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조작 사건을 대하는 여상규 의원의 태도

여상규 의원 <사진=연합뉴스>
▲ 여상규 의원 <사진=연합뉴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역사는 고문(拷問)과 함께 해왔다. 그것도 3천년 가량 합법적인 수단으로 인정되어 왔다. 브라이언 이니스의 책 『고문의 역사』를 보면, 역사 속에 사용되었던 수많은 고문의 방법들이 등장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의 몸을 상하로 잡아당기는 고문 도구가 쓰였다. ‘손가락을 죄는 틀’은 17세기에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소개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했다. 몸 여기저기에 전극을 부착해 전기충격을 주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환각제를 포함한 다양한 약물을 투여했다. 이렇게 그리스·로마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문명권에서 고문은 권력을 유지하고 타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고문은 종교의 이름으로도 행해졌다. 로마 교회의 종교재판소는 혐의만으로 체포하여 자백할 때까지 고문했고, 자백하고 나면 처형했다. 종교개혁 시대인 1572년에 있었던 고문에 대해 모틀리(J. L. Motley)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근육들을 잡아 늘이지만 그것을 끊어버리지는 않을 정도로, 사지를 상하게 하지만 그것을 산산히 부수어 버리지는 않을 정도로, 가장 뛰어난 방법으로 육체를 고문했다.”
 
고문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잔인성이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져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홀로코스트는 그같은 잔인성이 낳은 최악의 재앙이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고문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과거 고문 조작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사라진 고문가해자’들을 추적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를 통해 제2, 제3의 ‘이근안들’에 의한 국가범죄 행위를 고발했다.

여기에는 현직 국회의원도 등장한다. 1981년 '진도 가족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 석달윤 씨의 1심 판결에 관여했던 판사가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여 의원은 당시 재판을 맡아 1심에서 석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이로 인해 석 씨는 18년간 옥살이를 했고 1998년에야 가석방되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이다.

석 씨의 아들은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남자 성기에 볼펜 심지를 끼우는 고문'과 '양쪽 종아리 무릎 뒤에 각목을 끼워 매달아 놓는 고문' 등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고문 수사를 통한 사건 조작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현직 국회의원으로 있는 당시 판사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다. 책임을 못 느끼시느냐"는 질문에, 여 의원은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이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잘못된 판결이었다. 고문 사실을 알고서 그런 판결을 내렸다면 공범이 되는 셈이고, 몰랐다면 판사로서의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비웃는 모습을 보면 고문의 역사에서 나타난 인간의 잔인성이 오버랩된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가 인간’임은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남겼던 고문의 기록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고문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저주받은 무슨 표지가 얼굴에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증오심이나 적개심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거나 눈에 살기가 감도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미소, 장난기 어린 미소조차 짓기도 하며 한숨도 쉬는, 어디서나 부딪칠 것 같은 그저 그런 경찰관들 중의 한 사람 한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한 딸의 생활 걱정, 그 사위가 학생운동 출신 전과자여서 걱정이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조차 있었습니다. 군대 나간 아들에 대한 걱정, 대학진학을 눈앞에 둔 자제를 가진 어버이로서 당연히 부딪치는 조바심, 서민이면 누구나 안게 되는 살림살이 걱정, 박봉에 대한 불평 등 종로나 명동의 어느 길거리에서도 부딪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저 끔직하고도 무서운 고문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김근태, 『남영동』)

그래서 김근태는 “이 사람들의 저 태연함, 고문을 가하면서 짓는 야릇하고도 냉담한 미소에 질려버렸습니다”라고 했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강제수용소에서 ‘최악의 사람들’은 생존했고,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며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인간의 파멸을 가져온 사건에 대해 죄의식도 괴로움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고문 수사대로 내린 판결로 인간을 파멸로 이끈데 대해 저토록 태연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김근태가 말한 ‘고문자들의 태연함’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가 했던 말을 그대로 중얼거리게 된다.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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