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무리한 수사’ 지적도

[폴리뉴스 김하영 기자] 지난해 10월부터 6월 중순까지 약 9개월간 은행권을 뒤흔들어 왔던 채용비리 사태가 지난 17일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각 은행의 전·현직 은행장 및 임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을 앞두고 있어, 은행권은 여전히 긴장감에 휩싸인 모습이다.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는 지난해 10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제기한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에서부터 불거졌다. 당시 심 의원은 “우리은행이 2016년 하반기 신입직원 공채시 16명을 금감원이나 국가정보원, 은행 주요 고객의 자녀와 친·인척, 지인 등을 특혜 채용한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KB국민·KEB하나·BNK부산·DGB대구·JB광주은행 등 5개 시중은행에 대한 채용비리 의심 사례를 적발해 검찰에 넘겼고, 서울북부지검·서울서부지검·서울남부지검·부산지검·대구지검·광주지검 등 전국 6개 검찰청이 수사를 벌여왔다.

지난 17일 대검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하나·우리·부산·대구·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를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수사한 결과, 12명을 구속 기소하고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양벌규정에 따라 회사도 재판에 넘겨졌다.

은행 6곳에서 ▲임직원 자녀 청탁 ▲외부인 청탁 ▲성차별 채용 ▲학력 차별 ▲지역 우대 등
채용 관련 비리 건수는 무려 695건에 달했다. 국민은행 368건, 하나은행 239건, 우리은행 37건, 대구·광주은행 각 24건, 부산은행 3건 순이었다.

은행권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물 중 은행장급은 함영주 하나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성세환 전 부산은행장,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등이 포함됐다. 채용비리에 관여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경우, 기소 대상에서 빠지면서 ‘CEO 리스크’ 우려를 한시름 덜게 됐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하나은행 채용비리 특별검사 결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금감원은 “2013년 공채에서 최종 합격한 지원자의 추천인이 ‘김○○(회)’이며, (회)가 통상 회장이나 회장실을 뜻한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에 대해서도 윤종규 회장의 종손녀(누나의 손녀)가 국민은행에 합격할 당시 점수 조작 등 특혜가 있었다는 검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의 회장 들이 채용비리에 연루됐었던 것 같은 의혹이 제기됐던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지배구조 문제를 놓고 민간 금융회사와 갈등을 빚자, 무리하게 검사를 확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연임’을 문제 삼으며,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해왔다.

금감원은 올해 초 차기 회장 선임절차를 진행 중인 하나금융에 대해 회장 선임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기존 일정을 강행하며 김정태 회장을 최종후보로 선정했고, 이후 김 회장의 3연임이 확정됐다. 당시 최흥식 금감원장은 “그 사람들이 (금감원) 권위를 인정 안 하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최 원장이 지난 2013년 하나금융 사장 시절, 지인 아들의 하나은행 채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를 진두지휘해온 금융감독기관 수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최 원장은 지난 3월 스스로 사의를 밝혔다.

금감원은 최 전 원장이 불명예 퇴진한지 하루 만에 20여명 규모의 검사 인력으로 구성된 특별검사단을 투입하며, 하나은행에 대한 고강도 검사를 시작했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인력과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며, 사실상 무기한 검사를 공언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금융당국의 심기가 불편해졌고, 이로 인해 금감원이 은행권 채용비리 조사와 검찰 고발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울러 이같은 금감원 행태가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키고, 해당 은행들에게도 적잖은 피해를 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 채용비리가 확인된 은행들의 경우, 재발 방치 차원에서 은행연합회 주도로 마련된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도입하고, 특혜 합격자에 대한 채용 취소 및 면직, 피해자 구제에 나서기로 했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부정청탁으로 합격한 직원에 대해 은행은 해당 합격자의 채용을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다. 이들은 이후에도 일정 기간 응시 자격이 제한된다.

채용비리에 따른 피해자를 구제하는 규정도 마련됐다. 피해자에게 피해 발생 단계 바로 다음 전형에 응시 기회를 제공한다. 즉 필기전형을 통과했지만 청탁자에 밀려 면접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 피해자는 면접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다.

이 밖에 ▲필기시험 도입 ▲채용 과정에 외부 전문가 참여 ▲성별·연령·출신학교·출신지 등에 따른 차별 금지 ▲임직원 추천제 폐지 ▲블라인드 채용 방식 등이 규정됐다.

은행연합회는 “모범규준을 통해 은행들은 채용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채용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은행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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