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사에서 황금알 수준의 경영 성과를 창출한 ‘사장 언론인’ 손석희 앵커의 파문은 언론인의 숙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폭행 시비에서 비롯돼 불륜 추문으로 이어지는 이번 일의 본질은 유명 언론인에 대한 세간의 호사가적 관심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미투 무고 피해 논란’ 시인이 손 사장에게 보낸 힐난은 같은 언론인의 입장에서 섬뜩하기만 하다. ‘여럿 인생 파탄 내놓고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기자로서 그 종편사 만큼이나 남의 삶이나 기업을 망칠 만큼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대단한 특종을 보도한 경험은 아직 없다. 하지만 음모와 부정을 비판해야 하는 임무를 하면서 보도 대상과 그 주변의 원망, 비난에 직면할 때마다 괴로움은 적지 않았다. 이런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기자의 근무환경이란 무엇으로 보장받더라도 결국 험지일 수밖에 없다.

최근 진보 성향 일간지의 기자들이 1년 남짓 사이 10명이나 회사를 떠났다는 보도를 봤을 때도 나의 관심은 급여나 근무환경에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권력과 밀착해 가는 소속 매체의 현실이 더 힘들었으리라 생각됐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의식 있는 기자들이 모여 있다는 신문사에 근무하며 맞닥뜨린 언론인의 정체성 혼돈은 기자가 기꺼이 져야 할 숙명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내몰았을 수도 있다. 

독재정권에 맞서 지사적 언론인의 사명감으로 기자정신을 불 태웠던 지난 70~80년대 한국의 언론투쟁사는 한낱 추억일 뿐인가? 신문구독률 14%의 시대에 종이신문 기자들에게 탐사보도란 한때의 유행이었을 뿐 수익 창출 기사를 양산하는 전선에 매일매일 내몰리고 있다. '돈이 되는 기사' '돈을 버는 기자'는 이제 한국의 언론 시장에서 최고의 블루칩이다.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참여한 인터넷 매체들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에 의한 언론시장 왜곡 실태는 가히 재앙의 수준에 치닫고 있다. SNS에 떠도는 유사 언론사 간부의 광고주 협박 메시지를 보면 과거 카메라 하나 들고 허술한 공사현장이나 노리던 사이비기자는 낭만에 가까웠다는 실소를 하게 된다. 사주 입장에서 다루기 힘든 소위 ‘먹물' 기자보다는 예체능 출신 기자를 채용해 광고주를 압박하는 매체의 실명이 거론될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90년대 초반 한 국내 언론학자는 한국의 언론 현실을 진단하면서 ‘거질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일부 또는 상당수 기자들이 출입처나 취재원에게 공짜 밥과 술을 얻어먹고 촌지나 챙기는 행태를 거지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지적은 기자 개인의 부끄러운 치부에 국한된 면모가 다분했다. 문제는 지금은 기자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나 사주가 아예 거지나 다름 없이 광고 수입에만 목표를 정하고 미디어그룹이라도 만들려는 듯이 매체를 양산하는 데 있다. 종이든, 인터넷이든 기존 언론사의 기자나 간부가 독립해 새로운 시도는 물론 변변한 컨텐츠조차 없는, '또 하나'의 미디어를 창간하는 붐이 마치 광풍처럼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광고 담당자들은 아는 안면에 광고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으니 정해진 예산을 쪼개어 윗돌 빼서 아랫돌을 괴듯이 월말만 되면 쇄도하는 광고 부탁 전화에 거절과 회피를 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같은 인터넷 매체 백가쟁명 현상은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가히 방종이라 할 만큼 그 생태 구조가 문란해졌다. 종이에 인쇄하지 않으니 돈이 훨씬 덜 드는 미디어의 특성 상, 창간 뒤 1년 정도 견디며 적당히 기사를 게재해 포털사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고 제휴사로 등록돼 기사가 온라인에 유통되기 시작하는 순간 매체의 매매가치가 억대로 급등하는 구조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최근 창간해 매출이 급신장한 한 매체의 보도 행태, 아니 영업 방식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아예 연차가 낮은 저임금의 기자를 채용해 취재 과정은 생략한 채 타 매체에 게재된 기업 비판 기사를 검색한 다음, 회사 대표나 사주의 실명을 위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교묘하게 가공해 기사를 유포시켜 광고주를 압박한다. 언론의 위신이 땅에 팽개쳐지고 강탈이나 다름 없는 광고주 갈취가 이어지는데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뒷짐을 지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정부의 규제 강화는 효력이 가장 크겠지만 필경 언론 탄압이라는 시비에 발목이 잡힐 것이 뻔하다. 차선은 자율 규제, 즉 언론의 자정이다. 여러 언론 관련 협회의 대응이 우선돼야 겠으나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해 현장 기자들의 '거질리즘 강요 불복종' 선언이야말로 '언론 한국병'에 대한 강력한 해법이다. 한국의 기자에게 아직 할 일은 많다. 오는 3월 18일은 세계언론사에 빛나는 '동아투위' 결성 44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국의 기자에게 '3류문사'라는 자조와 언론을 망치는 거질리즘의 굴레를 떨치고 도움을 기다리는 힘 없는 약자들에게 뛰어가야 할 취재현장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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