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투자 46%는 정책자금, 규모는 은행권 대출 0.28% 수준

 <글 싣는 순서>

① 혁신기업의 굴레, 담보대출
② 민간투자에 목 마른 모험자본시장
③ 성패의 관건은 자금의 적기 공급
④ 최훈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인터뷰
⑤ ‘제2의 벤처 붐’ 위해 혁신투자 늘리는 금융권

이재홍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관이  지난 1월 24일 강남구 팁스타운 해성빌딩에서 ‘2018년 벤처투자 실적 및 2019년 모태펀드 운용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벤처부>
▲ 이재홍 중소벤처기업부 벤처혁신정책관이  지난 1월 24일 강남구 팁스타운 해성빌딩에서 ‘2018년 벤처투자 실적 및 2019년 모태펀드 운용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중소기업벤처부>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혁신성장을 위한 국내 벤처투자 규모가 해외 벤처 강국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투자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정책자금보다는 민간자금 유입이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미국의 벤처투자 시장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다. 최근 데이터분석기업 피치북과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미국 벤처투자 규모는 1309억 달러(약 150조 원)로 전년(839억 달러) 대비 56% 급증했다. 투자 건수도 8948건에 달했다.

이에 대해 윤동한 코트라(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은 지난 14일 “2000년 닷컴 버블을 능가하는 수치”라며 “더 많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탄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벤처투자도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3조4249억 원이다. 이는 역대 최고였던 지난 2017년 2조3803억 원보다 43.9% 증가한 것이다. 신규 벤처펀드 조성액도 4조6087억 원보다 소폭 늘어난 4조6868억 원이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3월 ‘성장지원펀드 출범식’에서 공개한 자료를 보면 아직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벤처투자 비중은 0.13%로 미국 0.37%, 중국 0.28% 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한 지난 2017년 기준 한국의 벤처투자액은 전체 은행권 대출의 0.28%에 그친 반면 미국은 우리나라의 3배 수준인 3.67%로 조사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3월 2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혁신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성장지원펀드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3월 2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혁신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성장지원펀드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러한 벤처투자 상황은 유니콘 기업 보유 개수로도 증명된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미국은 전 세계 309개 유니콘 기업 중 절반에 해당하는 151개 기업을 보유 중이다. 중국 기업은 82개였다. 반면 한국 기업은 6개에 그쳤다. 유니콘 기업은 한 나라의 벤처산업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 불린다.

이와 관련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9월 “선진국을 중심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 자본시장은 아직까지 ‘스몰 위너’를 만드는 수준”이라며 “한국은 외국에 비해 벤처자본의 정책자금 의존도가 높아서 기업 당 투자금액이 적고 단계별 후속투자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스몰 위너는 기업공개(IPO) 기준을 간신히 넘는 기업을 말한다.

최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국내 벤처펀드에서 정책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6%로 미국 12%를 한참 웃돌았다.

또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2018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벤처기업이 자금조달 방식은 정책지원금(60.5%)과 일반금융(23.3%) 등 보증이나 대출에 쏠려있다.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 비중은 0.1%다.

그만큼 국내 벤처기업이 정부 지원이나 대출을 제외한 민간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벤처투자 등 혁신기업 성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국내 모험자본시장에 민간 투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8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 내 벤처기업의 2017년 신규 자금조달 규모. <사진=중소벤처기업부>
▲ 2018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 내 벤처기업의 2017년 신규 자금조달 규모. <사진=중소벤처기업부>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2017년 발표한 ‘국내 모험자본시장의 현황 분석과 발전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전 세계 모험자본시장에서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28.4%에 달해 우리나라 상황과 큰 차이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박 연구위원은 “결국 국내 벤처투자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정부의 정책자금이 민간자금을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며 “수익률이 낮으면 민간 자금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으므로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을 발굴하여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익률이 높은데도 모험자본시장에 민간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나”고 반문하며 “전체 벤처기업에 돈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보다 성장력 있는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 모험자본시장에 민간자금을 끌어들이기엔 벤처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 및 자금 회수 사례가 부족하다는 분석도 많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전 세계 기술 스타트업 엑시트(자금 회수) 순위에서 4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미국은 1600건으로 1위를 차지했고 중국(11위), 싱가포르(15위), 일본(18) 등도 20위권에 들었다.

자금 회수는 투자, 성장, 회수, 재투자로 이어지는 벤처생태계 선순환의 핵심 연결고리다. 민간 투자자들이 창업할 때 투자했던 자금을 기업 성장 후 돌려받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야만 재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사진=연합뉴스>
▲ 중소벤처기업부. <사진=연합뉴스>


현재 국내 벤처투자 자금회수는 대부분 기업공개(IPO), 즉 주식시장 상장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IPO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13.1년이라는 점이다. 민간 투자자 입장에선 수익을 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벤처투자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1월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인수합병(M&A) 확대를 통한 혁신창업 활성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벤처기업 투자 후 M&A를 통한 회수금은 405억 원(10월 말 기준)으로 IPO를 통한 회수금 2353억 원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게다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벤처 IPO 건수는 24개에 그쳤다. 2016년엔 36건, 2017년엔 40건이었다.

그러나 2017년 기준 미국에서는 IPO를 통한 회수금이 497억7000만 달러, M&A를 통한 회수금이 382억2000만 달러였다. 유럽도 IPO 회수금 87억8000만 유로, M&A 회수금 80억8000만 유로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M&A를 통한 투자 회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모든 벤처 창업이 IPO로 연결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M&A 활성화를 통해 다양한 투자금 회수 방안이 확보되면 벤처 창업 붐이 조성되고 민간 투자 유인이 제고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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