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발포명령자’인가 ‘사살명령자’인가?
당시 주한미군 정보요원, 보안부대수사관, 운전병, 시민군 등 증언 이어져
‘진상규명조사위’, 지난 해부터 표류 중

공수부대원이 학생을 곤봉으로 내려치려 하고 있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 공수부대원이 학생을 곤봉으로 내려치려 하고 있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 5.18민주화운동 제39주년을 맞으면서, 당시 광주에 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에게 성폭행당한 여고생들이 있었으며, 희생자들을 암매장 한 것이 아니라 소각했다는 증언 등이 나오면서 5.18을 둘러싼 과제는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쌓여가는 모양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에 대해 개입하지 않았으며, 헬기 사격 등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1980년 5월18일부터 5월27일 사이의 그 어느 시간에도 전남 광주의 그 어느 공간에도 나는 실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씨의 이러한 주장을 뒤집는 새로운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와 5.18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허장환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 전 광주에 왔으며, 시민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을 증언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의 기자회견, 14일 5.18기념센터에서의 기자회견, 그외 다수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갖고 희생자 시신 소각, 헬기 사격 등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난 3월  발포명령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 지난 3월  발포명령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과제1. 전두환, ‘사살명령자’인가 ‘발포명령자’인가

지난 3월 11일, 전두환 씨는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받기위해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광주에 방문했다. 그는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이거 왜이래?”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씨는 “발포 명령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회고록에 썼다. 발포명령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은 전 씨의 ‘내란목적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전 씨에게 포괄적으로 발포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전씨에게 발포명령의 정황이 있다는 내용은 다수 밝혀져 왔지만 직접적으로 누구에게 명령했는지, 어떻게 명령했는지 등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발포명령자’를 명시적으로 특정하지는 못해왔다. 
하지만 김용장씨와 허장환씨는 증언을 통해 전씨는 ‘발포명령자’가 아니라 ‘사살명령자’라고 주장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주한미군 501여단에서 근무했던 김용장씨는 “전두환이 1980년 5월 21일 정오께 K57(제1전투비행단) 비행장에 와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대장 등 74명이 회의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사살명령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회의에서 사살명령이 전달됐다고 하는 것이 제 합리적인 추정”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1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그분이 서울로 돌아간 바로 직후에 광주 도청 앞에서 약 70명이 집단 사살 당했다. 그건 전두환 씨 명령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며 “두환 씨가 사살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정보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얘기했다”고 주장을 이어갔다. 

5.18 민주화운동 때 505보안부대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허장환 씨 역시 ‘사살명령’에 대해 “그 사격을 제가 직접 목도했다. ‘앉아쏴 자세’에서의 사격은 절대 자위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전두환이 사살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씨가 광주를 방문했다는 증언에 대해서 당시 공군 706보안부대장 운전병이었던 오원기 씨는 1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5월 21일 오전 10시 30분경에 헬기를 타고 광주로 가는 전두환 씨를 직접 봤다고 증언하며 신빙성을 더했다. 

 

15일 오전 광주 서구 옛 국군통합병원에서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 출신인 허장환씨가 보일러실이 보안시설로 지정돼 있었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15일 오전 광주 서구 옛 국군통합병원에서 당시 505보안부대 수사관 출신인 허장환씨가 보일러실이 보안시설로 지정돼 있었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제2. 희생자 유해, 어디로 갔는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76명에 대해 아직 시신 한 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암매장 추정지 등 광주 인근 11곳을 발굴조사했지만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희생자 시신을 군병원에서 ‘소각’했다거나 김해에 수장했다는 증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허장환 씨는 15일 기자들과 함께 광주 서구 옛 국군통합병원 보일러실을 찾았다. 허씨는 당시 계엄군이 사망자의 시신을 가매장했다가 다시 발굴해 지문을 채취한 뒤 시신 일부를 이 곳에서 소각했다고 증언했다.

지문을 채취한 이유에 대해서는 “시민군 사망자 가운데 북한의 간첩이 있지 않은지 엄중하게 가려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군 병원 시설 가운데 보일러실이 유독 ‘군 보안시설’로 지정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6월 초에 해당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24시간 보일러가 가동됐으며 병원 주변 민가에서 그을음이 심해 장독대를 열어둘 수 없다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5.18 시민군이었던 양기남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국군병원) 위생병의 말을 들어보면 보일러실이 5월 내내 24시간 가동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허 씨는 “시신을 태우다 (보일러) 용량이 충분하지 않아 일부 시신을 김해공항으로 가져가 수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육군본부가 1981년 작성한 비밀문건 ‘소요진압과 그 교훈’에는 1980년 5월 25일 광주-김해 구간을 운항한 공군수송기 기록이 남아있다. 그런데 비고란에 ‘시체’라고 적혀있다. 임무수행 중 사망한 군인을 ‘영현’이라고 높여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시체’는 민간인 시신이라고 미루어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공군이 작성한 ‘5.18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에도 5월 25일 운송화물에 대한 기록은 수정액으로 삭제돼 있으며, 1982년 육군본부가 작성한 ‘계엄사’ 기록에도 5월 25일 광주-김해 운항기록은 누락돼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김용장 씨와 허장환 씨 <사진=연합뉴스>
▲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는 김용장 씨와 허장환 씨 <사진=연합뉴스>


과제3, ‘5.18 신군부 기획설’, 음모론인가 사실인가

김용장씨는 “광주항쟁은 신군부에서 만들어온 시나리오에 의해 일어났다”며 광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내란의 수괴로 엮으려는 신군부의 선택을 받은 도시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지난 14일 광주 5.18기념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형적 위치와 도시 규모, 김대중과의 연관성 등 '폭동화'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대구와 부산은 자기네 고향이자 규모가 커서 배제됐고 대전은 서울과 너무 가깝다는 위험요소가 있다”고 설명했고, “목포는 규모가 작고 남쪽에 치우친 위치가 작전상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광주를 선택한 신군부는 특수 공작부대 ‘편의대’를 파견했다. 편의대는 5월 광주항쟁 기간 내내 시민으로 행세하며 유언비어와 선동을 이끌었다.

김씨는 ‘편의대’를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 수송기를 통해 30~40명 정도가 공항 근처 격납고에 주둔했다”며 “사무실에서 10분도 걸리지 않은 격납고로 직접 가 넝마처럼 보이는 젊은 남성을 봤고, 나중에 그가 편의대원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허씨 역시 “편의대에는 무기고 습격조, 유언비어 유포조, 장갑차 탈취조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며 “아시아자동차에서 군용 장갑차(APC)를 탈취해 운행한 것도 편의대의 소행”이라며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 했다. 

그는 “1988년 청문회 당시 정호용 씨가 답변 과정에서 '요원들에게 편의복을 사주기 위해 왔다 갔다'고 말했다. 이는 정호영 씨가 편의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중요한 발언”이라고 강조했다.

허씨는 공수부대가 5월 21일 광주 외곽으로 퇴각한 것도 사전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광주를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시 외곽으로 빠진 군은 그때부터 광주를 외부와 철저히 차단하고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이유 불문하고 사살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장도 제대로 안 된 시민군이 몰려온다고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원들이 퇴각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저는 40년 동안 그렇게 의심해왔다”면서도 “의심이지 어떤 팩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공개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진=5.18기념재단>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공개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진=5.18기념재단>

과제4. 헬기사격 있었나

검찰은 지난 13일 열린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 재판에 앞서 헬기 사격 목격자 21명(생존 17명·사망 4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전씨는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날 법정에 출석한 5명은 1980년 5월 21일 목격한 헬기에 대해 “헬기 사격 자체가 없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광주천변과 전남대병원 인근, 옛 공용터미널 부근에서 500MD 기종으로 추정되는 헬기가 총을 쏘는 것을 목격하거나 피해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김용장 씨는 헬기 사격과 관련해 미국에 “5월 21일 낮에 UH1H 소형 헬기에서 M60으로 사격했다'. 위치는 도청 주변이었다. 27일에는 광주천 상공에서 위협사격을 했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허장환 씨는 “도청을 은밀하게 진압하러 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저격병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헬기로 그 저격병을 저격하는 작전을 구상했다”며 “‘호버링 스탠스’(헬기가 한 자리에 멈춰 비행하는 것)에서 사격했다”고 증언했다.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지만원 씨 <사진=연합뉴스>
▲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지만원 씨 <사진=연합뉴스>


과제5. 5.18 망언, 어디까지 가나

지만원 씨 등 극우 논객들은 여전히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김용장 씨는 “600명의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왔다는 주장은 미 정보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얘기인데, 당시 한반도에서는 두 대의 위성이 북한과 광주를 집중 정찰하고 있었다”며 “북한에서 600명이 미국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일축했다.

자유한국당 김순례·이종명·김진태 의원은 지난 2월 열린 5.18 공청회에서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 “종북좌파들이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 등 망언을 해 논란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이종명 의원에 대해 ‘제명 조치’, 김순례 의원에 ‘당원권 3개월 정지’, 김진태 의원에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해 5.18 시민단체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규탄했다. 또한 5.18 망언 의원에 대해 국회 윤리특위가 진행되지 않는 등의 논란이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제39주년 5.18 기념식에서 이러한 망언에 대해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제6. 늦어지는 ‘진상규명위원회’ 출범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용장 씨 등의 증언에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그 사안에 대해서는 향후에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하게 되면 그때 관련되는 내용이 확인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출범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별법은 5.18 당시 민간인 학살, 인권침해, 시민에 대한 발포 경위와 책임자, 헬기 사격, 행방불명자 소재, 암매장지 소재와 유해발굴, 북한군 개입여부 등을 조사하기로 했다. 

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해 국회의장이 1명, 여당이 4명, 야당이 4명(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1명)씩 추천해 9명의 조사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결정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안종철 박사를, 더불어민주당은 송선태 전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 민병로 전남대 교수, 이성춘 송원대 교수, 이윤정 조선대 교수를 추천했다. 바른미래당은 오승용 전남대 교수를 추천했다.

하지만 한국당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한 극우논객 지만원 씨를 위원으로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에 김정현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제정신인가”라며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한국당은 지난 1월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 차기환 전 수원지법 판사를 뒤늦게 추천했다. 문 대통령은 이중 권 사무처장과 이 전 기자가 특별법상 조사위원의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임명을 거부했다.

특별법에는 ‘법조인, 교수, 법의학 전공자, 역사연구가, 인권활동과 등 분야에서 5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한다’고 요건을 밝히고 있다.

한국당은 재추천을 하지 않고 있고, 민주당이 추천한 이윤정 교수가 ‘피해당사자’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이윤정 조선대 교수 대신 서애련 변호사를 재추천했다. 

한국당도 지난 20일 조사위원 1명을 교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1명을 교체했다. 한국당도 1명을 교체해서 추천하려고 한다”며 권 사무처장을 교체할 뜻을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조사위원에 군 경력자를 포함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해 조사위원의 요건을 추가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당은 지난 15일 해당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홍영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조사위원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국회가 4월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얼어붙으면서 아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 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많다”며 정치권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출범을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핵심은 진상조사규명위원회를 설치하여 남겨진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라며 “정부는 특별법에 의한 진상조사 규명 위원회가 출범하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적극 지원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