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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흠 칼럼] 김대중 10주기 화두, 화해와 포용(1)

정권교체 - 청산, 개혁과 통합

 

지난 8월 18일 김대중 서거 10주기 추도사에 나선 정치인들이 김대중의 화해와 용서, 포용의 정치적 가치를 되새겼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비판해 온 정당인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는 더 적극적으로 김대중의 화해와 통합 정치를 칭송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화해·용서·화합·통합의 정치로 우리(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했다. 더불어 김대중의 집권시대에 ”정치보복은 없었다"고 현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알다시피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두고 자유한국당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항변해왔다.

민주화와 더불어 7개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중에는 집권 배경이나 성격에서 이전 정권을 청산의 대상으로 삼은 경우도 있고, 유사하거나 계승한 정권도 있다. 13대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부를 승계했으면서도 국회가 주도가 돼 전두환 정권시대를 심판하는 이른바 ‘5공청산’ 작업을 하게 됐다. 14대 김영삼 정부는 같은 민자당 내부의 재집권이었지만, 최초의 문민정부를 내걸고 군부정권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했다. 15대 김대중 정부는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해 정권 세력이 역전된 상황과 마주했다. 

김대중 정부의 집권여당 소속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16대 노무현 정부는 초기에 계승보다는 양김정치와의 차별성으로 출발했다. 17대 이명박 정부는 또 한 번의 여야 정권교체, 즉 정권 재교체를 했다. 18대 박근혜 정부는 이전의 이명박 정권 세력과 갈등은 심했지만 같은 한나라당 계열의 재집권이었다. 지금의 19대 문재인 대통령은 초유의 전 대통령 탄핵을 배경으로 집권했고, 스스로 촛불혁명 정부임을 내걸기도 했다.

이전 정권 시대의 문제에 대한 처리 방식은 두 정권의 성격뿐 아니라, 국정 운영의 철학, 정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정권을 계승했으면서도 5공청산을 하게 된 배경에는 여소야대의 정국과 민주화의 바람이 있었다. 대통령 권력은 계승되었지만, 국회권력은 여소야대로 교체에 더 비중이 실린 구조였다. 여기에 정권교체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으로 폭발했던 민주화의 에너지가 시대의 흐름에 자리하고 있었다. 국회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5공청산’ 작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노태우 정부 스스로도 이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뿌리가 같은 세력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남은 ‘5공청산’은 이후 김영삼 정부로 이어지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와 개혁을 내걸었다. 문민정부는 군부정권과의 연합이라는 정권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였다. 군부정권, 나아가 독재정권 시기의 문제를 개혁과제로 던졌다. 김영삼 정부, 하면 개혁, 그의 사투리 발음으로 당시 ‘개핵’이 유행할 정도였다. 군부정권 청산으로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를 해체했다. 사실상의 인적인 청산도 동반했다. 미완의 ‘5공청산’은 정권 중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5공 세력을 특별법을 통해 단죄했다. 독재정권 시기 적폐 청산으로는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수행했다. 

여기에는 경복궁 정문 허물기로 대표되는 친일잔재 청산도 동반했다. 고노 담화(1993년). 무라야마 담화(1995년)로 대표되듯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나오기도 했던 시기이다. 이 와중에 일본의 에토 다카미(江藤隆美) 총무 장관이  ‘한일합방으로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발언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며 강경하게 맞대응했다. 일본 측의 반발도 있었고, 이후 어업협정 개정 문제까지 겹치면서 한일 관계는 경색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군부정권의 위험 제거나 금융실명제 같은 개혁 조치는 상당한 성과를 보여줬다. 그러나 정권 말기 외환위기가 초래되면서 개혁의 성과에 대한 인식도 묻혔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김영삼 정부시기에 구속 수감되었으나 정권교체기에 사면했다. 대일 관계에서는 실용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경색된 대일 관계는 이후 김대중 정부의 과제가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야의 정권교체 효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수장(水葬)과 사형 위기까지 갔던 독재정권에 대한 한이 남을 만했다. 그러나 그는 보복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를 말했다. 그게 평화와 통합의 길이라고 했다. 음모조작으로 사형선고까지 받게 했던 전두환 등에 대해서는 인수위 기간 동안에 김영삼 대통령과 상의해 사면조치를 했다. 박정희의 정적으로 간주돼 대한해협에서 바다에 수장 당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재임 중 박정희 기념관 사업을 지원하기도 했다. 퇴임 후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찾아와 대신하는 사과를 받아 주며 화해하기도 했다. 

2004년 8월 12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찾아와 사과했을 때의 심정을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 고 했다.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하여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은 것 같았다"고 했다.

당시의 정책도 포용 노선이었다. 김대중의 포용정책은 ‘햇볕정책’으로 불렸던 대북정책 뿐 아니라 국내정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연합이었던 ‘DJP’연합정권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 스스로가 이념 관련 분야에 보수 진영 출신을 기용해 우군으로 만들었다. 연합정권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종필과 자민련은 주로 경제 분야를 맡았다. 이념과 관련된 통일부 등의 장관에 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 출신인 강인덕, 보수 진영 출신의 박재규 등을 기용했다. 초대 국정원장에도 전두환 정부 시절에 군부정권에 있다가 이후 김대중에 합류한 이종찬을 기용했다. (이어짐)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슈] 文대통령 지지율 출렁임에도 40%방어선, 내년 보선 앞둔 野에 부담
[폴리뉴스 정찬 기자] 민주주의는 민심(民心)을 두고 다투는 내전(內戰)의 제도화다. 중국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권력은 ‘민주적 투표’에 의해 창출되며 ‘투표로 선출된 권력’만이 정당성을 지닌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은 이를 단정적으로 규정했다. ‘민심’을 동원하는 ‘선거’가 권력구축의 유일한 방식이며 이를 통하지 않은 권력은 ‘쿠데타(국가에 대한 일격 강타)’로 정당성이 없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에 ‘선거’를 무력화하거나 개입하려는 행위가 일어나고 정치선동과 조작에 기반한 우중(愚衆)정치도 기승을 부리지만 ‘금품·허위정보’를 배격하려는 선거제도 개선, 정당정치의 꾸준한 발전, 다양한 방식의 정치공론 활성화, 2000년대 이후 인터넷·모바일을 통한 대중의 정치참여 강화 등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선거의 일상화와 따른 민주주의의 발전은 정보통신기술(IT) 발전에 힘입어 진영 간의 내전을 선거 국면뿐 아니라 일상으로까지 확대했다. 선거 때가 아니라도 민심을 얻기 위한 정치공방은 언론


[스페셜 인터뷰] 이재갑 교수① “코로나, 전국 단위 대규모 발병하면 아수라장 될 것…추석 고향 방문 자제해야”
“추석 직전 2주가 중요하다. 확진자 수를 낮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국으로 확산되면 추석 이후의 상황은 광화문 때보다 훨씬 더 엄청날 수 있다. 고향 방문 자제해야 되고, 지금 방역을 철저히 해서 지역사회에 숨어있는 감염자 숫자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지난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후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호평한 K방역으로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진정되는 듯 했으나, 8.15 광화문집회를 전후해 재확산 되며 현재 2차 유행 중이다. <폴리뉴스>는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2단계로 완화된 직후인 9월 15일,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외래진료실에서'대한민국 코로나 커뮤니케이터'로 알려진 이재갑 감염내과 교수를 만났다. 먼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조치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이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 고려할 게 많았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2.5단계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상공인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정부가 단계 완화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감염병 전문가로서는 상당히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아예 처음부터 2단계로 올리고, 2단계로


北, 청와대에 통지문...김정은 “文대통령과 남한 국민에 큰 실망감 줘 미안하게 생각”
[폴리뉴스 정찬 기자] 북한은 25일 청와대에 통지문을 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하면서 우리 국민에 대한 총격은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이라고 했고 시신 훼손은 없었고 부유물을 “방역규정”에 따라 불태웠다고 주장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5일 오후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가 ‘청와대 앞’으로 보낸 통지문을 공개했다. 노동당 중앙위 통일전선부는 김정은 위원장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이 관장하고 있다. 북한이 이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청와대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지 하루 만에 통지문을 보내 유감을 표현한 것은 이례적이다. 서 실장이 전한 통지문에 따르면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비루스 병마의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며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귀측의 정확한 이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측은 이번 사건 경위에 대해 “우리 측 해당 수역 경비 담당 군부대가 어로작업 중에 있던 우리 수산사업소 부업선으로부터 정체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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