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럼없는 악수와 90도 인사’ 北사회에 ‘문화 충격’, 백두산 천지 방문은 ‘민족’ 우선

문재인 대통령은 9월19일 밤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모인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북한 비핵화에 남북정상이 합의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은 9월19일 밤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모인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북한 비핵화에 남북정상이 합의했음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의 2박3일 평양 행보 중 평양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9.19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내용을 뛰어 넘는 세 개의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첫 번째 장면은 9월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의 환영행사에 이은 평양 시내 카페이드였고 두 번째 장면은 다음 날인 19일 밤 문 대통령의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집단체조극 ‘빛나는 조국’ 관람에 이은 15만 평양시민을 향한 연설, 세 번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한 백두산 천지 산행이다.

첫 번째 장면은 수직적인 권력문화 관행에 익숙한 북한 사회에 던진 근본적인 질문이다. 문 대통령은 평양 순안공항 환영행사를 마치고 전용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환영 나온 평양시민에가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유일지도체제인 북한체제에서 북한 지도자는 신격화된 대상이다. 따라서 남한 지도자가 스스럼없는 악수를 청한 자체는 ‘문화 충격’ 그 자체다.

다음으로 문 대통령은 준비된 전용차량에 오르기 전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평양시민에서 허리를 숙이고 90도에 가깝게 정중한 인사를 했다. 우리의 선거문화에서는 자연스런 모습이지만 북한에서는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인사는 ‘최고 존엄’에게만 허용된다. 공식 국체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지만 ‘유일영도 체제’가 우선시되는 체제가 낳은 산물이다.

수직적 국가와 사회의 예절 법은 권력서열의 표현방식이다. 문 대통령의 90도 인사는 그 틀을 전복한 것이기에 화제가 됐다. 민주 사회에서의 지도자와 국민 간의 관계를 북한사회에 가장 잘 표현한 것이기에 북한사회에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을 던진 것이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90도 인사를 두고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에는 전단 100억장 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무개 차량에 동승한 평양시내 카퍼레이드는 남한 정치지도자의 정치적 격상이다. 10만 평양시민에게 남한 정치지도자 문 대통령의 위상이 북한의 유일한 영도자 김정은 위원장과 동급이란 의미를 그 장면에서 말이나 글이 아닌 방식으로 드러냈다.

능라도 7분 연설과 백두산 방문, ‘한반도 평화’는 ‘민족자주’ 가치와 동행한다는 의미

보다 충격적인 장면은 남한 대통령이 9월19일 행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을 채운 15만 평양시민을 상대한 대중연설이었다. 문 대통령 파격 행보의 백미였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대북 전문가들도 충격으로 받아들일 정도이니 이를 직접 겪은 평양시민들이 느꼈을 충격의 강도는 더 클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백화원 영빈관에서의 정상회담 끝나고 나서 연설한 거보다도 훨씬 더 의미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고 했고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문 대통령의 대중연설 자체의 정치적 의미 뿐 아니라 여기에 호응한 평양시민 모습은 글로 표현된 ‘9.19 평양공동선언’ 합의문의 내용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앞서 평양 남북공동선언 합의 기자회견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육성으로 얘기한데 이어 능라도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은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남북은)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천명했다. 평양시민은 여기에 우레와 같이 호응했다. 비핵화가 북한사회의 합의로 자리 잡고 있다는 반증이다.

문 대통령의 7분 연설은 북한 체제의 핵인 평양시민을 향했기에 그 의미가 크다. 약 250만 평양시민은 북한체제를 떠받히는 핵이다. 이들 평양시민 15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얘기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또 자신을 ‘나’로 김정은 위원장은 별도의 존칭 없이 ‘김정은 위원장’으로 호칭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고 북한의 그 동안의 고난의 행군과정에 대한 경의도 표하며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고 했다.

또 문 대통령은 연설 내내 ‘민족’을 강조했다. 능라도 연설의 핵은 ‘한반도 평화’의 여정이 ‘민족자주’의 가치와 동반한다는 의미다. 세계를 향해선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남북은 민족 운명공동체로 함께 할 것이란 선언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며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 우리 민족은 강인하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일정인 20일 백두산 천지 방문은 전날 능라도 경기장 연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민족’의 가치를 남북한 국민들 모두에게 보여줬다. 백두산은 남북 모두가 인정하는 민족의 성지다. 이곳에서 남북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은 남북한의 민족적 일체성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상징이다.

백두산은 중국 접경지역이기에 이 자체는 무언의 정치행위였다. 북한의 선택은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남북 민족공동체에 운명을 맡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날 능라도 경기장 집체극 ‘빛나는 조국’에서 ‘평화’, ‘번영’, ‘통일’ 구호를 수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대통령 평양 능라도 5.1경기장 7분 연설 전문]

평양 시민 여러분, 북녘의 동포 형제 여러분, 평양에서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동포 여러분,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세계에 엄숙히 천명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습니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 번영과 자주 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평양 시민 여러분,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이산가족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신속히 취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습니다.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그림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오늘 많은 평양 시민, 청년, 학생, 어린이들이 대집단체조로 나와 우리 대표단을 뜨겁게 환영해 주신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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