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 일환
- 2014년 발행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 후속작
-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 2년간 집필
- 용산기지 조성 이전 그곳에 살던 ‘사람’에 주목…전체 7장으로 구성
- 사진, 지도 등 시각자료 풍부


[폴리뉴스 김정훈 기자]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일환으로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이하 ‘둔지미 마을사’) 책자를 1000부 발행했다.

둔지미 마을사는 2014년 발행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의 후속작이다.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지난 2년간 공들여 집필했다.

전작이 러일전쟁(1904~1905) 시기부터 6.25전쟁까지 주로 용산 ‘기지’의 역사를 다뤘다면 이번 책은 그곳에 살던 ‘사람’에 주목한다. 사진, 지도 등 시각자료도 한층 풍부해졌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둔지방’(屯之坊:둔지산이 위치한 현재의 용산기지와 그 주변 일대)이 신설된 18세기부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까지로 전작과 일부 내용이 겹치지만 대부분 새로운 이야기다.

책은 7장으로 이뤄졌다. 1장에서 인문지리적 관점으로 둔지방의 기원과 변천을 다루고 2장에서 둔지방 주민 천흥철의 준호구(准戶口:조선시대 호적)를 통해 당대를 재구성한다.

천흥철은 훈련도감 소속 직업군인으로 둔지방 하부 행정조직 중 하나인 ‘지어둔계(之於屯契)’에 거주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지어둔계가 둔지미계로 명칭이 바뀌었고 이곳 ‘둔지미 마을’은 러일전쟁 이후 일제 군기지 건설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책 3,4장은 일제의 ‘용산 군용지 수용 문건(1906)’에 대한 상세 분석이다. 김 실장이 아시아역사 자료센터에서 최초 발굴한 이 문건은 일본 방위성이 소장한 일제시기 기밀문서 ‘밀대일기(密大日記)’ 중 하나로 전체 61쪽 분량이다. 수용 예정지 내 가옥, 묘지, 전답 현황을 조사, 기록했다.

문건에 포함된 ‘한국 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에는 신촌(新村), 대촌(大村), 단내촌(壇內村) 등 옛 둔지미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상세히 나와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책 5,6장은 2차에 걸친 일제 군기지 조성 과정과 주민 이주 과정을 담았다. 1908년 경 군용지로 강제 수용된 둔지미 신촌에는 1909년 일제의 용산총독(통감)관저가 들어섰다. 1912년에는 해당 건물이 일본군사령관 관저로 용도가 바뀌었고 지금은 미군 드래건힐 호텔(DHL)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다.

일제는 제1차 용산기지 공사(1906~1913)를 끝내기 전부터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전략 차원으로 조선 내 상주 사단 설치를 추진한다. 본국에서 군사를 교대 파견하는 기존 ‘주차군(駐箚軍)’ 체제로는 병력 운용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일제는 제2차 용산기지 공사(1915~1922)에 돌입, 또 한 번 주민 강제 이주를 실행했다. 현 용산가족공원 일대에 자리했던 둔지미 대촌, 단내촌 주민들은 이때 보광동(보광리) 지역으로 터전을 옮겼고 마을이 있던 곳에는 1921년 대규모 연병장이 들어섰다.

책 마지막 장은 보광동에 거주하고 있는 둔지미 마을 후손들의 증언을 소개한다. 서울역사박물관이 편찬한 ‘보광동 사람들, 보광동(2008)’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용산과 용산기지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며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 참고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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