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핵화 완료까지 제제 유지해야’, 文대통령 ‘제재완화가 비핵화 촉진’ 인식차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0월 29일 청와대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 회동은 비건 대표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사진=청와대]
▲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0월 29일 청와대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 회동은 비건 대표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사진=청와대]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내년으로 미뤄지는 분위기임에도 미국, 북한, 한국 세 당사자 모두 차분하다. ‘비핵화 협상’을 두고 북미 간 충돌이나 갈등은 드러나지 않고 ‘연내 종전선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추진하는 청와대도 안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북미협상의 ‘전선’은 ‘비핵화’서 ‘경제제재 완화’로 이동했다. 오히려 ‘비핵화 방안’을 두고 북미가 다투기보다는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두고 한미가 다투는 형국이다. 이는 북미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해 일정 공감의 틀을 구축했다는 의미이며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에 맞춘 ‘제재완화 방안’을 두고 한미가 치열하게 샅바 싸움을 벌이는 국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가 본격화된 이달 중순부터 북한 비핵화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과 함께 2차 북미정상회담을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의향을 내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27일(현지시간)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공화당 지원유세에서 비핵화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에도 “얼마나 오래 걸린다 해도 상관없다”는 말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9월 26일 “시간 게임(time game)을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비핵화 시간표’에 연연하지 말고 협상에 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말이 보다 구체화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미국 정부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전까지 북한에게 핵무기와 미사일, 핵시설 등에 대한 전체리스트 제출과 함께 ‘비핵화 시간표’를 내놓으라고 다그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협상을 마치 ‘선제타격’하듯이 서두르다가 갑자기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숨 고르기’는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데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문 대통령이 가져온 ‘중재안’이 불만스럽지 않다는 뜻에 더 가깝다. 이를 증명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원유세 중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에 대해 기분이 좋다. 더는 실험도 없고 그들은 현장을 폐쇄하고 있다”는 말을 거듭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경제적으로 아주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위치가 매우 좋다”면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 사이에 있는, 얼마나 좋은 위치냐. 환상적일 것”이라고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북한의 미래가 밝을 것이란 말도 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의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에 변함이 없음을 보여줬다.

언론들은 미국 정부의 ‘숨 고르기’를 두고 11월6일 미국 중간선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0월 7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직후 연내 2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됐고 심지어 중간선거 전에 개최될 것이란 섣부른 전망까지 나왔지만 북한 이슈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 하에 2차 북미정상회담을 내년으로 미뤘고 북한과의 협상에도 속도조절에 들어갔다는 추론이다.

美 ‘핵 신고’ 유연한 방식 전환, 북미 비핵화 협상의 큰 걸림돌 제거한 듯

선거를 가장 우선하는 민주국가 특성상 이러한 분석은 타당하다. 여기에 더해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방식’의 변화 가능성 또한 미국의 ‘협상 숨 고르기’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미국이 기존의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란 ‘비핵화 프로세스’에 맞춘 기존 협상전략을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속도조절’에 나섰을 가능성이다.

지난 7월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후 북미 비핵화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진 원인은 ‘핵 신고’ 단계를 두고 벌어진 북미 간 갈등에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이은 10월 7일 폼페이오 장관 방북으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가시화된 것은 이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한 북미 상호간의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는 내용에 대해 미국이 수용했다는 의미다.

즉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교환하는 방식은 미국이 고집해온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 프로세스의 수정을 뜻한다. ‘전체 핵 신고 목록 제출’은 미루고 ‘영변 핵시설’과 같은 중요시설 폐기·검증 절차와 미국의 ‘종전선언’과 ‘대북경제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방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0월 7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10월 7일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를 위해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전면에 섰다. 평양정상회담을 다녀온 직후인 9월 21일 강 장관은 K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통적 비핵화 과정과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사찰 등 검증 프로세스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그게 초반에 나와야 하느냐는 문제가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말로 기존 ‘신고-검증’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강 장관은 또 폼페이오 장관 4차 방북 사흘 전인 10월 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핵)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둘러싼 논쟁에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며 ‘핵 신고’를 전제한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중요 핵시설 폐기에 따른 ‘상응조처’로  ‘북미 신뢰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장관의 이러한 비핵화 협상 중재안을 미국이 수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4차 방북 무렵부터 미 국무부는 최근까지 ‘핵 목록 신고’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폼페이오 장관은 4차 방북에서 북한의 ‘핵 리스트 제출’과 관련한 뚜렷한 성과 없이 빠른 시간 내에 2차 북미정상회담에 합의했다.

‘핵 신고’가 북미협상의 최대 쟁점이 된 사연에 대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10월12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시설·물질·탄두·미사일의 수량과 위치를 다 신고한다는 문제인데, 북한으로서는 불안감이 있다. 미국이 북한을 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라며 “(당장 핵무기) 수량에 대해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당장 핵탄두만 해도 북한에서 나오는 얘기는 20~30개라는데 미국 정보당국은 60~65개”라며 “북한이 20개 있다고 신고해 본들 미국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렇게 가면 협상은 깨진다. 파국이 온다는 말”이라고 했다. 지난 7월 이후 진행된 북미협상 교착이 미국의 ‘핵 신고’ 프로세스에 따른 것임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중간선거 이후, 나아가 내년 초로 미룬 것은 ‘핵 신고 절차’를 유연하게 한 부분과 무관하지 않다. 비판적인 언론들은 이를 두고 북한에 양보했다는 주장을 펼칠 것이기 때문에 중간선거 전 북미대화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한 와중에 북미는 중간선거 직후에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했다고 워싱턴 외교소식통이 10월 29일 전했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는 단 한 차례의 실무협상도 없이 ‘고위급 회담’으로 직행한 것이다. ‘핵 신고’라는 큰 걸림돌이 없어지면서 ‘비핵화 협상’ 진도 빼기는 큰 어려움이 없어졌다는 얘기도 된다.

美 ‘비핵화 완료 때까지 제제 유지해야’, 文대통령 ‘제재완화가 비핵화 촉진’ 인식차

폼페이오 장관 4차 방북 후 ‘핵 신고 목록 제출’을 두고 빚어진 ‘비핵화 협상’ 갈등이 잦아들자 ‘대북 경제제재’를 둘러싼 물밑 전선(戰線)이 불쑥 떠올랐다. 지난 8월 최선희 부상의 카운트 파트너로 임명된 스티븐 비건 대표는 북한과의 실무협상을 벌이기보다는 ‘대북제재’를 두고 한국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는데 치중하는 듯한 모습이다.

‘경제제재’에 대한 한미 간 인식차이로 인한 갈등이 표면화된 양상이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제제완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측은 북한이 비핵화협상에 나선 것은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만약 대북제재가 이완하면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포기하고 다시 핵을 보유하려 들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평양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제재 공론화에 나선 문 대통령의 생각은 미국과는 다르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 이상 제재완화가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그래서 유럽 순방 중 프랑스, 영국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정상들을 상대로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불가역적 상황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전제로 유엔의 제재완화를 요청했다.

이러한 인식차가 남북 교류사업을 두고 갈등관계를 낳고 있다. 특히 내년 초에 열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최대성과를 도출해야겠다고 벼르는 비건 특별대표 등 미 국무부 쪽은 한국의 행보를 마땅찮아 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북한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제재완화’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가 미국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이러한 미국의 불만은 비건 특별대표의 방한 행보와 이어진 ‘한미 워킹그룹(실무협의체)’ 설치에서 확인됐다. 비건 대표는 10월 29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만난데 이어 임종석 비서실장을 만났다. 비건 대표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제치고 임 실장을 만나겠다고 요청했다고 한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윤건영 국정상황실장도 만났다. 다음날인 30일 정의용 실장과 조명균 통일부장관도 만났다.

비건 대표가 청와대와 정부 내 외교통일라인 핵심인사들과 두루 만난 뒤 미국 국무부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교류사업에 대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새로운 워킹그룹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취지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 노력과 제재이행 수준을 함께 관찰하고 ‘유엔제재와 합치하는 남북 간 협력에 대한 긴밀한 조율’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이 대북사업을 서둘러 진행하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또 여기엔 비건 대표의 속 타는 상황도 반영된 듯하다. 성김 필리핀 대사 후임으로 지난 8월 임명됐지만 아직까지 최선희 부상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비건 대표로선 한국을 두드려 북한을 끌어내려는 의도도 담았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북한은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으로 ‘영변핵시설 폐기’를 제안했지만 아직 미국은 ‘상응조치’에 대한 답을 주기보다는 ‘대북제재’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영변 핵시설’에 더해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까지 더 얻고 싶다는 뜻이다.

비건 대표는 이 목표로 최 부상과 실무협상을 빨리 진행하려 했지만 북한은 협상에 응하지 않는 방법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에 따른 ‘상응조치’부터 내놓으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에 비건 대표는 북한에 대한 불만을 한국에다 대고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

‘대북 경제제재’와 남북협력을 두고 한미 간의 긴장은 연말로 다가갈수록 또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가까워질수록 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바라는 북한과 ‘대북제재 한미공조’를 요구하는 미국, 모두가 한국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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