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의 결단없이 원칙을 세울 수 없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 출마선언 행사를 현장지휘 하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 <사진=연합뉴스></div>
▲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 출마선언 행사를 현장지휘 하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왜 저럴까. 90퍼센트에 가까운 국민의 기대 속에서 시작한 문재인 정부였다. 국민들은 이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며 과거 정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을까. 문재인 정부의 기세등등했던 행보는 탁현민 행정관 앞에서 멈춰선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라고 해서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지는 않으리라. 친구들과 여중생을 ‘공유’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은 사람이 청와대에 근무한다는 사실이 설마 아무렇기야 하겠는가. 그런데 사방에서 그를 청와대에서 내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다. 소통을 다짐했던 문 대통령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문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무슨 곡절이 있을 것만 같다.

청와대 내부의 내막을 알 수 없는 우리로서는 두 가지 정도가 짐작될 뿐이다. 첫째, 탁 행정관은 문 대통령과 히말라야까지 동행했던 측근 중의 측근이다. 아무리 논란에 휩싸였다 해도 자신과 그렇게 가까운 사람을 내치기가 곤혹스럽다. 지금 그런 문제로 그만 두게 하면 그 사람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인간적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여론이 가라앉아 그대로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라의 대통령이 된 위치에서는 너무도 사적인 생각일 것이다. 근거없는 짐작이기 바란다. 설마 그렇겠는가.

그 다음으로 짐작가는 것은, 그의 능력이 아까워서일 수 있다. 그동안 탁 행정관은 문 대통령의 수많은 행사들을 기획.연출하면서 문 대통령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취임 이후 있었던 여러 행사에서 얻었던 문 대통령의 좋은 느낌도 그의 작품일지 모른다. 그렇게 재주 많은 기획연출가를 놓치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중한지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이유 역시 온당하지 않다. 역시 근거 없는 추측이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의 역사적 과제를 안고 출범한 정부이다. 그런데 적폐를 청산하려면 먼저 내가 떳떳하고 당당해야 한다. 사방에서 손가락질하는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서 개혁의 영(令)이 설 리 없다. ‘적폐세력’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야유를 낳을 뿐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원칙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림”이라고 되어있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얘기이다. 문 대통령이 아끼는 탁 행정관을 버려야 원칙이 살 수 있다. 탁 행정관의 문제는 단지 그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끄는 동안 이제는 문 대통령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어째서 민심의 요구에 아무런 응답이 없는가. 이것은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비단 탁 행정관 뿐이 아니다. 인사청문회가 있게 될 후보자들 가운데 송영무 국방, 조대엽 고용노동 장관 후보자 등을 둘러싼 논란이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불거진 의혹들의 진상이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확히 규명되어야 하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켜야 할 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경우로 판명된다면 역시 읍참마속의 결단을 내릴 일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다. 집권 초의 높은 지지율에 고무된 나머지 원칙 보다 여론조사만 믿고 가다보면, 바로 그 여론조사에 의해 흔들리는 상황을 언제 맞게 될 지 모른다. 잘못된 것으로 확인된 문제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바로잡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탁 행정관을 껴안고 있는 모습은 ‘잘못한 일을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고작 행정관 한 사람의 문제로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고작 행정관 한 사람의 문제로 신뢰를 잃는 모습이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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