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마포구서 긴급토론회 개최…여성단체 대거 참석
위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 제시 및 2차 피해 지적

26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를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발제자들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 26일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를 주제로 긴급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발제자들이 발제하고 있다. <사진=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재판이 위력 입증을 두고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여성단체가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함을 지적했다.

350개 단체로 이루어진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 서교빌딩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민주언론시민연합도 공동주관했다.

이들은 안 전 지사의 사건을 중심으로 '위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역설했다.

"피고인측 증인신문, 채택했더라도 비공개 진행됐어야"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먼저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대한 활동경과를 발표하고 쟁점에 따른 대응활동을 소개했다.

배 상임대표는 피해자의 법정 증인진술 당시 "비공개로 진행된 피해자 법정진술은 16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추행의 경위와 관련해서 피해자가 기억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다그치듯 반복해서 질문했고, 피해자는 몸의 느낌은 남아있으나 당시 상황 중 어떤 것은 기억나고 어떤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자책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피고인은 차폐막 뒤에 앉아 피해자가 증언하는 도중에 헛기침을 계속 했다. 이는 1차나 3차, 4차 공판 때 차폐막 없이 증인석에 앉아 있을 때는 하지 않던 행동"이라며 "수행기간 동안 뭔가 불편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헛기침을 했던 안희정 지사가 바로 옆에 있는 것 같고, 피해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면서 피해가 재현되고, 몸이 몹시 추워지는 등 신체적인 반응을 겪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피고인 측의 증인신문과 관련해선 "(해당 증인들은) 피해자에 대해서 객관적, 중립적으로 증언할 수 없는 사전적 사유가 존재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증언은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피해자 비난, 원망이 배경이 된 자의적인 평가나 왜곡으로 이루어졌으며, 매우 부적절했다. 특히 특수관계자인 피고인의 배우자의 증언은 그야말로 자극적일 수 밖에 없었으며, 채택을 했더라도 비공개로 진행되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측 증인 7명의 공개증언은, 모두 김지은을 ‘거짓말하는 사람’ ‘안희정을 좋아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7월11일과 13일 양일간 피고인측 증언이 그대로 언론에 노출되어 ‘안희정의 반격’ 정리되고 피해자가 진술은 또다시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민주원의 증언은 거의 실시간 중개되듯이 기사화됐고 결과적으로 안희정의 아내인 민주원이 ‘최대 피해자’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리고 안희정은 교묘하게 빠져나갔다"며 이것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로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미디어 통한 2차 피해 심각…알권리 빙자해 피해자 인권침해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미디어 보도를 통한 2차 피해가 심각한 상황임을 지목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진행된 재판 내용 언론 보도는 사실을 전달한다고 주장하지만, 효과적으로 피해자의 성격이나 이력을 드러내어 피해자의 증언에 신뢰를 없애려는 피고인 측의 전략을 뒷받침해 주게 됐다"며 "온라인 중심 뉴스 소비 상황에서 이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가중되고,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언론보도가 성폭력 사건 보도를 통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가 명확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위력에 의한 성폭력’ 개념을 알려야 했고, 성폭력 범죄가 어떤 것인가, 성폭력 범죄에 대한 피해자 유책론이 왜 문제인가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해나가는 것이어야 했음이 출발점이었다"면서 "이 지점에서부터 우리 언론이 새롭게 성폭력 사건 보도에 대한 저널리즘 윤리를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또한 안희정 성폭력 공판 보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빙자해 피해자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각 매체별 문제점과 부적절성의 수위가 다르지만, 큰 틀에서 공통된 문제의식은 이렇다"며 ▲성폭력 재판보도를 생중계 수준으로 전하고 토론 ▲성폭력 재판의 특성상 나올 수밖에 없는 사적 자료 보도 ▲안희정 측 주장들 그대로 보도 ▲과거 영상 찾아 피해자 얼굴 부각 등을 들었다.

이어 "현재 언론의 안희정 관련 재판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론은 공정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고 있는데, 국민은 자신이 거의 모든 정보를 균형 있게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판단하게 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상 위력 간음, 우월적 지위가 위력 판단의 객관적 기준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업무상 위력 간음에서의 '위력'에 대해 어떠한 판단기준을 정립해야 하는지 역설했다.

장 부연구위원은 "업무상 위력간음죄의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에 피해자와 행위자 간에 존재하는 피해자를 종속시킬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위력 판단의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월적 지위의 개념은 업무 및 고용 등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위를 넘어선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도의 지위와 세력"이라며 "업무상 위력의 객관적인 요건으로 인정되는 우월적 지위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은 행위자와 피해자의 업무 등 관계에서 부당하고 부적절한 요구와 이로 인한 근로권 및 인격권 침해가 반복 또는 지속적으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우월적 지위로 인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있다는 인식, 다시 말해 행위자의 부당한 요구를 피해자가 감내할 것이라는 행위자의 인식이 있었는지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는 이날 재판부에 제출하는 의견서로 발제를 대신했다. 그는 의견서를 통해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서 ‘위력’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본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라며 "현행법 상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 협박 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위력 행위 자체가 추행 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부동의를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보아야 하며, 부동의여부에 대해 판단할 때의 핵심은 당사자 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의 차이로 인해 피해자가 처해있는 위치를 고려해야만 한다"면서 재판부를 향해 "안희정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려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법적 정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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