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절충점’ 찾기 나섰지만 北 의도적 무시, 미중갈등 정세변화 北에 새 카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두 달 만은 6월 하순에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사진=청와대 페이스북]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두 달 만은 6월 하순에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 간의 힘겨루기가 석 달을 넘어서면서 북미대화의 동력도 소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에 북한에 공개적으로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도 감감 무소식이다.

오는 6월 28~29일 열리는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전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고 한미 양국이 5월16일 동시에 발표했지만 회담 전 원 포인트 남북정상회담 가능성도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이번 회담은 두 달 전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할 메시지를 준 4.11 워싱턴 정상회담의 후속 회담이다. 이 회담에 앞서 4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문 대통령이 트럼프 메시지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생각을 받아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하는 ‘문 대통령의 중재 프로세스’ 가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여전히 문 대통령 수중에 있다. 오히려 북한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오히려 남북한 간의 긴장을 조성하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5월에 들어 두 차례나 감행했다. 그러면서 미국에게는 ‘새로운 셈법’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판을 깨겠다고 엄포했고 한국에게는 ‘우리 민족끼리’ 원칙을 내세우며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 나서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셈법에 변화가 있다는 신호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지닌 트럼프 메시지의 내용을 보겠다고 섣불리 남북정상회담에 나섰다가 하노이에서와 같은 낭패를 또 당할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이 읽혀진다. 북한이 지난 4월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들 정도로 하노이 회담 결렬에 따른 내부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북한은 미국이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를 내놓는 ‘셈법’으로 협상장에 나오길 기대하면서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에게 핵 리스트 제출 등 선제적 조치가 없을 경우 대북 경제제재를 통한 압박을 누그러뜨리지 않겠다며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에서 6월 말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은 ‘비핵화 협상’의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협상 교착국면을 타개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정상회담 시점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1주년을 즈음이다.

특히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G20정상회의와 맞물려 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6자회담 당사국이 모이는 G20회의에서 어떤 형태로든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논의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6.12 회담 1주년, G20에서의 6자회담 당사국 정상의 연쇄 회동, 서울 한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외교 이벤트는 북미협상 교착국면을 타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북미협상의 모멘텀이 마련되느냐 또는 그렇지 않느냐는 ‘비핵화 협상판’이 유지되느냐, 아니면 깨지느냐의 기로이기도 하다.

韓 북미 ‘절충점’ 찾기 나서, 트럼프-김정은 북미대화 문 열어놓아

북미협상 교착을 풀기 위해선 하노이 회담 결렬 지점인 북한이 제기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른 상응조치’ 요구와 미국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에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 연말 안에 북미정상이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의 중재도 이 ‘절충점’ 찾기에 있다.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포괄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이란 해법을 제시해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 전에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괜찮은 합의)’이란 말로 미국의 ‘일괄타결’ 방식과 북한의 ‘단계적 방식의 비핵화’ 간의 접점 찾기에 들어갈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빅딜’을 담아낼 ‘포괄적 합의’가 깔려야 한다. 즉 북한이 핵무기·핵물질·핵시설 리스트를 내놓고 완전한 비핵화에 이르기까지의 일정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또 미국은 이에 맞춰 북한의 비핵화 실천에 따른 단계별 상응한 조치를 대응시켜야 한다. 이는 미국이 요구한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일괄타결’ 틀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포괄적 합의’보다 보도 더 어려운 것이 ‘첫 단추’를 어떻게 맞추느냐이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첫 단추’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유엔 대북제재 완화 상응조치’를 상정했으나 미국이 거부했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영변 핵시설 외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언급했다는 또 다른 핵시설 폐기를 제시해야 한다.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만으로 ‘첫 단추’를 맬 수는 없다.

무엇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를 내걸고 있다. 이는 프로세스의 문제다.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는 프로세스가 아닌 ‘장소’다. 프로세스로 보면 ‘핵물질 생산중단 → 핵시설 폐기 → 기존 핵물질과 핵무기 폐기’로 단계적인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하면서도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는데 소극적이다. 북한은 이를 자신이 가진 패를 내놓는 것이란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미국은 비핵화과정을 불투명하게 진행해 시간을 끌려는 것이라는 의심한다. 이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으로 이끌려는 한국정부의 중재방향과도 맞지 않다.

이처럼 북미 간의 상당한 이견이 존재함에도 양측은 ‘협상판’이 깨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5월 4일과 9일에 있은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에서 양측의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 북한은 두 번 다 자신들의 영해 내에서 진행했고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않았다.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해 밝혔다. 그리고 탄도미사일이라는 확인도 애매하게 흐지부지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신뢰관계’를 강조했다.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27일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관련 “북한 문제도 전진하고 있다”며 “북한은 오랜 기간 로켓을 발사하지 않았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간에는 (상호) 경의가 있다”는 말로 북한의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약속이 지켜지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도 존 볼턴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대해선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호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실무협상 재개 요청을 무시하고는 있지만 미국과의 협상의 문을 어떻게 다시 열지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노이 이후 ‘미중갈등-이란문제’ 등 국제정세 변화, 北에 새로운 카드

‘일괄타결’이냐 ‘단계적 방식’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비핵화 ‘셈법’을 두고 북미가 교착국면을 형성하는 동안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3개월 동안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정치적 환경의 변화는 더 두드러졌다.

국회 한미의회 외교포럼 소속 여야 의원들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서 본 미국 조야의 분위기를 보면 북한 핵문제 우선수위가 점차 밀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5월 19일 방미해 비건 대북특별대표를 비롯, 제임스 인호프(공화) 상원 군사위원장, CSGK(미 의회 한국연구모임) 소속 의원 등 의회 인사,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난 결과 북핵문제는 미중 무역갈등, 이란 문제 등에 비해 후순위로 밀렸다는 것이다.

포럼 의원들은 5월21일(현지시간)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비건 대표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 같은 비건 대표의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에 집중하면서 북핵은 뒷전으로 밀리고 시간에 쫓기는 심정을 표출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 의원들의 전언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최대 현안은 중국과의 무역갈등이다. 이것이 북핵문제보다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란 문제도 중동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미국의 안마당에서 벌어지는 베네수엘라 문제도 미국에게는 골칫덩어리다. 북한 핵문제에만 집중할 형편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문제는 여전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북한문제는 미중 무역갈등의 ‘변수(變數)’로 결부돼 있고 이란 핵 문제와도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조야에서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전언은 북미 교착국면의 빠른 해소가 필요하다는 요구로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하노이 결렬 이후 미국이 처한 국제적 현실에서 강경파인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입지가 약화된 부분이다. 결정적인 시점은 볼턴 보좌관이 밀어붙인 베네수엘라에서의 쿠데파 실패에서부터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서 긴장을 조성하던 볼턴 보좌관을 단속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북한 미사일 문제에서도 볼턴 보좌관은 5월25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곧바로 “북한이 ‘작은 무기(small weapons)’들을 발사해 내 사람들 일부를 불안하게 했지만, 나는 아니다”며 볼턴 보좌관의 말을 뒤집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이끈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의 입지가 최근 한 달 사이에 급격히 위축되는 모양새다. 북한을 제외한 거의 모든 외교현안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미 협상의 최대 동력원이 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게 계속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는 회담 재개의 청신호가 될 수 있다.

미중 무역갈등은 북한 핵문제의 ‘전략적 지위’도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 2차 북미정상회담 무렵에도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중국 배후론’을 거론하기도 했으나 이때는 ‘엄포’에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 북중 순치(脣齒)관계가 복원되는 흐름과 맞물려 미중 무역갈등 고조는 북한에게 운신의 폭을 넓히게끔 하고 있다.

중국이 공개적으로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해 북한과의 교역을 확대할 가능성은 낮지만 보이지 않는 무역통로를 열어놓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북중 국경무역은 밀무역 중심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은 북미협상에서의 ‘카드’를 더 챙길 수 있다.

아울러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북러정상회담도 가졌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의 입을 통해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도 얘기했다. 이른바 ‘새로운 길’의 가능성이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세계 분쟁지역에서 ‘미국 대 중국-러시아’ 대결구도가 형성된 상황과도 맞물린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실패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통한 ‘안전망’ 확보를 노릴 수도 있다.

文대통령 중재역할 험로, 北 정상회담 제안 무시 전략으로 일관

비핵화 협상 내용을 둘러싼 북미 간의 교착국면과 함께 국제정치 환경 변화까지 겹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은 험로에 쌓여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지점을 얻기 위해 북한이 한국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전략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후 김정은 위원장에게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6월 하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 비난과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한국정부를 압박하는 데만 여념이 없다.

문 대통령이 국내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을 무릎 쓰고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결정했음에도 남북한 간의 대화 창구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또 정부가 5월 17일 개성공단 입중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했지만 북한은 이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약화시키고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력을 강화해보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중 무역분쟁, 이란 사태, 베네수엘라 문제 등에서 비롯된 국제정치 상황의 힘입은 바도 크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한국 무시 전략’은 한계가 있다. 북한은 한국에게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 나서라고 하지만 한국은 이미 미국을 움직이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결국 북한이 미국과 협상하기 위해선 반드시 한국을 필요로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을 외면하는 것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깔린 듯하다. 그 ‘때’는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내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한미정상회담 전 남북정상회담을 갖길 기대했으나 무산되는 듯한 분위기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만나 먼저 하노이 회담 때처럼 자신의 ‘패’를 먼저 내놓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오는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이 절충해서 만든 ‘패’를 먼저 봐야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이를 본 후 4차 남북정상회담을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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