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기업 약 70%는 3~7년차 데스밸리 자금난 극복 못해

 <글 싣는 순서>

① 혁신기업의 굴레, 담보대출
② 민간투자에 목 마른 모험자본시장
③ 성패의 관건은 자금의 적기 공급
④ 최훈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인터뷰
⑤ ‘제2의 벤처 붐’ 위해 혁신투자 늘리는 금융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3월 2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혁신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성장지원펀드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3월 2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혁신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성장지원펀드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하나의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연결되고 스타트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려면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3월 “국내 벤처기업 생태계는 ‘창업-성장-자금회수-재도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미흡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의 벤처투자시장이 양적으로 확대됐지만 기업의 성장단계마다 빈틈없이 자금을 공급하는 체계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벤처투자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어왔다. 하지만 급증한 투자규모가 무색하게 벤처업계에선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신규 벤처투자 규모는 3조4249억 원이다. 이는 역대 최고였던 지난 2017년 2조3803억 원보다 43.9% 증가한 것이다. 신규 벤처펀드 조성액도 4조6087억 원보다 소폭 늘어난 4조6868억 원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10월 열린 ‘혁신성장 간담회’에서 정보기술(IT) 분야 스타트업인 민코넷은 “초기 창업시기에는 어느 정도 돈이 있지만 창업초기 이후 기업에 돌아가는 자금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017년 10월 19일 강남구 창업보육센터 '마루180'에서 '우리경제 혁신성장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열어 기업인과 투자자, 학계와 법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금융의 역할 의견을 청취했다. <사진=금융위원회>
▲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017년 10월 19일 강남구 창업보육센터 '마루180'에서 '우리경제 혁신성장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열어 기업인과 투자자, 학계와 법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금융의 역할 의견을 청취했다. <사진=금융위원회>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창업 3~7년 사이에 상품개발과 매출부진, 투자금액 고갈 등으로 성장 정체기를 맞으며 극심한 자금난(데스밸리)에 시달린다. 그러나 국내 벤처생태계에는 창업자금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반면 창업 3~7년차 데스밸리(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거나 극복한 스타트업의 성장자금은 부족하다.

중기벤처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신규투자를 받은 국내 벤처기업 1399개 가운데 7년을 초과한 기업은 365개로 전체의 25.3%에 그쳤다. 3~7년 이내 기업은 454개로 31.4%였다. 반면 3년 이내 기업은 625개로 43.4%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해 10월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내 5년차 창업기업의 생존률은 2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40.9%)에 한참 못 미쳤다. 창업기업의 약 70%는 이러한 데스밸리 구간을 넘기지 못하고 폐업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버(Uber), 에어비엔비(Airbnb)와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이 창업초기(Seed)부터 성장단계별(Series A~E)로 연속적인 투자자금을 유치하며 성장해 온 것과 대조적이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의 유니콘 기업들은 국내보단 해외에서 성장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일례로 현재 기업가치가 3조 원에 달하는 우아한 형제들(배달의 민족)은 지난 2014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주도 컨소시엄으로부터 400억 원, 지난 2016년 중국계 밴처캐피털(VC)로부터 570억 원을 투자받았다. 또 비바리퍼블리카(토스)는 미국 페이팔(2017년)과 굿워터(2016년) 주도 컨소시엄에서 총 765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우리 혁신기업이 큰 규모의 성장자금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며 “국내 벤처기업의 연속적인 성장에 필요한 자금이 적시에 공급되고, 투자된 자금이 회수와 재투자되는 자금순환 과정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정부도 기업의 성장단계별 자금 공급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 금융위가 발표한 대규모 성장지원펀드 조성 계획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창업과 성장, 회수단계별 투자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3년간 8조 원 규모의 펀드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또한 4년간 20조 원의 연계대출을 제공해 기업 인수합병(M&A), 사업재편, 설비투자 등을 돕기로 했다.

<사진=벤처기업협회>
▲ <사진=벤처기업협회>


그러나 벤처업계에선 실감하기 어려운 수준의 변화라는 입장이다. 이재남 벤처기업협회 정책연구실장은 “정부는 기업이 창업부터 데스밸리를 넘겨 성장하기까지 자금이 공급되는 성장사다리가 조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벤처업체는 창업은 물론 성장단계마다 자금 부족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데스밸리 구간의 기업들은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보증이나 대출마저 받을 수 없다”며 “게다가 매출이 없는 상태에서 투자를 받으면 그만큼 부채비율이 상승하므로 그 이후엔 더더욱 투자환경이 열악해진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노형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월 발표한 ‘혁신성장을 위한 인재자본 투자기구 도입’ 보고서에서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한 인내자본(patient capital) 확충에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내자본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와 융자를 통해 기업이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자본을 뜻한다. 최근에는 기업 성장단계에서 장기 시계를 갖는 자본, 인내심 있는 자본이라고도 불린다.

노 연구위원은 “인내자본이 기업 성장단계 초기 단계에서부터 투자되는 경우 투자원금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크기 때문에 민간 자본 단독으로 인내 자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장기적인 비유동 자산인 투자대상 기업에 자금을 묶어 둬야 하는 인내 자본 성격상 민간 자본이 인내 자본에 투자하더라도 그 비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창업 초기 맹아 단계부터 확장 단계까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인내 자본 공급정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인내 자본 투자기구를 구성하고 유동성 공급자로 참여하되 민간이 투자 대상을 선별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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