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스페셜 방송으로 뽀빠이 이상용편을 방송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뽀빠이' 이상용 '올리브' 같은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 가족을 위해 피땀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아버지 이상용! 

1970년대 어린이들의 우상, 80년대 군인들의 맏형으로 큰사랑을 받았던 이상용! 뽀빠이’를 닮은 그는 ‘올리브’같이 키 크고 늘씬한 아내 윤혜영씨를 고향 누나의 집에 서 우연히 만났다. 놓칠 수 없단 일념으로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 이상 용. 하지만 결혼 후 외판원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청량 리에서 동두천까지 걸어 다니며 물건을 팔았지만 좀처럼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른 살에 외판원을 그만두고 무작정 방송을 해야겠단 일념으로 MBC를 찾아왔다. 방송국 청소를 자청하며 얼굴을 알린 이상용. 각고의 노력 끝에 1973년 ‘유쾌한 청백전’의 출연 기회를 잡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방송에 성공적으 로 데뷔했다.
그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단돈 2만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 할 수 없단 생각으로 이상용은 일에만 전념했다. 방송에 데뷔한 후 승승장구하던 이 상용은 1989년 ‘우정의 무대’ 진행을 맡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아버지가 많은 돈을 주고 가셨으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제가 열심히 한 것은, 내 세대에서 가난과 돈 없는 것을 끝내야 되겠다. 우리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거든요" - 이상용 인터뷰 中 

자식들이 크는 모습을 볼 새도 없이 바빴던 이상용은 75세가 된 이제야 비로소 자식 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아버지 이상용 의 모습은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봤다.

■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심장병 돕기 횡령 사건! 이상용 인생 최대 시련을 겪다!
 
승승장구하던 이상용에게 1996년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진다. 25년 넘게 직접 발로 뛰며 성금을 모아 심장병 어린이들을 도왔던 그가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보도가 난 것이다.

결국 사건은 3개월 만에 혐의점을 찾을 수 없어 불기소 처분되며 무혐의로 밝혀졌지 만 그에 대한 기사는 신문에 단신으로 보도될 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억울 함과 분통함에 이상용은 지금까지도 품에 불기소 확인증을 지니고 다닌다.

당시 이상용의 도움을 받았던 심장병 어린이 가족은 생명의 은인인 그와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인 심장병 가족들과 이상용. 그는 자신보 다 훨씬 작았던 아이들이 어느 새 스물여덟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다.

이상용의 심 장병 성금 횡령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아이들의 아버지들은 말도 안 되는 보도에 방 송국까지 찾아갔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횡령한 게 없는데 그날부터 꼼짝을 못했죠. 바깥에도 못 나가고 우정의 무대는 그날 자동적으로 없어지고 우리 가족들은 어떡해. 벼락 맞은 거죠.'

- 이상용 인터뷰 中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이 고통 받았어요. 방송기자가 정말 나쁘게 썼더라고요. 가면 쓰고 한 것 같이 썼어요. 그런데 나중에 무혐의라고 밝혀졌는데도 그에 대한 것은 신문에 안 내주더라고요."

- 아내 윤혜영 인터뷰 中 

"중국에 있던 저희를 선생님이 비행기 표까지 다 보내주시면서 까지 지원해주셨는데 너무 억울한 보도가 나서 제가 방송국을 찾아갔지만, 방송국 대문도 못 들어갔어요"

- 심장병 어린이 아버지 장태용 인터뷰 中 

어떤 시련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다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이겨냈다는 이상용. 험난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이상용의 긍정 에너지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났다.
 
■ 미국 버스 관광 가이드부터 한국 비닐하우스 일까지... 이제는 강연자로 제2 의 인생을 사는 뽀빠이 이상용! 

사건 이후 방송재개가 힘들어진 이상용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단돈 42만원을 들 고 다음해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2년 동안 버스 관광 가이드를 하며 하루 14시간 씩 버스를 탔던 이상용.

가이드로 번 돈을 단 1달러도 쓰지 않고 모아서 가족 들 곁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인해 가족들 모르게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심는 일까지 하며 이상용은 하루 25000원을 벌었다. 10년 가까이 방송 복귀가 쉽지 않았던 그는 체면을 내려놓고 온 갖 궂은일을 해냈다. 그렇게 버틴 끝에 현재 이상용은 강연자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 다.

비록 이제는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지만 75세의 나이에도 자신 을 찾아주는 곳이 있어 늘 행복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고 하는 이상용.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며 풍파를 겪은 이상용. 가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 와 고통의 시간을 겪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제는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살 고 싶다는 이상용의 인생 이야기는 5월 1일 방송된 <휴먼다큐-사람 이 좋다>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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