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재 변호사 “회계처리 정당성 인정은 아냐, 소송에서 다퉈볼만하다는 뜻”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삼성바이오-증권선물위원회 회계분식 행정소송 쟁점과 전망’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 <사진=강민혜 기자>
▲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삼성바이오-증권선물위원회 회계분식 행정소송 쟁점과 전망’ 토론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 <사진=강민혜 기자>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법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금융당국을 상대로 낸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향후 진행될 분식회계 행정소송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법원의 이번 판단이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정당성을 인정한 건 아니지만 소송에서 다퉈볼 여지를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칙 중심 국제회계기준(IFRS)이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재점화 됐다.

지난 24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삼성바이오-증권선물위원회 회계분식 행정소송 쟁점과 전망’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최승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장(변호사)은 “삼성바이오의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회계처리 정당성이 인정된 것은 아니다”며 “법원의 이번 판단은 집행정지 요건 충족을 인정한 것이지 법률적으로 회계처리 문제를 판단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집행정지는 행정처분을 받은 기관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면서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처분 집행을 정지해 달라고 신청하는 절차다. 행정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발생이 우려되어 이를 막을 필요가 있을 때 받아들여진다.

앞서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가 “본안 판결이 날 때까지 행정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증선위 상대로 낸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증선위 처분으로 인해 삼성바이오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함을 인정할 수 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성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에 대한 증선위의 제재는 삼성바이오가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 이후 30일까지 효력이 멈추게 됐다. 지난해 11월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4조5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보고 김태한 대표이사(CEO) 및 담당 임원인 김동중 최고재무책임자(CFO)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시정 요구(재무제표 재작성), 과징금 80억 원 부과 등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최 변호사는 다만 “집행정지 인용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이 향후 있을 분식회계 행정소송에서 삼성바이오가 패소할 가능성이 명백하지 않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며 “개인적으론 법원이 분식회계 소송에서 삼성바이오가 싸워볼만한 논쟁지점이 상당하다고 봤기 때문에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집행정지는 2주 남짓의 심문기일을 거치는 데 삼성바이오의 경우 지난해 12월 19일 심문 이후 한 달이나 지나서 결정이 나왔다”며 “법원이 이번 사안에 대해 굉장히 많이 따져보고 신중하게 결정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 대부분은 삼성바이오의 지난 2015년 말 회계처리가 정당했다는 논리를 펼쳤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가 삼성바이오의 주식거래 재개를 결정한 건 증선위의 분식회계 판단에 동의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보여준 것이다”며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면서 회계처리에 대한 해석상 이견이 발생한 것을 증선위가 분식회계라고 판단하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도 “종래 회계기준인 미국의 GAAP 방식에서 유럽 회계기준인 IFRS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명확한 회계처리 방식을 정립하지 못했다”며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그런 탓에 혼란이 발생한 것이지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를 벌인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IFRS는 우리나라가 지난 2011년 도입한 ‘원칙 중심’ 회계 처리기준이다. 최근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5년 종속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해 회계처리 한 것을 두고 “IFRS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같은 사항에 대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IFRS를 넘어선 “고의 분식회계”라고 판단한 바 있다.

IFRS가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는 ‘규정 중심’ 회계 처리기준을 따랐다. 기업이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규정해 놓는 식이었다. 이 경우 기업 회계담당자는 회계 처리를 하면서 헷갈리는 부분이 생기더라도 규정에 적혀있는 대로만 처리하면 됐다.

반면 IFRS는 ‘규정 중심’과 다른 ‘원칙 중심’ 회계 처리기준이다. 상세한 회계 처리 규정 대신 회계처리의 큰 원칙과 개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원칙 안에서 기업과 경영자에게 회계 처리 재량권과 그에 따른 책임을 부여한다. 기업 스스로 자사의 실적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도록 회계를 처리하란 취지에서다.

이와 관련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IFRS는 회계처리를 할 때 기업의 의견을 중시하라는 취지의 회계기준이기 때문에 기업이 잘못된 회계처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감독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고심 끝에 IFRS 도입을 포기했고 우리나라도 같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2011년에 도입하면서 이런 결과(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승재 변호사는 “(최준선 교수의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IFRS가 도입됐다고 해서 기업이 회계기준을 정하는 건 아니다”며 “기업의 회계처리를 존중해주는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IFRS 적용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금융당국이 고민하고 있지만 아무리 기준을 내놓더라도 해석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며 “그 여지는 공인회계사나 기업의 회계처리 감사를 통해 메꾸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계처리 판단에 해석의 여지를 둔다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보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태를 두고 IFRS의 원칙 중심 회계처리 방식은 꾸준히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IFRS가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이번 분식회계 판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8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사진=강민혜 기자>
▲ 지난해 11월 28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기업에 부여한 회계처리 재량권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사진=강민혜 기자>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28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판정이 남긴 교훈과 과제’ 토론회를 열고 “IFRS에 따른 회계 처리는 회계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많다”며 “IFRS가 국내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당시 토론회 발제자였던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기업과 경영자는 자신의 유인(incentive)에 의해 IFRS가 부여한 재량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다”며 “현행 IFRS가 국내에서 잘 작동하도록 기업과 경영자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고 악의적으로 남용할 경우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FRS는 폭넓게 기업과 경영자의 재량권을 허용하지만 이를 이용해 회계처리를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다”며 “삼성바이오와 같이 IFRS 재량권을 남용하는 기업을 막기 위해선 다면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유승경 책임연구원도 “IFRS에서 허용하는 재량권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당연히 원칙 중심”이라며 “일관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원칙을 벗어나는 고의적 회계 부정행위는 재량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 회계환경 자체가 하나의 답을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우리와 달리 유럽이나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는 하나의 회계 처리에 대해 단일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고 밝혔다. IFRS의 재량권 범위를 일괄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기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유럽에서 만들어진 IFRS는 현재 140여 개 국가가 도입하고 있다. 엔론 분식회계 사태로 미국 회계기준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IFRS가 국제 사회의 호응을 얻은 탓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회계 처리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IFRS 도입을 결정했다. 여러 나라가 사용하는 통일화된 회계 처리기준을 도입할 경우 기업 회계처리에 대한 투명성과 신뢰성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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