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서 ‘연내 종전선언’ 합의했지만 끝내 2019년으로 넘긴 남·북·미 종전선언

역사적인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첫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연출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판문점 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 역사적인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첫 만남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연출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판문점 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은 70년 이상 지속된 ‘한반도 분단체제’가 ‘한반도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중대 전환점이 된 한 해였다. ‘한반도평화’ 대장정 관문을 열어젖힌 핵심 동력은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1차 정상회담, 5월26일에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9월18~20 사흘 동안 3차 평양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매번의 정상회담은 ‘한반도평화’의 새로운 물길을 열었고 남북한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 속에서 진행됐다.

세 차례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평화’의 첫 물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로 전운이 감돌던 한반도에 해빙무드를 조성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남북한 관계를 이어줬을 뿐 아니라 북미 간의 탐색전을 겸하면서 ‘평화올림픽’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남북한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방남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방북으로 이어진 ‘특사외교’를 통해 4.27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는 평화의 새 역사로 성큼 다가갔다.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고위급·장성급 회담 개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이산가족 상봉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적대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 전환 ▲서해 NLL 평화수역 조성 ▲연내 종전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 등의 내용을 담은 역사적인 ‘4.27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4.27 정상회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진행된 ‘한반도 냉전 회귀 흐름’을 단 한 순간에 종식시켰을 뿐 아니라 ‘연내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한반도 평화’의 로드맵을 전 세계에 제시했다. 다만 연내에 추진키로 한 남·북·미 3자 참여의 ‘종전선언’은 북미협상의 난관으로 해를 넘기게 됐다.

또 4.27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정상이 연출한 한편의 드라마로 전 세계에 감동을 줬다. 문 대통령이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김정은 위원장을 반갑게 맞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양 정상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장면은 ‘분단’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오전과 오후에 진행된 정상회담보다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 산책로에서 함께 약 40분에 걸쳐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저녁 만찬 후 김 위원장 일행을 북한으로 떠나보내는 장면 또한 짙은 여운으로 남았다.

4.27 남북정상회담은 6.12 북미정상회담의 징검다리였다. 그러나 북미협상이 교착에 빠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남북 정상은 4.27 정상회담 한 달 후인 5월 26일 전격적이고도 비밀리에 이뤄진 2차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미관계 개선 없는 ‘한반도 평화 로드맵’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남북 정상은 다시 만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핵심은 김 위원장이 미국에게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분명히 한 것이며 문 대통령은 이를 위해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로써 취소될 뻔했던 북미정상회담이 재가동되고 역사적인 6.12정상회담의 기폭제가 됐다.

이처럼 급박하게 2차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저는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며 남북한이 보다 밀접한 관계로 접어들었음을 강조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 남북 사실상 종전선언...文대통령 능라도 연설은 백미

남북정상은 9월19일 3차 평양정상회담에서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사진기지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평양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 남북정상은 9월19일 3차 평양정상회담에서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사진기지들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평양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6.12 싱가포르 센토사 합의는 북미협상 출발 지점이었을 뿐이었다. 북한은 연내 종전선언과 신속한 경제제재 완화 등의 상응조치를 원했지만 미국은 ‘CVID(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비핵화)’ 없는 상응조치는 없다는 입장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수위를 늦추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7월9일 방북 이후 북미협상은 두 달 이상 교착국면에 빠졌고 ‘한반도평화 로드맵’은 주춤하면서 불투명한 상황에 빠졌다. 문 대통령의 9월18일 평양행은 이러한 북미 교착국면을 타개하는데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9월18일 방북은 이러한 상황이 반영돼 다시 전 세계의 주목들 받았다. 그리고 9월19일 남북정상은 6개조 14개항으로 구성된 ‘평양공동선언’을 낳았다. 특히 공동기자회견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육성으로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중대 진전이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비핵화조치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영구적 폐기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용의를 밝혔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설득해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평양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의 신호탄이 됐다.

나아가 평양공동선언 부속합의서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미국은 빠졌지만 남북한이 실질적인 종전선언을 했다. 양 정상이 임석한 상태에서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지상·해상·공중에서 적대행위 일체 중지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중 상호 1km 이내 근접초소 완전 철수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비무장지대 남북유해발굴 및 역사유적 발굴,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수역화, ▲군사적 대책에 대한 보장 등 총 6개조로 구성된 합의서에 서명했다.

2박3일의 평양정상회담은 양 정상 간의 밀도가 높아졌음을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머문 총54시간 중 17시간 5분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했다. 구체적으로 공식회담 2번, 3시간25분이고, 함께한 식사는 4번, 첫날 환영 만찬 4시간, 옥류관 오찬 1시간30분, 저녁인 대동강수산물식당 만찬 1시간30분, 귀국길에 삼지연 못가 오찬 2시간 등이다.

문 대통령의 9월18일 서울 출발과 평양 순안국제공항 도착에서 20일 서울 귀환과 동대문디지털프라자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방문까지는 한 편의 파노라마였다. 이 중 무엇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문 대통령의 능라도 5.1경기장 연설이었다. 4.27판문점 정상회담의 백미가 도보다리 대화였다면 9월 평양정상회담의 백미를 꼽으라면 이 연설이었다.

문 대통령은 9월 19일 저녁 능라도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남북은)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천명했다. 앞서 정상회담 기자회견장에서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를 말한데 이은 것이며 여기에 평양시민들도 호응한 대목은 북한의 비핵화의지를 상징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끝끝내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며 북한의 고난의 행군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며 민족 우선의 가치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일정인 8월 20일 백두산 천지 방문은 ‘민족’의 가치를 남북한 국민들 모두에게 보여줬다. 이곳에서 남북 정상은 서로 손을 맞잡아 남북한의 민족적 일체성을 세계만방에 보여줬다.

연내 목표했던 남·북·미 종전선언과 김정은 답방. 2019년 새해로 넘겨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을 향한 대중연설은 9월 평양정상회담의 백미로 꼽혔다.[평양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대통령의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을 향한 대중연설은 9월 평양정상회담의 백미로 꼽혔다.[평양정상회담 사진공동취재단]

9월 평양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는 다시 급물살을 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평양정상회담의 성과가 미국을 ‘연내 종전선언’의 길로 이끄는 데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북한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과 ‘제재완화’라는 미국의 상응조치를 기대했으나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추가적인 조치를 내놓으라고 압박하면서 다시 교착국면에 빠진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남북한의 경협사업에 대해서도 ‘속도조절’을 주문하면서 한미 대북공조에도 균열을 야기했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와 압박’을 핵심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보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역적으로 진전됐다고 판단되면 ‘제재 완화’를 해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미묘한 한미 간의 입장 차가 노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미워킹그룹’을 구성해 남북경협사업도 미국과의 협의하에 진행키로 했다.

이처럼 북미협상이 교착되면서 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 때 목표로 한 ‘2차 북미정상회담 조기 개최→남북미 종전선언→연내 김정은 위원장 서울 답방’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내년 1~2월로 연기하면서 일정과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김 위원장의 답방문제를 논의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고,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남은 싱가포르 합의를 마저 이행하기를 바라고, 또 김정은 위원장이 바라는 바를 자기가 이루어 주겠다”는 메시지를 김 위원장이 서울에 답방할 때 전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으면서 연내 답방은 무산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과 함께 2019년으로 넘어갔다. 다만 새해를 바로 앞둔 12월 26일 남북이 철도연결 착공식을 개최키로 했고 이를 미국도 동의해 김 위원장의 답방과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향한 걸음을 계속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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