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역점 추진에 160조 넘어선 기술금융
국내 은행권 관행 담보·보증 비중 여전히 높아 걸림돌

[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인 혁신성장 정책이 추진되면서 최근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으로서 혁신기업의 실질적 지원을 위한 논의가 분주하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자금이 공급되지 않는 국내 고질적 환경은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에 폴리뉴스는 생산적 금융을 골자로 한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을 위해 타개해야 할 실태와 금융이 나아가야할 길을 모색한다. 

 <글 싣는 순서>

① 혁신기업의 굴레, 담보대출
② 민간투자에 목 마른 모험자본시장
③ 성패의 관건은 자금의 적기 공급
④ 최훈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인터뷰
⑤ ‘제2의 벤처 붐’ 위해 혁신투자 늘리는 금융권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기술과 혁신으로 초고속 성장한 1세대 벤처기업인과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돌파한 유니콘 기업인들을 초청해서 격려하고 벤처기업 육성 방안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하기 위해 마련됐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김범석 쿠팡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김수현 정책실장. <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기술과 혁신으로 초고속 성장한 1세대 벤처기업인과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돌파한 유니콘 기업인들을 초청해서 격려하고 벤처기업 육성 방안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하기 위해 마련됐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김범석 쿠팡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김수현 정책실장.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혁신창업 기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창업 생태계가 활발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에서 혁신벤처기업인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가리키는 ‘유니콘 기업’은 한 나라의 벤처산업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니콘 기업은 많지 않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세계 유니콘 기업은 총 309개다. 미국(151개)·중국(82개) 기업이 대다수이고 한국 기업은 6개뿐이다.

유니콘 기업 탄생 부진의 원인으로는 부족한 금융 지원이 꼽힌다. 기술력이 있어도 자금 부족에 시달려 성장하지 못하는 벤처기업이 여전히 많아서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2018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를 보면 현재 국내 벤처기업들은 대부분의 자금을 정책지원금(60.5%)과 일반금융(23.3%) 등 보증이나 대출 방식으로 조달한다.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 비중은 0.1%다.

그러나 지난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 기업의 은행대출수월성이 3.5점(7점 만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평균인 4.4점보다 낮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5.3점), 독일(5.0점) 등 선진국은 물론 인접 국가인 일본(5.3점), 중국(4.5점)과도 차이가 있는 결과다. 순위로는 OECD 35개국 중 32위다. 은행대출수월성은 담보 없이 좋은 사업계획만으로도 기업이 수월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평가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방안은 ‘혁신성장을 위한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이란 부동산담보대출이나 가계대출로 쏠려있는 금융회사의 자금을 혁신기술을 가진 중소·벤처기업 등에 공급하여 경제성장과 일자리 확대에 기여하자는 정책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정부 정책에 발맞춰 국내 은행들도 최근 몇 년간 기업대출 규모를 늘려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은행권 기업대출 현황을 보면 2018년 6월 말 기준 국내 14개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총 586조3000억 원이다. 이는 2016년(539조4000억 원), 2017년(569조4000억 원) 보다 증가한 것으로 은행대출 총액(1226조9000억 원)의 46.8% 수준이다. 

그러나 부동산 등 담보를 선호하는 은행의 영업방식은 여전했다. 기업대출 잔액 586조3000억 원 가운데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은 302조4000억 원으로 전체 잔액의 51.6%를 차지했다. 지난 2010년 말 기업대출 중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은 33.7%였지만 이후 8년여 동안 비중이 점점 높아져 절반을 넘겼다. 2016년엔 47.3%, 2017년엔 49.9%였다. 

반면 기업 대상 신용대출 비중은 급락했다. 2010년 말 전체 기업대출 404조 원 가운데 신용대출은 209조 원으로 약 51.7%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6월 말엔 전체 586조 원 가운데 198조 원으로 비중이 33.8%까지 낮아졌다. 

김 의원에게 자료를 제출한 은행은 국민·신한·우리·하나·SC제일·씨티은행 등 6개 시중은행과 농협·수협은행 등 2개 특수은행, 대구·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 등 6개 지방은행이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은행이 주택가격 상승 혜택을 누리면서 위험을 회피하려고 담보 위주 대출을 확대하면서 유망한 기업이 신기술 도입 등을 위해 신용만으로 은행대출을 받기는 훨씬 어려워졌다”며 “은행대출의 심각한 부동산 담보 편중을 개선하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술력은 있지만 신용도나 재무상태가 좋지 않아 은행권 대출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벤처기업에 특화한 기술신용대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금융당국 지정 기술평가기관(TCB)이 발급한 기술신용평가서를 기반으로 대출을 해주는 TCB대출이 대표적이다. 

TCB대출 규모는 최근 몇 년간 정부 정책에 따라 급성장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말 은행권 TCB대출 잔액은 99조1382억 원에서 2017년 말 123조9366억 원, 2018년 말 163조7688억 원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일반적인 기업대출과 마찬가지로 신용대출보다 담보대출 비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17년 은행별 TCB 대출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 말 기준 은행권 TCB대출 잔액 127조7194억 원 중 58%인 74조4418억 원은 담보부 대출이었다. 보증부 대출은 15.8%, 신용대출은 25.8%였다. 

이는 TCB대출 도입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다. 은행들이 기술력이 있는 기업에게도 기존 대출관행을 따라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특화한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TCB대출 현황은 여타 시중은행보다 더 나쁘다. 2017년 말 기업은행의 TCB대출의 담보부 비중은 59%, 보증부 비중은 16.4%로 은행권 평균보다 높았고 신용대출은 24.6%로 평균보다 낮았다. 

이와 관련해 제 의원은 “일반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게 좀 더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중소기업은행”이라며 “기술력을 보고 대출하는 TCB 대출에서 일반 은행보다 더 많은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은행이 과연 중소기업에 특화된 국책은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제 의원에게 자료를 제출한 은행은 기업·산업·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과 국민·신한·우리·하나·SC제일·씨티은행 등 6개 시중은행과 농협·수협은행 등 2개 특수은행, 대구·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은행 등 6개 지방은행이다.

이 밖에도 지난해 금융위가 시중은행에 활성화를 주문한 동산담보대출은 도리어 감소세가 뚜렷하다. 동산담보대출은 부동산 담보가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에게 기계설비나 재고자산, 지식재산권 등의 동산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은행의 동산담보대출 잔액이 최근 5년간 총 3500억 원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2013년 5700억, 2014년 5540억, 2015년 4461억, 2016년 3144억, 2017년 2262억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5년 만에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전 의원은 “지난 2017년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거절당한 중소기업의 40% 이상이 담보가 부족한 경우”였다며 “중소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위해 대출시 동산을 담보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업과 은행에 유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프라·제도·관행·정책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서 정책이 현실성을 갖고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 의원에게 자료를 제출한 은행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최성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기술금융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기술신용대출(TCB대출) 등 국내 기술금융은 순수 신용대출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달리 일반 중소기업 대출과 비슷하게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기술금융으로서의 역할이 상실되고 있는 만큼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은행의) 기업대출 심사 시 기술평가 비중을 더욱 확대하고 질적 평가 중심의 기술 신용대출 공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술신용대출 공급 후 기업의 성과를 주요 실적 평가 척도로 반영하고 기업에게 자금이 적절하게 분배되고 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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