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수혈세력 vs 관료세력 갈등’ 당연한 현상, ‘은산분리’ 등 진보적 ‘가치’ 다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 갈등설이 다시 불거졌다. 정부 출범 후부터 ‘경제 컨트롤타워’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잠깐 잠깐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지만 이번에는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보수-진보 진영과 언론이 서로 각을 세우며 확대 재생산하는 ‘장하성-김동연 갈등설’ 보도가 향하는 대상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개혁’과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진보진영의 ‘경고’이자 보수진영의 ‘부추김’이다. 좀 더 심각하게 보면 진보진영이 문 대통령에게 ‘결별’하겠다는 사전 통보다.

시민사회의 경제개혁 요구를 안고 집권한 ‘민주정부’들은 ‘진보적 경제개혁세력’을 경제정책 국정 동반자로 등용했다. ‘DJP 공동정부’였던 김대중 정부에서는 소수에 그쳤지만 노무현-문재인 두 정부는 과감하게 이들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았다.

외부 수혈세력으로서 국정운영에 참여하면 기존 관료체제와 갈등을 빚으며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세력’이 박힌 돌인 ‘경제관료 세력’과 서로 궁합을 잘 맞춘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정책철학의 차이보다 문화와 정서의 차이가 더 크기에 사사건건 부딪히며 서로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처럼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이 두 세력의 불편하고도 불편한 동거는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이다. 이질적인 두 세력이 서로 질시하고 경쟁하면서도 정책 사안별로 협조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경우 경제부처 내 ‘건강한 긴장관계’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요구를 담은 개혁정책이 현실경제에 큰 시행착오 없이 접목하는데 ‘관료’의 역량이 필요하고 관료체제도 외부 수혈세력에 의해 자극을 받아 변화의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장하성-김동연 갈등설’은 이러한 ‘건강한 긴장관계’가 작동한다는 지표이기도하다. 갈등설이 나오는 것은 삐걱삐걱하면서도 돌아간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근의 ‘갈등설’은 이러한 ‘건강한 긴장-갈등관계’ 범주를 넘어선 듯한 모양새다.

이는 문 대통령의 규제완화, 대한민국 최대재벌 삼성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 은산분리 완화 조짐 등이 맞물려 있다. 따라서 외부 수혈세력으로 들어난 ‘경제개혁세력’이 문재인 정권과 등을 지며 ‘철수’하는 사태로까지 번질지 여부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러한 경험은 한 번 거쳤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추진’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문 대통령의 ‘규제완화’, ‘은산분리 완화’가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이 결별로 가는 그 ‘지점’이 될 지 여부가 지켜볼 대목이다. 지금의 ‘갈등설’은 그 사전단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갈등설’의 본질, ‘은산분리 완화’ 두고 文대통령과 진보진영 간 ‘가치’ 싸움

‘장하성-김동연 갈등설’은 ‘외부 수혈세력’의 거취를 두고 벌이는 힘 싸움이다. 보수진영은 경험 없고 미숙한 ‘굴러온 돌’을 내치고 ‘박힌 돌’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고 진보진영은 문재인 정부가 핵심적인 ‘진보 가치’을 훼손하면 언제든 외부 수혈세력을 ‘철수’시킬 수도 있다는 경고다. 이는 모두 문 대통령에게 하는 얘기다.

그러나 이를 깊이 들여다보면 보수-진보 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진보진영과 문 대통령 간의 ‘가치’ 싸움이다. 특히 ‘은산분리 완화’와 ‘삼성 문제’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문 대통령의 행보에 진보지식인 모임 ‘지식인선언 네트워크’가 지난달 18일에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개혁 포기를 성토하고 나선 데도 이 같은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문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강조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얘기한 부분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진보진영이 ‘금산분리’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교조(敎條)화하고 있다는 우회적 비판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진영과 한미FTA 등의 갈등을 겪으면서 ‘유연한 진보’를 주창한 것과 비슷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원석 정의당 전 의원의 페이스북 글은 진보진영의 불쾌감이 묻어있다. 박 전 의원은 장 실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장 실장이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 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 ‘말을 할 수 없는 위치라 답답하다’, ‘밖에 나가 인터넷 언론사라도 만들어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등의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의원이 방점을 찍은 것은 “요 며칠 사이 외화된 바로 보면 균형추가 이미 기운 것이 아닌가 싶다. 문자 그대로 심각하다”며 문재인 정부가 경제관료 쪽으로 넘어갔다는 부분이다. 달리 말하면 ‘결별’을 검토해야 할 단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박 전 의원은 또 다른 페이스북 글을 통해 “그 모든 시간들을 관통해 존재하는 진짜 권력집단은 관료”라며 “정책의 미세조정 같은 것이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흔히 ‘ㅇ피아’로 지칭되는 관료기득권 체제야말로 진정한 적폐의 본산”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그 대안은 미우나 고우나 선출된 권력, 즉 의회를 강화하고 그 수준을 부단히 높여나가는 길 외에는 없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가 그 지름길”이라며 선거구제 개편과 내각제를 통한 ‘관료 적폐’ 청산을 얘기했다.

박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관료 적폐’와의 싸움에 패배했고 ‘관료 적폐 청산’을 위해선 의회권력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의당 당파성에 기반한 주장이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문재인 정부와 선을 긋자는 말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청와대가 ‘장하성-김동연 갈등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칫하면 문 대통령과 진보진영 간의 갈등이 ‘한미FTA 재판(再版)’으로 흐를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선 ‘규제개혁과 은산분리 완화’를 두고 진보진영을 설득해내야 한다. 실패하면 진보진영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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