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1 (월)

  • 흐림동두천 16.3℃
  • 흐림강릉 21.3℃
  • 서울 17.0℃
  • 흐림대전 18.6℃
  • 흐림대구 20.7℃
  • 흐림울산 18.1℃
  • 흐림광주 18.6℃
  • 박무부산 18.9℃
  • 흐림고창 17.8℃
  • 흐림제주 17.4℃
  • 구름많음강화 16.1℃
  • 흐림보은 16.9℃
  • 흐림금산 17.7℃
  • 흐림강진군 18.5℃
  • 흐림경주시 19.1℃
  • 흐림거제 18.7℃
기상청 제공

라이프

전두환 나이 여든 아홉, "회고록,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死者) 명예 훼손 아니다"

  • 윤청신 기자 powerman02@hanmail.net
  • 등록 2019.03.12 07:22:33

[폴리뉴스=윤청신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재판에 출석했다.

11일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전씨의 공판이 열렸다.

전씨 측은 법정에서 "과거 국가 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통해 국가기록원 자료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며 전씩 회고록에 허위 내용을 적시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전씨의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5·18 당시 헬기 사격설, 특히 조비오 신부가 주장한 5월 21일 오후 2시쯤 광주 불로교 상공에서의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허위사실로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조비오 신부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인물이다.

1931년생으로 올해 여든 아홉살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12·12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어 2월 개정된 새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상남도 합천출신으로 1951년 대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에게 발탁되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 1963년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1969년 육군본부 수석부관을 지냈다.

1964년 '하나회'를 만들어 이미 정치군인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전두환은 1979년 10·26사태(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  이후 하나회 소속 군인들이 장성 진급 등에서 불리하게 되고 여러 분야에 걸친 자신의 월권행위가 문제되자, 1979년 12월 12일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등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불법 연행하는 등 군의 지휘체계를 깨뜨리면서 사실상 제1인자로 부상했다.

1970년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1971년 제1공수특전단 단장을 지냈다. 1976년 대통령 경호실 차장보,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낸 후 1979년 초 국군보안사령관이 됐다.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12월 12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신군부가 12·12군사정변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 중장으로 진급하고, 이어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됐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12·12사태로 군사독재를 연장하려 하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수만 명의 시민들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계엄 철폐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을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대한다는 발표를 한 뒤 학생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휴교령 등의 민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이에 그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신군부 세력은 무력 진압을 실시했고, 결국 5월 27일 계엄군의 총공세로 많은 희생자를 내며 광주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렸다.

5·17비상계엄 전국확대조치와 함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강제로 진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그해 6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상임위원장이 됐다.

1980년 8월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자, 전두환은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선거 단일후보로 나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9월 29일 대통령 임기 7년 단임과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공고하였고, 이에 따른 국민투표가 실시돼 10월 27일 새 헌법이 공포됐고 전두환 정권은 1980년 11월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 등을 단행했다.

이후 1981년 1월 창당된 민주정의당 총재에 추대됐고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1년 2월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1981년 3월 임기 7년의 제12대 대통령에 정식 취임, 제5공화국 정부를 출범시킴으로써 12·12사태로부터 15개월 여만에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 장악을 마무리했다. 취임과 함께 복지국가 건설·정의사회 구현등을 내세운 그는 재직 중에도 국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끊임없는 저항에 부닥쳤으나, 강권으로 이를 억누르며 정권을 가까스로 유지해 나갔다.

그리고 7년의 대통령 임기 가운데 마지막 1년 여를 남겨 놓고 있던 1987년 4월 13일,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국민들의 개헌 요구와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당시 제5공화국 헌법에 따라 1988년 2월 정부를 이양하고 이를 위한 대통령선거를 연내 실시한다는 내용의 특별담화인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기폭제로 하여 한국 정치사의 커다란 분기점인 '6월항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여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으나, 국민들의 거센 직선제 개헌요구는 계속됐다.

이에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6월 29일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포함한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을 담은 '6·29선언'을 발표했고 전두환은 7월 1일 시국 수습에 관한 특별담화를 통해 6·29선언을 전폭 수용한다고 밝혔으며, 7월 10일에는 민주정의당 총재직을 사퇴했다.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면서 전두환은 정권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가원로자문회의와 일해재단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하지만 5공 군부와 6공 군부 간 권력투쟁에 휘말려 1988년 4월 13일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직과 민주정의당 명예총재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제6공화국 초기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제5공화국 권력비리에 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전 국민적인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그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1988년 11월 23일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 헌납을 발표하고 백담사에 은둔하였지만, 2년 1개월 만인 1990년 12월 30일 하산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사태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1995년 구속수감돼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및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승리로 최초의 여·야 간 정권교체가 실현되면서 나흘 뒤인 12월 22일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1998년 복권됐다.

그는 2003년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며 추징금을 납부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533억 원이 추징되었고, 2013년 8월에는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팀이 출범했다. 이후 수사팀의 자금 추적 등을 통해 확보된 부동산, 금융자산, 미술품 등이 공매처분 등의 방식으로 422억 원이 환수처리되는 등 2014년 4월 현재 전체 추징금 2205억 원 중 955억 원이 집행됐다.

사진 연합뉴스

 



















[이슈] ’보수우파 탈색‘하는 김종인, 사회적 약자에 중점 두는 새로운 정당모델 제시
"진보, 보수, 중도라는 말 쓰지 마라. 자유우파라는 말도 쓰지 마라“. 미래통합당의 고강도 쇄신작업을 맡게 될 김종인 신임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소신을 잘 담고 있는 지시사항이다. 이념에 천착해 전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보수진영을 ‘파괴적으로’ 혁신해 보수정당의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공개 당 지도부 회의부터 변화 꾀하는 김종인 김 비대위원장은 당장 보여지는 당 지도부의 회의 방식부터 바꾼다. 최고위원 서열 순으로 4~5분간 공개발언을 쭉 하던 과거 방식과는 달리, 일부의 발언만 공개하되 ‘회의다운 회의’를 하겠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가 초반 일부만 공개되는 만큼, 대변인이 회의 내용을 요약해 전달하게 된다. 32세 청년으로 선정 당시 화제를 모았던 정원석 비대위원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공개회의의 모두발언들이 형식적이었다면,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성과중심으로 평가받자는 것“이라며 ”거대여당을 상대로 내부 메시지 통일도 안 되면 그만큼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 탈색’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에 중점 두는 쪽으로 노선 전환 김 비대위원장은 과거 보수진영


[김능구의 정국진단] 박성중 ③ “젊은이 기르려면 지역의 구의원·시의원·구청장 이렇게 단계 밟아서 가야”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의원으로 서울지역에서 유일하게 재선에 성공한 박성중 통합당 의원(재선, 서울 서초을)이 26일 여의도 의원회관 박성중 사무실에서 폴리뉴스’의 김능구 대표와의 ‘정국진단’ 인터뷰를 가졌다. 이날 인터뷰에서 박 의원은 청년 정치의 실상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으며, 기본소득제와 노동개혁, 코리아 뉴딜 등의 경제정책에 대해 논했다. ‘청년 벨트’를 만들어 경쟁력 있는 청년 후보가 아닌데 억지 공천을 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박 의원은 “외피상으로 청년 벨트를 만든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지역들에는 청년을 넣어서 될 리가 없었다. 선거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일이다. 최소한 1년 전부터 지역을 닦았어야 한다”며 “제가 대표라면 비례대표에 청년들을 집중 배치하고 능력에서 두각을 보이면 그때 지역구에 공천 주겠다”고 밝혔다. 40대에 당수와 총리가 된 영국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 사례에 대해서 박 의원은 “20년 이상 고등학생 때부터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는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은 선거 때에만 나타난다”며 “지역구 정하거나 광화문 아스팔트, 유튜브와 방송 등에서 의사표시 하는 등 다양하게 해

[카드 뉴스]코로나19가 쑥쑥 키운 HMR, CMR, 밀키트 시장

[폴리뉴스 송서영 기자]조리시간을 줄여주는 가정간편식(HMR), 간편대용식(CMR), 밀키트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HMR은 완전조리 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입니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생선구이’의 3월 매출이 2월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고 16일 밝혔습니다. 비비고 생선구이는 전자레인지 1분 조리로 완성돼 가격 대비 시간을 의미하는 ‘가시비’ 높은 제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만두피가 얇은 ‘풀무원 얄피만두’는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 봉을 넘어섰습니다. 얄피만두는 풀무원의 냉동 HMR 사업의 성장동력이기도 합니다. 풀무원은 얄피만두 등 HMR 제품 출시로 지난해 국내 냉동 HMR 시장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HMR보다 더 간편한 CMR의 인기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CMR은 간편대용식으로 주로 단백질 바, 영양 분말식을 말합니다. 오리온은 ‘닥터유 단백질바’가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300만 개를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집에서도 단백질로 건강을 챙기고 싶은 소비자의 확산으로 지난 2월에는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월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밀

[총선 D-day]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개표 상황 현장

[폴리뉴스 권규홍 기자]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이 제21대 총선 종합상황실을 국회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 마련해 개표 결과를 기다렸다. 이 자리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비롯해 지역구에 출마했던 주요 격전지의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 개표 결과를 기다렸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