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문재인 정부는 왜 사과하지 않았나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div>
▲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이 '공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을 치르면서 신고리 5,6호기의 백지화를 공약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 측은 환경단체들과 이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권고대로 신고리 5,6호기는 그대로 건설하기로 결정내렸다.

과정이 어떠했든 문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공약을 파기한 결과가 되었다. 이 사안이 갖는 중대성을 감안하면 공약 파기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여론에 밀려 피치 못하게 파기한 것이라 해도 그렇고, 애당초 실행 의지가 없는 공약을 표를 위해 무리하게 내놓은 것이었더라도 사과할 일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문 어디에도 국민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표현되고 있지 않다.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습”과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에 대한 칭송만이 있을 뿐,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재개하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이나 우려 같은 것은 읽을 수가 없었다. 대신 문 대통령은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을 “마침내 지혜롭고 현명한 답”이라고 격찬했다. 정말로 공사 재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선 공약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던가. 임종석 비서실장은 한발 더 나간 모습이었다. 그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를 보여준 내 나라 대한민국과 그 위대한 국민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나는 원전의 위험성을 심각히 우려하여 그런 공약을 내걸었던 청와대라면, 공사 재개 결정 앞에서 안타깝거나 침통한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공론화위원회가 뭐라고 결론내렸든, 그 자체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신고리 5,6호기, 아니 원전의 위험성을 우려하여 백지화 공약을 내놓은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우려가 팽배한 청와대의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무엇이 청와대를 이렇게 고무시킨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물론 시민참여단에 의한 숙의민주주의 방식의 의미는 그것대로 찾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찬반이 엇갈리는 갈등 사안에 대해서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원전의 위험성을 논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의사결정 방식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숙의민주주의 방식이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하더라도, 원전의 위험성은 여전히 남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공약 파기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린 것이 청와대를 그렇게 고무시켰던 것일까. 청와대는 이번 일에 대해 즐거운 모습으로 반길 것이 아니라, 침통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돌아보니 추가 배치까지 해버린 사드 때도 그러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때 내놓았던 ‘절차적 정당성’이나 ‘국회 비준 동의’ 같은 공약은 사실상 파기된 채 추가 배치까지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는 상황에서 한미 공조를 의식한 결정이었겠지만,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것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도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하지 않고 지나갔다. 사드와 관련해 대선 때 내놓았던 말들에 진정성이 실려 있었던 것인지 역시 의문이 든다. 사드 추가 배치로 표현된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이 오히려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그 이후 상황은 보여주고 있다.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막상 집권하고 나면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공약들까지도 반드시 다 지키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원전 건설이나 사드 배치 같은 정책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 일에 대해 공약이 파기되고 입장이 뒤바뀌는데 대해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설명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고서 복지공약들을 줄줄이 파기했을 때 그렇게도 비판했던 것이 지금의 집권세력이 아니었던가. 촛불시민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라면 보다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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