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의 인생 –도작 35년展 고향에서 열려
'빛은 동방에서(The Dream from the East)'

고향인 경주에서 도작 35년 전시회를 개최하는 세계적인 도예가 지산 이종능 작가. <사진 = 이종능 작가 제공>
▲ 고향인 경주에서 도작 35년 전시회를 개최하는 세계적인 도예가 지산 이종능 작가. <사진 = 이종능 작가 제공>

 “흙과 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흙은 곧 사랑입니다. 그리고 불은 열정입니다. 흙과 불은 곧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작가 토흔의 창시자인 지산 이종능(62)작가의 흙에 대한 철학이다.

지산 이종능 작가의 작품에는 천년고도 경주의 혼(魂)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는 경주 어느 곳에서나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우리 문화유산의 색(色)과 향(香), 천년 세월을 품은 에밀레종의 맥놀이 음(音)과 함께한 유년생활이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뉴욕, 워싱턴, 런던, 도쿄, 오사카 등 세계 각국에서 도예 전을 개최하며 각국 최고의 큐레이터와 예술가 그리고 유력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이종능 선생은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한국의 미(美)를 전 세계에 알려왔다.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에게는 경주가 예술혼의 어머니이자 스승이었다고 회고한다. 세계 각국과 타 도시에서 전시회를 많이 가졌고 호평을 받았지만 고향에서의 전시회는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드디어 이종능 작가는 60갑자를 돌아 고향 경주로 돌아왔다.

그의 후반기 도예인생 30년의 첫 발걸음을 황룡사 9층탑 양식의 ‘중도 타워’에서 오는 21일부터 6월10일까지 20일간 사랑과 자유, 평화, 행복 그리고 시작의 꿈을 꾸며 ‘빛은 동방에서’ 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갖는다.

일본에서 도예전문 기자가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의 스승은 자애(慈愛)로운 나의 어머니요, 천년 고도(古都) 경주요, 대자연(大自然)입니다”는 답을 했다고 전한다.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이,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에밀레 종소리가 유년의 터에서부터 감성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계파나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창작 욕구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도예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는 대학4학년 때부터 한국 도자기의 메카인 경기도 이천에서 본격적인 흙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 도자기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인 90년부터는 93년까지 모든 일을 접어두고 일본, 대만, 중국, 태국, 몽고는 물론 실크로드까지 답사하며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흐름을 3년 동안 몸소 체험하면서 열정적인 연구를 거듭했다.

이 작가는 일본 도요지를 답사했을 때, 일본 박물관에서 우리선조의 얼과 예술적 깊이가 담긴 도자기를 보면서 우리의 문화재가 강제로 건너온 과정을 생각하며 쓰린 가슴을 달랬었다고 한다.

작가는 86년 KBS․NHK 공동제작 ‘고향을 어찌 잊으리’에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가고시마 사쓰마 야끼의 대가 심수관 선생의 1대조 심당길 도공의 대역으로 물레를 차면서 한국과 일본의 도자에 얽힌 역사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종능 작가는 도예가로서 뜻밖의 참변을 만나 도예인생을 포기할뻔한 순간을 맞은 적도 있다. 일본에서 도자기 수업 중 뜻밖의 사고로 도예가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 한 마디를 잃게 된 것. 그러나 작가는 더 부단한 열정과 더 뜨거운 노력으로 손가락 절단의 운명을 극복하고 마침내 자신의 도예세계를 열었다.

일본 뿐만아니라 중국의 명차 산지인 운남성(시수안 반나, 멍하이), 명요(건요, 길주요, 경덕진 등)를 몸소 체험하고, 도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동양3국의 도자문화의 깊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결과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한다.

이종능 작가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그해 열린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되어 도예 초대전을 연 것을 비롯하여 2002년 KBS․NHK 합작 월드컵 홍보다큐 ‘동쪽으로의 출발’에서 한국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한일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또 2004년에는 KBS 세계 도자기 다큐 6부작 ‘도자기’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조차 궁금해 했던 도자기의 비밀을 그가 직접 설계한 가마에서 세계최초로 풀어내 일반 시청자는 물론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2004년에는 세계 각국의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 23인(블룸버그통신, AIG, 3M회장 등)의 부부찻그릇을 제작함으로써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고 전 세계를 돌며 경제적 관점뿐만 아니라 예술문화의 향훈에 심취한 그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도자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이종능 작가는 2007년 9월에 대영박물관에서 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을 열어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도예 세계로 또 한 번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고, 우아하면서도 세상을 품은 것 같은 백색의 달 항아리의 계보를 잇는 달 항아리 연작을 선보였던 일본의 도쿄, 오사카 전시회 때도 일본방송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아사히 방송은 지산의 토흔 작품과 도자철학에 감동되어 방송시간을 특별히 황금 시간대에 할애했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오사카 역사박물관에서도 그의 백자 달 항아리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2013~14년 미국 L.A와 뉴욕 전시회를 통해서 많은 미 주류사회 사람들과 미술전문가, 박물관 관계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 2015년 워싱턴 D.C 초대전을 가지게 되었다.

이종능 작가는 한국도자기에 내재한 한국인만의 독특한 미의식이 ‘비대칭의 소박미’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도자기는 부족함이 만들어낸 균형 조화의 절제미, 단순 소박미 그리고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아름다운 선만 살려내려는 꾸밈없는 자세에서 우러나온 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친근한 아름다움이 있지요”라는 작가의 작품세계는 ‘토흔’과 달 항아리등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현재 ‘피츠버그 국립민속박물관’, ‘중국 향주 국립다엽박물관’, ‘일본 오사카 역사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해 각계의 평가들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술사가 황규성(전 리움미술관 연구원)교수는 “세계 도자사에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라며 이 작가의 독특한 도자세계인 ‘토흔’에 대해 “강렬하면서 동시에 비대칭의 소박미를 머금고 있다”고 역설했다. 또 작가 고 최인호 선생은 "도예가이기보다는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로서의 면목이 있다. 지산에게는 자신의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치열함, 거짓을 모르는 참 빛이 있으니 육신을 태워 불 가마 속에서 하나의 등신불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이 시대의 소중한 장인이 되어 줄 것이다"는 평을 했다고 전한다.

KBS 감정위원 이상문 선생은 그의 저서 '골동이야기'(2012)에서 “토흔이란 이종능 도예가의 독창적인 흙의 세계이다. 비대칭의 소박미를 추구하는 토흔은 흙의 흔적, 세월의 느낌, 간절한 기도로 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모든 흙은 고열(1250도 이상)에서 원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유약의 색에 의존하지만 토흔은 태초의 그 색을 불속에서 그대로 간직하면서 우리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도예세계이다. 이러한 작품은 후대에 한국의 훌륭한 문화재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세계어디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고 평했다.

‘일본의 살아있는 도자기 인간 국보’로 칭송받고 있는 가토 코오죠 선생은 2010년 도쿄 전시회 때 KBS와의 인터뷰에서 “지산의 작품은 강렬한 힘과 동시에 소박하고 순수함을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고 극찬했었다.

2015년 워싱턴DC 전시회 오프닝 날엔 세계적인 뮤지엄인 워싱턴 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의 폴 테일러 박사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폭 넓은 작품세계가 신선하고 유니크하다. 특히 토흔 도자기 벽화는 기존의 도자기 모습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로 이 도예가의 창의적 감각에 찬사를 보낸다"고 평했다

‘빛은 동방에서’의 테마로 이번 경주에서 열리는 도작 35년전에서는 자신의 독창적인 도자세계인‘토흔’작품과 차도구를 비롯해서 2007년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선보였던 우아하면서도 세상을 품을 것 같은 백색의 달 항아리의 계보를 잇는 일련의 달 항아리 연작들과 몇 년의 산고 속에서 탄생한, 회화의 영역을 개척한 벽화 작품 등 100여 점을 선 보인다.

“도예가란 나의 직업이 아니라 내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길동무”라고 그는 얘기한다.

이렇듯 이종능 작가는 자신만의 흙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의 경쟁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종교와 사상, 현대과학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지산 선생의 작품은 경주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다. 천년 동안 세계적인 문화강국으로 번영했던 신라인들이 지산 선생을 통해 보내온 특별한 선물인 그의 작품들을 만난다는 건 일련의 사건이기도 하다.

이종능 작가는 "흙을 통해 도자기를 좋아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흙과 빛처럼 화합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많이 알릴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향은 물론이고,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작품을 빚기 위해 이종능작가는 오늘도 정성을 기울여 1300도의 불길 앞에서 자신과 씨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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