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사진제공=연합뉴스>
▲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사진제공=연합뉴스>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동안 분단에 갇혀 살아왔다. 불행했던 분단의 역사 속에서 우리 사회에는 이념적 이분법이 고착되어왔다. 세상에는 ‘좌’ 아니면 ‘우’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득세했고,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사회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판단들은 오직 둘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고 만다.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 그 앞에서 인간의 다원적 사고는 설 곳이 없다. 개인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무시하고 모든 인간을 둘 가운데 하나로 나누려는 일방적인 시도는 본질상 폭력적이다. 그 폭력으로 인해 우리 현대사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박해받고 희생되었던가. 실제로 과거 독재정권들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로 활용했던 것이 이러한 이념적 이분법이었다.

그런데 때 아니게 또 다른 이분법 논란이 벌어졌다. 발단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격문들이다. 조 수석은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 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친일파’에 대한 규정도 내렸다.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조국 민정수석 페이스북 화면 캡처
▲ 조국 민정수석 페이스북 화면 캡처

아마도 조 수석이 비판하고자 했던 일차적 대상은 한일 갈등의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핀셋 비판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조 수석은 굳이 확전의 길을 택했다.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거나 정부의 소홀했음을 지적이라도 하면 모두가 친일파 소리를 듣고 이적행위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게 되었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외교적 해법으로 여러 대안들을 거론하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친일파 소리를 들을 판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들이 일본 정부 보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듯이, 전쟁을 치르는 조 수석의 총구도 우리 내부를 향해 있었다.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일본정부의 입장과 같은 것이고, 따라서 그런 사람은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익숙했던 논리이다. 북한이 했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하면 곧 북한의 입장을 따른 것이 되고, 그러한 사람들은 종북세력이 되어 단죄되곤 했었다. 북한이 일본으로 바뀌었을 뿐, 어떤 사람의 주장이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에 동조한 것으로 해석된다면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대법원 판결 당시 소수 의견을 냈던 대법관 2인도 친일파로 단죄되어야 마땅한 것 아니겠나.

조 수석은 일본을 향해 ‘적’이라는 표현을 공공연하게 썼다. 그러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정부의 의견과 조금이라도 다른 얘기를 하면 부역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 수석이 가리킨 친일파는 그 범위가 무척 넓게 되어버리고 만다. 정부와 일치된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모두 친일파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청와대가 싸우겠다고 하는 마당에 외교적 해결 운운하는 사람들은 일본 정부의 입장과 같은 친일파로 낙인찍히고 만다. 일본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전이 되어버리고 만다.

언젠가는 일본이 진짜 우리의 적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그 뇌관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라는 나라를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갈등하면서도 손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한일관계다. 이적행위라는 말은 그 관계의 복잡성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버리고 만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불명료한 글쓰기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흰 페이지는 희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이다. 만일 왕이 벌거벗었다면 벌거벗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하다.”

레비의 이러한 주문은 ‘과장되지 않은 글쓰기’를 하라는 의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표현하지 않고 자기의 주관적 감정이나 흥분에 따라 부풀려서 혹은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글쓰기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글은 진실을 담지 못한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레비는 다시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대해 한 단어 한 단어 책임져야 한다.”

조국 수석은 이제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그가 뿌린 친일파 낙인찍기의 후과는 두고두고 남을 전망이다. 이는 최근 친일파 낙인찍기가 번지고 있는 인터넷과 SNS에서의 실제 상황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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