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정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퇴 여부가 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야당들은 그의 사퇴를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도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김 원장 본인이나 청와대 입장에서는 수세적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자유한국당의 공세 가운데 정치적 저의가 앞서고 지나친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그래도 김 원장의 잘못들은 확인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피감기관의 돈으로 세 차례나 외국을 다녀온 일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고, 그 이외에도 후원금 관련 부분 등 의아하게 생각되는 의혹들이 몇 가지 더 있는 상태이다. 금융개혁의 칼을 들어야 하기에 도덕적 권위가 서지 않으면 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금감원장이다. 다른 곳도 아닌 금융기관들과 얽힌 의문들이 여럿 살아있는 상황에서 금융개혁의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같은 입장을 이례적일만큼 연일 밝히는 것을 보면, 청와대의 ‘김기식 사수’ 의지도 매우 강해 보인다. 어째서 청와대는 여러 정치적 부담과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김기식을 지키려하는 것일까.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초반의 청와대 입장이었지만, 그 뒤로 다른 여러 의문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약해지게 되었다. 이제는 김 원장의 사퇴에 대한 정무적 판단이 우선되는 상황이 된 것으로 비쳐진다. 야당의 총공세 속에서 김 원장을 물러나게 하면 청와대의 인사책임론으로 이어질 것이고 야당한테 밀리는 상황이 계속될 것에 대한 우려가 클 법하다. 금융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아닌가도 의심할지 모르겠다.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에 대한 해명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청와대가 그를 사수하려는 모습은 일종의 기싸움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야당이나 어떤 세력들의 저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높이다. 김기식 사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자유한국당의 모습도 지나치지만, 어떻게든 김기식을 지키고자 하는 청와대의 모습도 지나쳐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김기식이 물러나면 금융개혁을 할 사람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들린다. 거칠은 말로, 그가 아니면 대한민국에 금감원장을 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그래도 수많은 금융전문가들이 있는 나라인데 그 가운데서 금융개혁을 이끌 다른 인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김 원장에 대한 청와대의 집착은 문재인 정부의 좁은 인재풀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김 원장을 둘러싼 이번 논란 과정에서도 다시 알려졌듯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부에는 과거부터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가까운 관계였던 인사들이 얽히고 섥혀 있다. 당과 청와대, 연구소, NGO 등을 통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 추천하고 요직을 맡는 관계가 되어왔다. 서로 알고 친한 사람들끼리 국정의 핵심부를 차지하는 것은 일면 안전한 방식일 수 있다. 이미 가깝고 서로 생각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호흡을 맞추는 일이 쉬울 것이고 크게 충돌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하고 익숙한 방식이기 때문에 따르는 문제 또한 예고된다. 서로가 알고 믿는 사람들끼리는 검증과 판단의 잣대가 느슨해진다.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서로 간에 엄격해지지 못한다. 이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인사 과정에서 반복해서 드러났던 문제이고, 이번 김기식 원장 논란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더 위험한 것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모여서 국정을 운영하는 일이다. 정치적 출신 배경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국정을 해나갈 때 자신들과는 다른 국민들의 생각은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만이 선이요 정의라는 독선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정권 내부에서도 서로 간의 견제가 필요하다. 정권의 실세들과는 다른 판단과 목소리가 나오고 내부에서 활발히 토론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고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째를 맞게 된다. 그동안은 조기 대선 이후의 긴급한 환경 때문에 ‘우리끼리’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이 당연시 되었겠지만, 이제는 그 협소한 네트워크를 넘어서서 ‘대(大)탕평’까지는 안 되어도 ‘탕평’ 정도는 하려는 큰 정부의 모습을 보일 때가 되었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정권의 지지율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직은 야당들의 지리멸렬, 적폐청산에 대한 관심과 지지, 남북관계의 개선 등에 힘입어 높은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은 국정의 실질적인 성과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높은 지지율이 자신에게 독이 되지 않으려면 그에 도취되는 일 없이 먼저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을 보여야 할 일이다. 청와대가 자신들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김기식 원장 문제를 현명하게 매듭짓기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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