까지도 ‘촛불 자장권’ 아래서 치러질 게 좀 더 분명해진다고 전망한다. 

국무위원 문제로 허송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애초 방침대로 임명하면 된다. 단, 신규 장관 후보자 중 음주운전 전력자가 있는데, 알고도 지명했다. 음주운전과 비투기성 위장전입 중 어느 쪽이 더 반 공동체적인지는 냉철하게 생각했어야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음주운전은 기본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검찰개혁 등 행정부 차원서 가능한 개혁에 일단 몰두

추경안 처리는 국회에 맡기면 된다. ‘원칙에 입각한 절충’을 시도하되, 끝내 부결되면 그 과정과 결과를 국민에게 상세 보고하고 새해 예산안에 반영하면 된다. 집행 시기는 4~5개월 늦어지더라도 추경으로 하려던 일의 상당 부분은 반영할 수 있다.

여야 합의가 필요 없는 것부터 집중하고, 구 새누리당의 생떼 때문에 끝내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그대로 두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대신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확실한 참패를 안기면, 한국당은 2~3개 정파로 쪼개진 뒤 소수 수구세력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앞으로 1년이 금쪽 같이 아깝지만 고질적 병소 제거를 위해 그 정도 시간과 인내는 필요하다. 그때까지 1년 간, 법 개정 없이 행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개혁 작업에 몰두하면 된다. 검찰개혁과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통한 재벌폐해 수술 등이 그것이다.  

구 새누리 억지와 행패, 오래는 가지 못할 것

최소 100석이 넘는 의석수를 무기로 새 정부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는 한국당 등 야권의 몽니가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일단 실업문제와 비정규직 등 민생현안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는데다, 정기국회에 국정감사까지 파행시킨다면 그 역풍이 어떨지는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새해 예산안을 다른 국정 사안에 연계시키는 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은 새 정부 편이다. 더구나 90%에 육박하는 국정지지도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새 정부가 야당에 발목 잡혀서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중요한 건 개헌정국에서 적폐청산이 실종되지 않도록 의제를 관리해나가는 것이고, 길게는 정권재창출을 위한 초석다지기다. 이제 막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 무슨 정권재창출 얘기냐고 할 수 있다. 지나온 저간의 사정을 보면 정권재창출이 왜 중요한지는 금새 확인된다. 적폐청산은 문재인정부 5년간 완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야 수구 적폐를 청산하고, 출발선부터 불공정 결과를 강요해온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이 가장 힘주어 외쳤던 구호는 “박근혜 구속”과 “새누리 해체”였음을 벌써 잊었는가. 집회장의 구호란 원래가 과장되고 과격한 것이라고 뭉개고 넘어가고 싶은가. 만일 그러하다면, 민심에 대한 중대 오독이다. 

민심의 노도, 일단 형성되면 쉬 꺼지지 않아 

일각에서 “87년 개헌 때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없앤 게 아쉽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대의와 원칙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촛불정신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투표혁명이자 제도 내 개혁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저항도 크다. 그렇지만 결국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새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국민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합법적으로 심판해야, 지난 겨울 자신들이 든 촛불의 의미가 성취된다는 것을 지금 국민들은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촛불의 최대 소득은 자신의 명예와 가치를 지키고, 권리를 행사할 줄 아는 시민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여야 불문하고 정치권 모두는 이 점  깊이 인식해야 한다. 촛불 이전과 이후는 시대가, 공기가 달라졌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만 느끼지 못한다. 괜한 엄포나 공왈맹왈이 아니다. 

‘정치력’이란 미명의 무원칙 타협, 국민이 용납 안할 것  

대한민국은 지금 시민혁명중이다. 이 혁명은 몇 개월, 몇 년 만에 끝날 혁명이 아니다. 구 새누리계열 정당이 이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정치적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민심의 노도는 형성되기가 어렵지, 일단 형성되면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에너지가 쉬 꺼지지 않는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청와대나 여야 모두 눈치 살필 곳은 상대 당이 아니라 국민, 오로지 국민이다. 새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은 ‘정치력 발휘’라는 미명 하의 무원칙한 타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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