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민 정치지형 급변에 위기감...文의 최대난제 ‘여소야대 국회’

[폴리뉴스 정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 1달도 안 돼 사사건건 야당과 충돌하고 있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새 정부와 야당은 지난 대선의 열기를 식히고 달라질 정치지형에 대비하는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인사청문회 대치정국으로 흘러갔다.

이러한 흐름은 이낙연 국무총리 국회 인준 때 자유한국당이 표결에 불참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고됐다. 이어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을 공격하는 장으로 활용됐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문 대통령과 야당 간의 치열한 격전장으로 변모하며 정국의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11조원의 일자리 추경안 국회 처리를 위해 지난 6월12일 국회 시정연설까지 했음에도 야당, 특히 한국당은 요지부동이다. 명분은 ‘일자리 창출’이 추경 요건에 맞지 않고 공무원을 늘여선 안 된다는데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사청문회 등과 연계돼 문 대통령 국정운영 리더십을 약화시키는데 있다. 정부조직법 처리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경우 추경과 정부조직법 처리는 인사청문회와는 별개로 진행하자는 입장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문 대통령의 리더십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목표는 한국당과 공유하고 있다.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야3당은 방법론은 달리하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을 약화시키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지난 대선 때 중요한 화두였던 ‘협치’가 내각 인선 및 추경 처리까지는 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부 출범 1달도 안 돼 무용지물이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애당초 ‘협치(協治)’란 개념 자체가 권력배분을 구체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는 존재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까지는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일정 합의의 모양새를 내각 출범 때까지는 끌고 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엇나갔다.

야당들은 문 대통령의 인사가 ‘협치’를 무너뜨린 이유라고 한결 같은 주장이지만 이보다는 야당들의 정치적 절박함에서 기인한다. 대선 이후 질주하는 문 대통령 주도 정국에 끌려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사배제 5원칙(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표절)’을 제시한 문 대통령이 야당들에게 빌미를 제공했고 야당은 주어진 ‘빌미’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하는 국면이 전개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을 약화시키는 1차적 타깃이 ‘인사청문회’다. 문 대통령의 인사 문제를 도드라지게 하면 할수록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떨어지고 이것이 야당들의 정치적 활로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당을 비롯한 야3당은 장관 후보자들의 ‘지명철회’와 추경심사, 정부조직법안 처리 등을 사실상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후 변화하는 정치지형, 한국-국민의당 절박한 위기감 

야당들이 새 정부 인사청문회부터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 대선 득표율에서 드러난 정치지형 ‘문재인 41.1% 대 홍준표 24.0% 대 안철수 21.4% 대 유승민 6.8% 대 심상정 6.2%’이 주는 함의다.

2016년 20대 총선은 PK(부산/경남)를 중심으로 한 영남 균열로 새누리당 지배구도 약화, 호남에서의 국민의당 주도권 장악, 세대구도에 힘입은 민주당의 수도권 석권으로 표상된다. 그러나 이 결과는 새 정치지형으로 향하는 과도기일 뿐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국사의 중대한 변곡점을 거치며 치른 19대 대선 결과는 ‘민주당 주도의 한국 정치지형’을 예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TK(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1위를 하고 구 새누리당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은 TK에 갇혔고 국민의당은 호남주도권을 민주당에 내줬다. 한국당은 홍준표 후보를 내세워 참패를 모면했다고 자위하기엔 정치적 현실은 너무나 처절했고 국민의당은 호남이 기반을 상실한 상황의 반전이 없으면 다음 선거를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5월10일 대통령 취임 후 보인 거침없는 행보는 대선에서 확인된 정치지형을 더욱 세차게 몰아가는 형국을 만들었다. 문 대통령은 새롭게 제시한 ‘안보’ 패러다임과 ‘애국’적 가치를 통해 보수기반의의 근저를 흔들면서 한국당을 위협했고 ‘탕평인사’와 5.18정신 헌법 전문 게재를 통해 호남 민심을 장악했다.

2018년 6.13지방선거가 1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이러한 정치지형의 변화 흐름이 이어진다면 한국당과 국민의당에게는 위기다. 지금 당장은 이러한 흐름을 끊고 최소한 지난 대선 정치지형 수준에라도 묶어둘 수 있다면 묶어둬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의 ‘인사청문회 정국’에 베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야당들의 노력에도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6월3주차(19~23일) 취임 7주차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74.2%다. 이른바 ‘인사청문회 정국’으로 2주 연속 떨어졌지만 문 대통령 주도에서 ‘여야 교착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지지율대인 50% 수준까지는 갈 길이 아직 멀다. 한국당이나 국민의당으로선 내년 지방선거를 생각하면 현행 5당 체제를 가정할 경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 이하로 가줘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정당지지도다. 민주당은 53.6%로 2위인 한국당(14.5%)을 완전히 압도했다. 국민의당(6.3%), 정의당(6.4%), 바른정당(6.2%) 등은 6%대 지지율을 보였다. 민주당 독주와 나머지 4당의 고만고만한 경쟁은 대선 이후 이어져온 흐름이다(응답률은 5.2%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당은 영남의 한 축인 PK를 민주당에 내주면 장기적으로 고사할 수 있다. 선거국면에서 지지층이 결집하기 때문에 TK만큼은 지킬 수 있겠지만 TK에 갇힌 한국당에게는 미래가 없다. 그 때문에 지방선거 PK공략 선봉장인 문 대통령의 리더십을 필사적으로 깎아내려야만 한다. 국민의당은 한국당보다 더 심각하다. 호남은 이미 민주당과 문 대통령에게 넘어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지금의 정치지형으로는 내년 지방선거를 돌파하기 어렵다. 지역적 기반이 취약한 바른정당과 정의당 또한 내년 지방선거가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누리고 있던 지역기반을 내줘야하는 한국당과 국민의당의 절박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인사청문회’ 정국이 더욱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당의 이념 공간 치고 들어가는 文대통령의 ‘애국’과 ‘안보’ 행보

자유한국당은 여기에 더해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의 이념적 공간까지 치고 들어가는 상황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과거의 ‘반공반북=애국’이라는 도식에서 탈피했다. 그러면서 현충일에서 기려야할 ‘애국’의 범위를 산업역군, 민주화운동 등으로 확대한 ‘문재인표 애국’을 선보였다.

문 대통령은 독재정권의 반북 안보이데올로기를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로 비판하며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희생’, 6~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 여공의 ‘희생과 헌신’,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 등을 6.25 호국영령의 ‘희생’과 베트남전 ‘희생’과 같이 동열에 올렸다.

독립운동가 품속의 태극기, 6.25 전장에서 펄럭이던 태극기, 파독광부·간호사를 환송하던 태극기, 5·18과 6월 항쟁의 현장의 태극기는 모두 같은 ‘태극기’라며 그 현장에 존재했던 국민 모두가 같은 ‘애국자’로 부르며 문 대통령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데 좌우가 없었고 국가를 수호하는데 노소가 없었듯이, 모든 애국의 역사 한복판에는 국민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6.25 이후 60여 년 동안 반북 안보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던 ‘애국’의 범주를 우리사회 하부에서 희생한 산업역군, 민주화운동으로까지 과감하게 확장한 것이다. ‘촛불혁명’이 가져다준 성과물을 ‘애국’의 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러한 ‘문재인표 애국론’은 보수정당의 이념적 공간을 파고드는 것으로 자유한국당에게는 위협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과거의 관성적인 보수 가치가 붕괴하는 흐름에서 반북 이데올로기와 시장 강자들에 편승했던 기존의 낡은 보수의 ‘재편 과정’에  문 대통령이 깊숙이 발은 내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 ‘안보 대통령’을 내세워 자신의 전장(戰場)을 ‘보수지형’에 뒀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새로운 ‘애국’과 ‘안보’ 가치를 내걸고 보수 재편 경쟁에서 문 대통령과 민주당도 세력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든든한 안보’를 강조한 문 대통령이 6월23일 탄도미사일 현무2 발사시험장을 참관한 자리에서 “나는 대화주의자다. 그러나 대화도 강한 국방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고 포용정책도 북한을 압도할 안보능력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며 ‘안보’와 ‘반북 이데올로기’가 굳게 결착돼왔던 낡은 보수이념에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보수 파고들기는 단순히 ‘산토끼’를 잡으려는 정략을 넘어선 것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한국의 보수가 민주화운동과 산업역군의 애국적 희생을 외면한 대가이기 때문에 ‘애국’적 가치의 재정립 차원에서 바라봐야할 지점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광주 5.18 기념식에서 참석해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게재하겠다고 약속했고 6월10일 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민주화운동을 우리 역사의 정통성으로 삼았다. 진보적인 가치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보수적 가치 재편에 나선 것이다.

‘일자리 창출’로 ‘민생’ 주도권 장악...일자리 의제 넘겨준 보수정당 

문 대통령은 ‘애국’과 ‘안보’ 영역 뿐 아니라 다른 보수의 핵심의제들도 자신의 어젠다로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일자리 창출’은 당시 집권 보수정당의 의제였다. 민주당의 ‘복지’공세에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며 맞장구치며 ‘일자리 창출’을 보수정당이 사실상 독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81만개 공공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켰다.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지난 대선의 핵심 쟁점이 됐을 뿐 아니라 새 정부 출범 이후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추경’은 당장의 여야 핵심 현안일 뿐 아니라 문 대통령 임기 내내 ‘일자리 공방’은 최고의 정치 의제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일자리 창출’ 의제를 주도한다는 것은 ‘민생’의 핵심고리를 장악했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에게는 뼈아픈 부분이다. 참여정부의 실패가 4대 개혁입법 처리에 ‘이념 갈등’에 매진하면서 ‘민생’을 등한시한데 있다고 지적해왔던 한국당으로선 문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행보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지금 한국당은 낡은 이념에 매달려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제출한 추경안을 반대하면 할수록 이러한 비판은 더욱 비등해질 것이다. 또 2018년도 이후 매해 예산안에 공공일자리 예산 비중이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야당으로선 이에 대해 등을 돌리면 ‘민생’을 외면한다는 프레임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 또한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얻는데 올인할 것이다. 집권 초기에는 소통행보나 통치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지지율이 상승할 수 있지만 집권 6개월 이후부터는 성과가 구체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민들은 서서히 지지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文대통령 최대난제 ‘여소야대 국회’, ‘민심’만이 유일한 돌파수단  

지금 관심의 핵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방선거 전까지 50%대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국정을 주도할 것인지, 민주당 지지율이 현재처럼 타 정당들을 압도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여부다.

한국당과 국민의당이 ‘인사청문회 정국’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도 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여론조사 지표상으로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민심을 주도하지만 국회란 공간은 여소야대의 구조다. 문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하고도 유력한 수단은 ‘여소야대’의 국회구조다.

이것이 지금의 정치상황을 만든 배경이다. 문 대통령이 민심을 동원해 정국을 주도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이에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보수언론 또한 마찬가지며 이른바 ‘적폐세력’으로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는 검찰 등의 세력들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이 ‘적폐 개혁’을 추진하려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반문재인 연대’ 또한 강화되는 정치적 역학구조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소야대의 국회’는 주전장이 되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추경안 심의 거부로 국회정상화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대선 불복”이라고 야당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지만 정치의 속성상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핵심은 문 대통령의 ‘여소야대 국회’를 어떻게 돌파해내느냐의 문제다. 국민들의 이목(耳目)도 이 지점에 쏠려 있다. 지금까지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안 됐기 때문에 민심을 동력 삼아 어렵게 난관에 임하고 있으나 계속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도모할 수도 없다. 부작용만 심화시킬 뿐 정치적 실익이 없다. 5당체제에서 캐스팅보트인 국민의당의 협조도 한계가 뚜렷하다. 오히려 1년 후 지방선거에서 호남 주도권을 두고 생사를 건 전쟁을 벌여야 하는 관계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아는 문 대통령은 자신이 기댈 유일한 언덕을 ‘민심’에 두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사에서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추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는 말 속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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