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일본 경제보복’ 원인 제공 ‘문재인 정부에 책임론’ 씌우기 시도
보수언론·한국당 “노무현정부도 ‘강제동원 피해배상 끝’ 결론” 주장
靑·與 “배상과 보상 차이도 몰라, 그런 결론 내린 적 없다…친일파라 불러야”

24일 오후 서울 수유재래시장에 일본제품 불매운동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 24일 오후 서울 수유재래시장에 일본제품 불매운동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까지 촉발된 가운데 한일 갈등 국면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8년 10월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지난 1일 경제보복 조치를 하면서 우리 정부는 대응책 마련에 골몰한 상황이다.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에서는 ‘한·일 협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개인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파기환송 판결이 나왔고 이후 2018년 10월 대법원은 그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보수 언론과 보수진영 정치인 사이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이 끝났음에도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하면서 일본에 신뢰 관계 훼손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여기다 일부 보수언론과 보수진영 정치인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 원인 제공 책임을 문재인 정부에 돌리기 위해 노무현 정부까지 소환하며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구성된 ‘한·일 회담 문서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에서도 이 부분을 인정했음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김명수 대법원’이 이를 뒤집어 이같은 한일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5년 1월 비공개였던 한·일 협정 문서가 공개된 이후 ‘민관공동위원회’를 발족시킨 바 있다. 당시 민관 공동위원회에는 국무총리였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위원장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여권은 보수진영 공격에 반박을 가하며 보수진영이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를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짜뉴스다” 등의 비판을 가하고 있다.

▲ 보수언론 “강제징용 배상 문제, 盧정부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 반영됐다 발표”
                  “개인 청구권, 65년 협정따라 행사 어렵다는 취지”
   심재철 “文정권이 뒤집은 강제징용 보상 문제, 자업자득”, 정미경도 동조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강제징용 보상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포함”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 공동委서 결론낸 사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일 관계를 ‘전후 최악’의 상태로 몰고 온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2005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민관 공동위원회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던 사안이다“고 보도했다.

이어 “당시 민관 공동위는 7개월여 동안 수만 쪽에 달하는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한·일 협정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자금 3억 달러에 강제징용 보상금이 포함됐다고 본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다만, 1975년 우리 정부가 피해자 보상을 하면서 강제 동원 부상자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도의적 차원에서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판단했으며, 이는 2007년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 예산으로 위로금과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치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민관공동위의 결론은 ‘1965년 협정 체결 당시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국가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 권리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며 “공동위는 강제징용과 관련해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고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지만 65년 협정에 따라 행사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대신 노무현 정부는 피해자 보상에 주력했다”며 “2007년 특별법으로 추가 보상 절차에 착수했고 2015년까지 징용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184억원이 지급됐다. 당시 발표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끝난 것이란 인식이 굳어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보도가 나온 같은 날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조선일보’ 보도와 똑같은 내용의 주장을 하며 “문재인 정권이 뒤집은 강제징용 보상 문제, 스스로 문제를 일으켰던 자업자득이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내용의 주장은 자유한국당 정미경 최고위원으로부터도 나왔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지난 3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와 지난 11일 ‘폴리뉴스’ 인터뷰에서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민관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고 지적하며 “한일협정 체결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라고 평가를 하고, 앞으로 일본이 아닌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보상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해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는’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헌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겠다”며 “결국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는 국가가 정당한 보상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소송으로 행사하는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겠다”며 “문재인 정권의 대법원에서는 이러한 결론을 싹 무시하고, 개인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일본 수출규제대책 특별위원회'에서 황교안 대표가 정진석 위원장, 신각수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4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일본 수출규제대책 특별위원회'에서 황교안 대표가 정진석 위원장, 신각수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당시 노무현정부 민관공동위 ‘보상’과 ‘배상’ 구분
   “청구권협정, 일본 식민지배 배상 청구 위한 것 아니었다”
   “일본에 배상 청구 가능”

보수진영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주장처럼 노무현 정부의 민관공동위원회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강제동원 문제가 정리됐고,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없어졌다고 봤을까.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단체들이 한일협정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따라 지난 2004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고 했고 문서가 공개되자 거센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당시 우리 정부가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을 소멸시키고 대가로 일본에서 돈을 받고도 이를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았다며 굴욕적 한일 협정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5년 3월 노무현 정부에서 민관공동위원회를 꾸린 것이다. 당시 민관공동위원회의 활동 내용과 결론은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활동 백서’와 보도자료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졌다.

여권은 보수진영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법학에서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의미인 ‘배상’(賠償)과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의미의 ‘보상’(補償)의 차이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민관공동위원회는 ‘보상’과 ‘배상’을 구분하고 있다. 민관공동위는 한일협정 협상 과정에서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전혀 논의하지 않았던 점 등에서 일본의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배상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일본으로 받은 무상 자금 3억 달러에는 피해자들의 임금, 개인 재산권 등 정치적 차원에서의 '보상'만 포함됐다는 것.

백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차원이 아니라 해방 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 25일 민관공동위원회의 보도자료에는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청구권협정 통해 일본에 받은 3억달러에 대해서는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한일 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보상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했으며, 이러한 요구가 양국 간 무상자금 산정에 반영됐다고 봐야 함”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한국당 인사들은 민관공동위원회가 한일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 행사는 어렵게 됐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민관공동위 자료에는 “우리 정부가 일본에 다시 법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곤란”하다고 지적하면서도 “피해자 개인들이 ‘강제동원은 일제의 불법적인 한반도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적 물질적 총체적 피해’라는 법적 논거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징용 피해배상을 거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靑 고민정 대변인 “盧정부 ‘청구권협정에 손해배상 포함’ 결론 낸 적 없어”
   조국 민정수석 “배상과 보상 차이 매우 중요, 무지하거나 알면서도 황당 주장”
                         “민관공동위, 한일협정엔 정치적 ‘보상’만, ‘배상’ 포함 안돼”
   민주당 김민석 “개인청구권 소멸됐다는 가짜뉴스, 아베 기관지냐”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진영의 이같은 주장에 적극 반박하며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적극 반박에 나섰다. 고민정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노무현 정부 당시 공동위에서 ‘강제동원 피해 관련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공동위는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 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ㆍ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강제 징용 배상)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며 “그리고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조 수석은 “법학에서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전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갚는 것이고, 후자는 ‘적법행위’로 발생한 손실을 갚는 것”이라며 “근래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이 점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알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흔들기 위하여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수석은 이어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는 받았지만,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받은 것은 아니고 당시에도 지금도 일본은 위안부, 강제징용 등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지난 2005년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받은 자금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포함돼 있을 뿐, 이들에 대한 ‘배상’은 포함돼 있지 않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다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안 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가능함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조 수석은 지난 2012년 대법원(제1부, 김능환 대법관 주심)이 ‘외교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해 신일본제철에 대한 배상의 길이 열린다며 “이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사법거래’ 대상이 되었으나, 2018년 확정된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은 지난 18일 특위 전체회의에서 보수언론을 향해 “‘아베 기관지’냐”며 “개인청구권 소멸됐다는 ‘가짜뉴스’ 생산을 넘어서 일본 극우 입맛에 맞게 일본어판 제목다는 창피한 작태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비판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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