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누가 선교사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지난 2016년 방영됐던 인간극장이 제조명 되고 있다.

지난 2012년 1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필리핀 사람들을 찾아서 의료봉사를 하는 외과의사 박누가(60) 씨의 이야기가 방영됐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필리핀 오지를 누비는 그는사실 남의 건강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췌장암과 두 번의 위암 수술, 그리고 간경화와 당뇨까지…병마와 싸우며 아픈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는 누가 씨의 이야기는 그해 겨울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병원 문턱도 못 넘는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을 위해 24시간 병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장거리 오지 의료봉사를 다녀온 뒤에도 제대로 쉴 곳조차 없었던 좁은 병원은 증축 공사를 하는 중이고 마무리 단계다.

아픈 사람을 더 많이 치료하기 위해 입원실도 만들고, 이제야 제법 병원다운 모습을 갖추는가 싶어 설레던 그에게 지난 5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위암이 재발한 것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정작 자신의 치료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먼저인 그는 오늘도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 안 아프고 사랑하면 안 될까요?

의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시작한 의료봉사가 어느덧 27년째.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골짜기 무의촌을 직접 찾아다니며 아픈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박누가 씨.

그러는 동안 정작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줄도 몰랐다.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간염 등 오지를 다니며 십여 가지 넘는 질병을 직접 앓았던 그는 12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아픈 사람을 더 사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시한부였던 그에게 12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 또 한 번 시련이 찾아왔다.

위암 4기, 병원에선 남은 시간이 6개월 뿐이라지만 그는 오늘도 “메디컬 체크 업”을 외치며 벽촌 오지의 아픈 사람들을 찾아간다.

아픈 만큼 사랑했기 때문일까. 필리핀의 많은 사람들도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 아파한다.

# 만약 내가 다시 필리핀에 오지 못한다면…

30년 가까이 다닌 필리핀 오지 마을만 50여 개.차로 반나절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도 있다 보니 늘 출발은 새벽이다.

병원 진료가 끝나는 대로 약과 간단한 수술도구를 챙기는 것도 누가씨의 몫이었다.

5년 전엔 누군가 한 명 있었으면 했던 누가씨 곁에 지금은 든든한 조카 김주희(34) 씨가 있다.

주희 씨가 병원 살림을 맡아주니 누가 씨도 마음 놓고 치료를 받으러 한국을 간다.

누가 씨는 항암치료를 위해 필리핀을 떠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필리핀 사람들은 누가 치료할 것인가…

항암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고, 열이 오를 때마다 그는 걱정부터 앞선다.

#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에 누가 씨만큼이나 가족들도 힘들었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누나들까지 가족 모두가 필리핀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에 전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누구도 누가 씨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항암주사를 맞고 퇴원하는 곧장 누가 씨는 누나들 몰래 필리핀으로 떠난다.

누가 씨 어머니와 큰누나, 그리고 큰형까지 모두 암과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터라 누가 씨 누나들은 동생마저 잃게 될까 봐 눈물부터 글썽인다.

암 투병으로 고생하는 누가 씨를 위해 누나와 매형은 직접 유기농 텃밭을 가꾸고, 된장을 만들어 필리핀에 보내는 정성을 쏟는다.

# 아파도 행복합니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오로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시작한 의료 봉사.

산속까지 찾아와 무료로 진료해 주는 이방인 의사를 위해 오지 사람들은 코코넛과 파파야로 마음을 대신한다.

착하고 순수한 필리핀 사람들을 보며 그는 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난다.

아파보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됐다는 누가 씨는 아파도 행복하다고 굳게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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