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난 뒤 안철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지만, 정치라는 생물은 앞날을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준비하고 기다리면 한 번 쯤은 기회가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 본인이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환골탈태 한다는 전제 위에서 말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어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자신의 당 대표 출마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했던 얘기라 한다. 그가 정치적 재기를 하려면 바뀌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문했고, 당사자가 자신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으니 이제 된 것일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선 이후 안철수의 모습을 보노라면 수긍이 되지 않는다. 제보조작 사건에 대한 사과를 그렇게까지 늦추고 늦추어 마지못해 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을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피로증을 유발하는 모습은 대선 이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탓이다.

원점에서 자숙하고 성찰하겠다던 다짐이 있은지 20여일 만에 그는 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의 출마선언문에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안중근의사’ 얘기가 나왔다. 자신의 비장한 각오를 표현한 것이었겠지만, 당내 경선에 나오면서 ‘조국을 구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예로 드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다수의 국민들은 박근혜가 물러나고 정권교체가 된 지금의 상황을 일단은 반기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조국을 구하기 위해 독립운동 하려고 두만강을 건너야 할 지경이라고 까지는 생각들 하지 않는다. 그토록 절박한 것은 안철수 본인과 지지자들이지 국민은 아니다. 그의 많은 언어들이 국민과 정서적 소통을 이루지 못하여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던 대선 때의 모습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갇혀있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안철수에게 필요했던 것은 5년 후에는 이길 수 있는 아이디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껴안을 수 있는 모습의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안철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재기와 재도전을 원한다면, 다시 실패하지 않고 한번 쯤은 올 수 있는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성찰과 변화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왜 힘들어하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답을 찾아야 전과는 다른 길이 열릴 수 있었다.

지금 시간에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하방’(下方)이 아니었을까. 안철수가 대선에서 패배했던 것은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는 국민의 마음을 껴안지 못한채 공허한 4차산업혁명의 미래 얘기만 했던 데 큰 원인이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힘들게 살고 있는 국민들의 삶의 현장을 아무도 모르게 찾아다니면서 애환을 같이하고 땀도 흘리는 시간을 한 1년쯤 가졌다면, ‘새 사람’이 되는 것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잠을 못 이루며 고민해서 선택한 것은 전혀 다른 길이었다. 아무 것도 달라진 모습 없이 덜컥 링 위에 다시 올라버렸다.

그 모습 그대로 그냥 결기만 하면 미래가 있는 것일까. 아마도 안철수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아마도 대선 이전의 안철수와 대선 이후의 안철수는 정치적 방향성에서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그 달라짐의 의미는 굳이 예단하지 않고 여기까지만 얘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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