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의도적 회계부정, 2012~2014년은 과실 및 중과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이 지난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혐의를 사실로 결론 내렸다.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위법한 회계처리를 해왔고, 2015년의 경우엔 고의로 분식을 저질렀다는 판단에서다.  <사진=연합뉴스>
▲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이 지난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혐의를 사실로 결론 내렸다.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위법한 회계처리를 해왔고, 2015년의 경우엔 고의로 분식을 저질렀다는 판단에서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금융감독원이 특별감리에 들어간 지 1년 7개월 만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가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위법한 회계 처리를 해온 데다가 일부 행위에는 고의가 있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증선위가 지난 14일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 의혹을 사실이라고 결론 내린 건 그동안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기준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해왔다고 봤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는 지난 2015년 말 자회사(종속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와의 관계를 종속회사(단독지배·연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지분법)로 변경하고 회계처리기준도 바꿨다.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르면 종속회사와 달리 관계회사의 기업 가치는 투자한 금액(취득가액)이 아니라 시장 가격(공정시장가액)으로 따진다. 기업은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판단될 때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관계를 변경할 수 있다.

당시 삼성바이오는 에피스의 지분 91.2%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배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8.8% 지분을 가진 합작사 미국 바이오젠이 에피스의 연구 개발 사업이 성공할 경우 지분율을 49.9%까지 늘릴 수 있다는 콜옵션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바이오젠은 그때까지만 해도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삼성바이오는 에피스가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개발에 성공하는 등 기업 가치가 상승해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졌다며 에피스와의 관계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해버렸다.

이에 따라 에피스의 기업가치 평가액이 취득가액인 3300억 원에서 공정시장가액인 5조2726억 원으로 급등했다. 그러자 삼성바이오는 보유하고 있는 에피스 지분 91.2%를 4조8000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이를 장부에 반영해 4조5000억 원(지분 가치에서 투자금액을 뺀 것)의 투자 이익을 냈다고 공표했다.

지난 2011년 설립 이후 계속 적자를 내던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5년 갑작스럽게 흑자 기업으로 돌아서게 된 이유다.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감리 안건 논의를 위한 증선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감리 안건 논의를 위한 증선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당시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변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원칙에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회계처리기준을 고의로 변경했다고 봤다.

금감원은 재감리 결과 삼성바이오가 에피스 설립 당시 바이오젠과 맺은 합작계약에 따라 지난 2012년부터 에피스를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보고 연결해 회계 처리한 것 자체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증선위는 금감원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동의를 표했다.

이날 증선위 심의 결과를 발표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은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맺은 조인트 벤처 합작계약서 내용에 주목했다”며 “계약서에 신제품 추가나 판권 매각 등과 관련해 바이오젠이 보유한 동의권 등을 고려할 때 계약상 약정에 의해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지난 2012년부터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공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한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 즉 잠재적 의결권이 경제적 실질이 결여되거나 행사에 장애 요소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지배력 결정 시 고려해야 하는 실질적인 권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즉 증선위는 에피스가 지난 2012년 설립 당시부터 삼성바이오의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였다고 본 것이다. 그 때문에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와의 관계를 변경한 2015년 이전부터 이미 위법한 회계처리를 해왔다는 판단이 나왔다.

증선위는 다만 국제회계기준(IFRS)이 지난 2011년에 국내에 도입되었고 지배력과 관련한 새로운 회계기준서가 지난 2013년부터 시행된 점 등을 고려해 삼성바이오의 2012~2013년 회계처리기준 위반 동기는 고의가 아닌 ‘과실’로 결론 내렸다.

더불어 지난 2014년의 경우에는 임상시험 등 개발 성과가 가시화된 상황에서 회사가 콜옵션 내용을 처음으로 공시하는 등 콜옵션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했던 점을 고려해 위반 동기를 ‘중과실’로 결정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5년 에피스와의 관계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한 행위에 대해서는 ‘고의성’을 인정했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과거부터 에피스와의 관계가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임을 알고도 당시 갑작스럽게 지배력 상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 원칙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회계처리기준을 자의적 해석했다고 판단했다.

만약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지난 2012년 설립 당시부터 삼성바이오와 바이오젠이 공동지배하는 관계회사로 봤다면 2015년에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할 필요도 없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평가차익(투자 이익 4조5000억 원)이 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와의 관계변경으로 얻은 4조5000억 원의 이익을 해당 회사의 고의 분식 규모로 봤다.

지난 8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이에 오간 내부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문건에는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정황이 담겼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8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이에 오간 내부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문건에는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정황이 담겼다. <사진=연합뉴스>

증선위는 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하고 금감원이 제출했던 삼성 내부문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삼성바이오가 콜옵션 부채를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하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2~2014년에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과실이나 중과실이 있었더라도 지난 2015년에 제대로 인지했다면 삼성바이오가 재무제표를 고쳐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콜옵션의 공정가치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사전에 마련한 상태에서 이에 맞춰 외부평가기관의 평가 불능 의견을 유도했다”며 “또한 이를 근거로 과거 재무제표를 의도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바이오는 에피스 투자주식을 취득원가로 인식해 콜옵션 부채만을 공정가치로 인식할 경우 회사의 재무제표상 자본잠식이 될 것을 우려했다”며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력 변경을 포함한 다소 비정상적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 의원이 공개한 삼성 내부문건 중 지난 2015년 11월 10일 작성된 ‘바이오, 바이오젠 콜옵션 평가 이슈’ 문서를 보면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지면서 회사가 1조8000억 원의 부채와 평가손실 반영에 따른 자본잠식(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은 상태) 위기에 처하게 됐고, 이럴 경우 ‘기본 차입금 상환 및 신규 차입 불가, 상장 불가’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삼성 미전실에 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는 같은 문건에서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 미전실과 세 가지 방안을 논의한다.

첫 번째는 바이오젠과 합작계약서를 소급해 수정(과거 계약서 조작)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관계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수정(회계처리 방식 조작)하는 방안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회사로 유지하되 콜옵션 평가 손실을 최소화 해보자는 제안이다.

또한 삼성바이오는 실제로 삼성 미전실과 논의한 세 가지 위기 대응방안 중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해 시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증선위가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한 지난 2015년 에피스와의 관계(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 방안이다.

한편 증선위는 이날 삼성바이오를 고의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대표이사 해임 권고와 과징금 80억 원 부과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의 주식은 거래가 즉시 정지됐으며, 삼성바이오는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실질심사도 받게 됐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는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표명과 함께 '행정소송을 내겠다'고 밝히며 향후 치열한 법적공방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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