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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홍사덕①

민한당 참여, 2.12총선, 이민우 구상 그리고 양(兩)김의 분열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을 시작하며...

시대가 변하고,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크게 고양되고 있음에도, 또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한국의 정당은 과거의 틀과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듯 합니다.

대의정치체로서 정당의 본질적 임무인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대를 앞서가는 지도력은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당의 현실입니다.

지금 이대로의 정당체제라면 앞으로의 한국 정치의 미래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에 무엇보다 최우선 할 것이 과거를 정확히 되짚어보는 일일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찾는 단서를 찾고자 합니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는 기존 자료의 재정리 방식이 아니라 한국정당을 이끌어 오신 정치지도자와 주역들로부터 당시의 <생생한 동영상 증언> 방식입니다.

60여년의 한국정당사 전체를 살아있는 정당주역들로부터 듣는 ‘증언록’으로 정리하겠다는 것은 아직 어디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야심찬 기획입니다.

한국정당사를 정리하는데 있어서 이념노선, 정책, 인물, 리더십, 정체성, 지역성, 파벌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정당의 본질은 다름 아닌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정치라는 점에서 과연 과거 정당들이 그 시대 민의를 제대로 대변했는지, 또 어떻게 민의를 억압, 왜곡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슈별로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한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정치적 진실도 증언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폴리뉴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의 두번째 인터뷰 인물은 홍사덕 의원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81년 11대 민한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신민당 대변인, 민주당 부총재, 민주당 대변인, 정무제1장관,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국회 부의장 등 을 거친 6선의 거물 정치인이다.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돌풍의 주역이 됐고 그 후 한나라당으로 복당, 현재는 친박계를 이끌고 있다. 그는 기자협회 부회장 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고, 대변인과 부총재 시절 언론으로부터 홍대, 홍총 이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인기가 좋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김능구 본지 발행인과의 대담 형식으로 3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기사는 총 3편으로 나뉘어 게재할 예정이며 ①편에서는 민한당 참여, 2.12 총선, 신민당 ''이민우 구상'', 양김의 분열 등에 얽힌 숨겨진 얘기를 ②편에서는 13, 15대 총선 무소속 출마, 3당통합,무지개 연합 구상, 한나라당 입당, 노무현 탄핵, 17대 총선, 친박연대에 얽힌 사연을 ③편에서는 바뀌어야 할 우리 정당 구조와 정치 문화에 대한 그의 탁견을 전할 예정이다.

인터뷰 게재가 완료되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뷰 전문과 동영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홍사덕 의원 인터뷰 동영상 ①


민한당 창당 시 중정 개입...초선의 겁없는 방위비 삭감

홍사덕 의원은 민주한국당(민한당)의 창당 배경에 중앙정보부가 깊숙히 개입한 사실을 증언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한당은 1981년 1월 1일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됨에 따라 해산된 신민당 소속의원들 중 정치쇄신 비규제자들을 중심으로 1980년 12월 1일에 발기, 1981년 1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유치송(柳致松)을 초대 총재 및 대통령후보로 추대했다.

홍 의원은 "중앙정보부에 우리 대학 선배 한분이 계셨는데 한 10년쯤 지난 다음에 그 말씀을 저한테 했어요. 너 나한테 감사해야 된다, 민한당 공천신청 했을 적에 최종적으로 서베이를 하는데 너한테 대한 신원보증을 내가 섰었고 그래서 니가 공천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면서 "그 말에 비추어보면 중앙정보부가 창당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싶습니다" 고 말했다. 당시 떠돌던 ''민한당 창당 중정 개입설''이 사실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당시 신군부의 전략은 자신들이 주도하던 민정당으로 하여금 계속 패권을 장악하게 하고 그 주변에 민한당 국민당 등 몇 개의 위성 정당들을 배치함으로서 외형적으로는 정당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11대 의정활동을 하면서 방위비 삭감을 했던 일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말했다. 예산 심의에서 방위비 삭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던 시절이어서 그의 감회는 남다른 것 같았다.

그는 "유신 이래 처음으로 예산심의에서 성역이었던 방위비 문제를 들고 나와서 방위비 삭감을 주장을 했고, 그게 유신 이래 처음이랬습니다. 말하자면 성역을 깨는 거랬고, 그해에 우리 김현규 선배께서 정책의장이 됐는데 그걸 끝내 관철을 했습니다. 물론 그 관철한데에는 이종찬 당시 여당 원내총무의 남다른 식견이랄까 그게 도움이 됐습니다"고 회고했다.


신민당행 결정은 김현규 의장 때문...민한당 탈당하자 안기부에 잡혀가

홍 의원은 12대 총선에서 양 김이 이끄는 신한민주당(신민당)으로 가는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에 대해 당시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의민주주의를 쫓아간 것''이 아니라 ''김현규 당시 정책의장의 결정을 따른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11대 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김현규 의장이 의원회관, 지금 KBS별관으로 쓰는 자기 방에서 커피를 한잔 하자, 그래서 갔습니다.

"갔더니 두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김현규 선배랑 박관용의원이랑.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민한당 공천 받지 말고 양김이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당에 참여를 하자, 그런거랬습니다. 실제로 그때 분위기는 양김이 창당하는데 가는 것은 자살행위로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

"전 뭐 그 얘기 떨어지자마자 그렇게 합시다, 그랬습니다. 제가 그렇게 그 자리에서 결정을 했던 이유는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대로 민주대의를 쫓아가지고 한건 아닙니다.

"제가 11대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사실은 몇몇 분들한테 크게 도움을 받았는데, 언론계에 있는 세 사람 후배 기자, 당에서는 김현규 의원, 신상우 선배 두 분이었습니다. 김현규 선배 도움이 아니랬으면 공천을 못 받았을 거고 못 받았으면 내가 국회의원이 됐을 리도 없는데 그때 상황은 김현규 의장이 정책의장이었습니다. 그런 결단을 아니내릴 방법이나 길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속으로 그랬어요. 김선배 덕에 국회의원 한번 해먹었는데 그거 도로 내놓으라고 그러면 내놓을 수밖에 더 있겠느냐, 그러고 그냥 그 자리에서 결정을 했고 주변에 사람들은 양김이 이끄는 민주원류에 합류했다고 이렇게 해몽을 해 줬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은 민한당과 국민당 등 위성정당에 대한 지원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었는데, 1883년 8월 15일 김대중, 김영삼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추협을 중심으로 더 많은 정치인들이 통합 대열에 합류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이후 민추협은 12대 총선 참여를 두고 갈등을 거듭하다 84년 12월 11일 김영삼, 김대중, 김상현 3인의 이름으로 총선 참여 및 신당 창당을 선언했는데 이것이 신민당이다..

신민당은 1985년 1월 18일 마침내 창당했고 초대 총재에 이민우, 부총재에 김녹영 ·조연하 ·이기택 ·김수한 ·노승환 등 5명을 선출했으며 대통령직선제 개헌, 독재와 독선 배제, 지방자치제 조기실시, 언론기본법 폐지, 군의 정치적 엄정중립 등을 정강정책으로 채택했다.

2.12총선 돌풍 발화점은 홍사덕과 김현규 안기부 체포 사건...총선 돌풍 주역은 뚝심의 김현규와 지략의 김덕룡

ⓒ폴리뉴스
홍 의원은 84년 12월 19일 김현규, 서석재, 박관용 등 민한당 의원 8명과 함께 탈당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잡혀갔다고 밝히며 그것이 12대 총선돌풍의 발화점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1961년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1980년 12월 31일자로 국가안전기획부로 확대·개편되었다.)

그는 "집에 들어갔는데 저는 통신이 오기를 김현규 의장이 잡혀갔으니까 다들 튀어라 그런 거였습니다. 근데 제가 이제 기자협회장을 할 때 이미 안기부 한번 다녀와서 아는 일이지만은 한사람만 잡아가지고는 종결이 안 되거든요. 반드시 하나가 더 있어야 됩니다"라며 "그래서 내복 두둑이 입고 돗바까지 준비를 하고 한두 군데, 도청하던 시절이니까, 내가 집에 있다는 걸 알릴 겸 전화를 하니 한 5분도 안 돼서 둘이 들어갔고, 2.12총선 돌풍이라고 그런 거에 발화점은 김현규 선배하고 저 두 사람이 안기부에 잡혀있었던 게 바로 발화점입니다. 그게 모든 유세에서 시민들 불 붙이는 말하자면 횃불이 됐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공고되던 날 해금이 되가지고 풀려나서 그 전엔 안기부 거기 있다가 나와서 집밖에 못나가도록 하는 일종의 가택연금. 선거기간이 17일이었습니다만은 그 공고 되던 날 풀려가지고 새벽에 마장동에 가서 버스타고 영주로, 제 선거구가 영주였으니까, 내려갔습니다"고 2.12 총선 상황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홍 의원은 2.12 총선돌풍의 주축으로 김현규 의장과 김덕룡 의원을 꼽았다.

그는 김현규 의장에 대해 "김현규 의장은 한국정치사에 몇 번 이렇게 크게 격랑을 일으키면서 방향을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만 여러 군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며 "2.12총선돌풍의 발화점을 마련한 것 역시 김현규 의장이었고, 아까 말씀드렸던 유신 이래 그때 뭐 5공 시절에는 거짓이 아니라 준위가 장관을 와라가라 이런 일도 있는 그런 정권하에서 방위비를 정면으로 거론하고 나와 가지고 마침내 관철을 해낸 것도 김현규 의장입니다"고 추켜세웠다.

이어 양김의 도덕적 우위를 대중적 운동으로 전환시킨 장본인이 김덕룡 의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분 모두 장기간에 걸쳐서 사실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해왔으니까 도덕적인 우위에 있었고, 그런 도덕적인 우위를 대중적인 운동으로 전환시킨 거는 김덕룡 의원이 짜낸 아주 탁월한 전략 덕분이었습니다. 김덕룡 의원이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고 설명했다.

12대 총선은 1985년 2월 12일에 실시됐고, 각 지역구에서 1구2인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통한 직접선거로 184명을, 비례대표인 전국구에서 92명을 총 276명을 선출했다. 의석 분포는 민주정의당 148석, 신한민주당 67석, 민주한국당 35석, 한국국민당 20석, 신정사회당 1석, 신민주당 1석, 무소속 4석 등이다.

이와 같이 2.12 총선돌풍은 민한당 국민당 등 위성정당의 몰락과 신민당이 거대야당으로 부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29.26%를 얻은 신민당에 비해 민한당은 19.68%를 얻는 데 그쳤으며 국민당은 9.16%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위성정당의 부진으로 신군부의 패권정당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이민우 구상은 기자가 만들어 낸 허구...내각제 주장한 적 없어

홍 의원은 이른바 내각제 개헌으로 불렸던 ''이민우 구상''에 대해서 알려진 바와는 다른 숨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민우 구상은 86년 12월 24일 신민당 총재인 이민우가 ‘선민주화 후 내각책임제 협상’ 을 핵심으로 한 구상을 발표 한 것으로 당시 정권과 협의 뿐 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그해 5월 이민우의 방미 시 국무장관 슐츠의 “직선제 만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직선제에도 여러 변형이 있다” 라는 발언을 볼 때 미국과 사전교감이 있지 않았으냐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언론은 당시 홍사덕 의원이 이민우 총재의 장자방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민우 구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 기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대목에서 당시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매우 훌륭한 사람이란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86년 12월 24일 이른바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이민우 구상’이 보도된 후 신민당의 막후 실력자였던 김영삼 고문과 김대중 고문은 소속의원 74명을 이끌고 87년 5월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폴리뉴스
홍 의원은 YS, DJ와 ‘YS당권 조정’ 역할을 한 후 이민우 총재를 찾아갔다.

상계동에 이민우 총재님을 찾아가서 이제는 김영삼 총재가 직접 당을 지도할 의사를 가지고 있으니까, 물론 김영삼 총재님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어요. 거기에 맞는 수순을 밟는 게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보인 반응은 그렇게 결정을 했으면, 대변인 판단이 그러면은 그렇게 해야지 라는 거랬어요"

"근데 그 뒤에 찾아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거 아닙니까. 조금씩 바뀌고 그게 아마 크리스마스 무렵인데 늘 했던 대로 매일 아침 상계동에 올라가서 총재님이랑 그날 온 언론인들이랑 앉아가지고 이제 아침밥 같이 먹고 아침식사 끝난 다음에 내가 따로 커피 한잔 하면서 정세에 관한 그날 특히 말씀을 해야 될 부분이거나 그런 거를 선문답하듯이 한 5분, 10분 하거든요"

"그날도 아주 통상적인 거를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이기 때문에 기자실에 와서 통상적인 얘기를 했고, 근데 내가 나온 다음, 기자들이 따로 총재님을 만나가지고 몇 가지 말씀을 들었고 그것 역시 늘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그 끝에다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직선제 개헌투쟁 이외에 내각책임제 개헌도 고려할 수 있는 거 같이 했는 건데 내각책임제라 그러는 거도 민주적인 정치양식의 하나다라는 이 얘기가 그렇게 전환이 된 거죠"

"내가 이 부분을 길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걸로 다 끝났는데 지금은 고인이 됐습니다만 동교동쪽에서 아주 신임하던, 그리고 대단히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일보 기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하여튼 이민우 총재님이 늘 말씀하던 거를 다시 재정비해가지고, 거기에다가 방점을 대통령 직선제 개헌투쟁이 아니라 내각책임제도 고려할 수 있다는 쪽으로 해서 방점을 찍어가지고 내려왔어요. 그러고 기자실에서 정리를 하면 이렇게 되는게 아니냐 그러고 썼던 겁니다"

"내가 겪은 부분만 얘기하기로 했으니까 말씀드리면 이민우 구상은 따로이 구상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민우 총재님이 당권을 양김한테 반환하는 일정을 만족스럽게 짜주지도 이행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기된 문제였고, 그 뒤의 일은 이미 보도로 다 알려졌습니다"

이민우 구상과 관련, 함성득 교수와 김윤환 전 의원은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민우와 김영삼 당권 두고 2차례 협상했지만 ''결렬''

"양김하고 이민우 총재님이 완전히 갈라서는 단계에 갔을 적에, 두 차례 갈라졌습니다"

"첫 번째 갈라졌을 적에는 내 혼자서 싸웠죠. 이건 아니다 그래가지고 이민우 총재님하고 김영삼 총재님을 김덕룡 의원한테 상의해가지고 두 분이 만나면 해결이 될 거 아니냐, 그래서 구기동에 있는 두 분이 산행하고 내려올 적에 가끔 들러서 이제 식사하던 그 집에 모시고 한 30분 얘기하니까 깨끗이 끝났어요"

"모든 게 이제 김영삼 총재님 원하는 대로 당권도 이렇게 이렇게 하고 그래서 마침내 내가 성공을 했는가 싶었는데 그러고 대변인을 관뒀으니까 매일 아침 올라가는 것도 끝나고 또 미국에서 초청받은 게 있어서 잠시 다녀왔더니 뭐 상계동 이민우 총재님 집 드나드는 사람들 구성이 완전히 달라져 있드만요"

"그래서 구기동에서 양자회동에 합의되었던 게 깨지고 그게 이제 2차분열이죠. 그러고 그냥 끝난 거였어요"

"이민우 총재님의 좋은 점이고, 제가 아까 스케일이라고 그랬습니다만 그런 소소한 일을 일일이 붙잡고 설명하신 적이 평생에 한 번도 없습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당권을 넘겨주는 시기선정에 대한 분쟁이랬는데 마치 이제 민주화투쟁에 걸림돌이 된 거 같이 됐으니까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그죠? "

당시 정국에서 홍 의원의 역할을 제기하자 "그때의 핵심은 이민우 총재님이 당권을 그때 2월에 하느냐, 3월에 하느냐, 5월에 넘겨주느냐 그 부분에 대해서 원하는 대로의 답변을 하고 또 그렇게 실행을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걸 놓치니까 그런 방식으로라도 강제를 했던 거고 이민우 총재님이 가지고 있던 실력으로는 그걸 막을 방법도 없었던 거고 그런 거죠"라며 자신을 낮췄다.

"한 일년 쯤 지난 다음인가 제가 이제 한번은 집에 있는데 이민우 총재님을 모시던 어떤 비서 중에 한사람이 전화를 해가지고 총재님이 그때 당시 있었던 일을 사실 그래도 회고하는 대담을 하면 어떻겠느냐, 어떤 월간지에 나가서, 그래서 깜짝 놀래가지고 쫓아올라갔어요"

"아무개가 그런 얘기를 하던데 정말로 그런 검토를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말씀이 이제 이런거에요. 지금 야당을 이끌고 있는 게 양김인데, 양김한테 조금이라도 누가 될 얘기를 하는 거는 야당한테 누를 끼치는 일 아닌가,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이민우 총재님은 그런 분이었어요"

양金 단일화 시도 실패로 민주세력 분열

이 총재와의 1,2 차 협상이 결렬되면서 김영삼과 김대중 고문은 87년 5월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 후 김대중 총재는 통일민주당을 나와 그해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게 된다.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이 과정에서 홍 의원의 활약이 대단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홍 의원은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 창당으로 양김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양김의 흡인력이 워낙 커서 막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일화 의도를 했던 게 저 하나만이 아니고 또 여러 명이 됐습니다. 김대중 총재님이 소위 평화민주당 창당 결의를 밝히기 바로 전날 여기 맨하탄호텔, 지금 이름이 바뀌었습니다만 거기에 내가 한실 큰 거 두 개를 빌려가지고 어떤 경우에는 단일화하지 않으면 갈라선 야당에, 그러니까 양김이 갈라놓은 당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27(현역 의원)명을 확보를 했습니다. 바로 전날이에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거기에는 박찬종 의원서부터 하여튼 조순형 선배도, 물론 조순형 선배가 아주 큰 기둥이었고 27명을 확보를 했는데 양쪽 방에, 숫자가 많으니까 양쪽 방에 나누어놓고 결의문을 만들어서, 미리 작성을 한거지만 서명을 받아갈라고 그러는데 이상하게 한명, 두명씩 급한용무 또는 뭘 대고 빠져나가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결국 7명만 남았더랬습니다. 그 가운데 끝까지 남은 거는 5명 정도"라며 "그렇게 해서 양김의 흡인력이라 그럴까, 그걸 당해내질 못하고 실패를 했고, 그 뒤의 일은 정국 전체흐름에서는 단일화운동했던 사람들이 워낙 뭐 사소한 부분으로 치이게 돼죠"라고 단일화 시도가 실패했던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양 金의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 YS와 DJ의 간접대화

"김영삼 총재님이 독일방문을 했습니다. 저도 같이 당대변인이지만 김영삼 총재님 위상이 워낙 그러하니까 수행을 해서 갔는데 중간에 저한테 귀국해서 김대중 총재님을 만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김영삼 총재님은 지시를 할 적에 왜 그러는지, 미션이 뭔지를 절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면은 “대변인 오늘은 늦었고 말야, 내일 저녁이라도 서울 들어가 봐”, 그래서 “예” 하니깐 “동교동은 들러야지”, “예”, 그게 이제 대화의 전부였습니다만 왜 가라 그랬는지는 내가 이제 새겨서 미션을 수행해야 될 저거였죠"

"말씀대로 들어와 가지고 바로 동교동에 갔고, 김영삼 총재께서 직접 당을 지도하는 게 났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을 계속 듣고 있는 거 같습니다. 김영삼 총재 뜻을 전하는 게 아니라 주변 뜻을 전하는 형식으로 했고, 김대중 총재님도, 일제 때 고등교육을 받은 분들의 대화방식은 조금 독특하거든요. “그러했는가” 반문하는 걸로 우리 대화는 끝났죠"

신민당 당권을 이민우에게서 YS에게로 바꾸는 것에 대한 YS와 DJ의 간접대화였다.<②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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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상생통일 14차 경제산업포럼](종합) ‘포스트 코로나, 디지털 기반의 혁신 성장 전략’ 성료 
[폴리뉴스 권규홍 기자] 폴리뉴스와 상생과통일포럼이 ‘포스트코로나, 디지털 기반의 혁신 성장 전략’을 주제로 연제14차 경제산업포럼이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29일 여의도 CCMM 빌딩에서 열린 포럼은 포스트코로나 시대 디지털 기반의 혁신 성장 전략을 위한 정·재·학계의 다양한 전망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를 논의하기 위해 기획했다. 특히 이번 포럼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 우리 산업이 어떻게 변모해 가야하는지 등 미래사회를 주제로 개최해향후 포럼의 주제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의의를 더했다. 이날 행사는 상생과통일포럼 상임운영위원장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의 인사말로 시작되었고, 이어 포럼 공동대표인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의 축사,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노웅래 국회 과학방송통신위원장 4선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4선), 윤관석 (3선), 박광온 (3선), 이원욱 (3선) 의원 등이 축사를 맡아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을 강조했다. 상생과통일포럼의 공동대표인 설훈 의원은 “제가 상생과통일포럼의 공동대표 맡았지만 저보다 김능구 대표가 주도


[김능구의 정국진단] 진성준 ③ “김종인 복지정책 공약...통합당 전향적으로 나와 준다면 환영”
[폴리뉴스 권규홍 기자] 21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구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 되어 재선에 성공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서울 강서구을, 재선)이 25일 폴리뉴스 회의실에서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의 ‘정국진단’ 인터뷰를 가졌다. 진 위원장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사회, 경제적인 복지정책을 들고 나온 것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그간 노력이 번번히 야당 발목잡기 이념공세에 시달려 제대로 탄력 받지 못했다”며 “김 비대위원장이 시대 정신을 실현하는데 전향적으로 나와 준다면 저희도 환영이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날 인터뷰에서 진 의원은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 체제에 대한 전망, 주호영 원내대표에 대한 평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문제,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진 위원장은 ‘21대 총선이후로 유권자 정치지형의 변화가 왔다’는 질문에 “과거에는 지역 연고가 정치적 선택의 준거였다면 점차 사회가 진화하면 할수록 정치적 선택을 좌우하는 요소가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주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을 양보할수 없다는 것에 대해선 “야당이니까 정부 여당 견제하고 감시하겠다 그럴 수단으로 법사위원장 예결위원장 하겠다는거

[카드 뉴스]코로나19가 쑥쑥 키운 HMR, CMR, 밀키트 시장

[폴리뉴스 송서영 기자]조리시간을 줄여주는 가정간편식(HMR), 간편대용식(CMR), 밀키트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HMR은 완전조리 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입니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생선구이’의 3월 매출이 2월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비비고 생선구이는 전자레인지 1분 조리로 완성돼 가격 대비 시간을 의미하는 ‘가시비’ 높은 제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만두피가 얇은 ‘풀무원 얄피만두’는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 봉을 넘어섰습니다. 얄피만두는 풀무원의 냉동 HMR 사업의 성장동력이기도 합니다. 풀무원은 얄피만두 등 HMR 제품 출시로 지난해 국내 냉동 HMR 시장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HMR보다 더 간편한 CMR의 인기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CMR은 간편대용식으로 주로 단백질 바, 영양 분말식을 말합니다. 오리온은 ‘닥터유 단백질바’가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300만 개를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집에서도 단백질로 건강을 챙기고 싶은 소비자의 확산으로 지난 2월에는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월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밀

[총선 D-day]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개표 상황 현장

[폴리뉴스 권규홍 기자]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이 제21대 총선 종합상황실을 국회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 마련해 개표 결과를 기다렸다. 이 자리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지역구에 출마했던 주요 격전지의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 개표 결과를 기다렸다.


추미애 “윤석열이 ‘공수처 1호’? 적합치 않다...한명숙 사건 재조사해야”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9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7월 출범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1호 수사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여권 일각에서는 윤 총장의 장모와 배우자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된 건 등에 대해 ‘공수처 1호 수사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추 장관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특정 개인의 문제로 논란을 만들면 공수처 출발을 앞두고 그 본래의 취지가 논란에 빠져 (공수처가) 제대로 출범하지 못하는 여론이 조성된다”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추 장관은 ‘윤 총장은 1호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성역은 없다”며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공수처는 검사들이 지금까지 해 온 것이 권력에 지나치게 유착돼서 제대로 사법정의를 세우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기 식구 감싸기 식으로 조직 내부의 큰 사건에 대해서도 감추고 축소수사를 한 것들에 대한 반성적인 입장에서 탄생한 것”이라며 “권력과 유착해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거나, 제 식구를 감쌌다거나 하는 큰 사건들이 공수처의 대상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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