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열린 북미 실무협상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열린 북미 실무협상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1. 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북미 비핵화 협상이 위기를 맞았다. 북미 간 스톡홀름 실무협상은(10.5 현지시간) ‘노딜'로 끝났다. 북한과 미국이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스톡홀름에서 만났지만, 또 다시 빈손으로 돌아섰다. 비핵화 협상이 중대 기로에 섰다. 

어느 쪽이 협상 결렬의 책임이 있는가? 북측 실무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문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협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미국은 그동안 유연한 접근법과 새로운 방법, 창발적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하였으나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으며,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협상 의욕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미국 측에) 연말까지 더 숙고해 볼 것을 권고했다”고 말해 재협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협상 결렬에 대한 미국 측의 반응은 다르다. 미 국무부는 실무협상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creative ideas)’을 가져갔다고 하면서,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2018.6.12)의 네 기둥 각각에서 진전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새로운 계획들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김 대사의 성명 전문을 살펴보면 북한은 미국 측의 양보 가능성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졌던 사실을 드러냈던 반면, 비핵화 조치에 대한 북한 측의 입장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영변 핵시설 폐쇄’를 협상 카드로 내놓았던 하노이 방침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 모습이다. 평양 협상 팀은 그들이 줄곧 주장해온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 즉, 핵 억지력 협상 전에 체제안전의 ‘생존권’과 제재해제의 ‘발전권’ 보장의 기대 속에 스톡홀름 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편 미국 측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 제시를 강조했다. 이는 비핵화 정의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가 이루어지고 하노이 제안인 ‘영변 + α(알파)’ 등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에 따라 연락사무소 개설, 안전보장 조치, 석탄․섬유 수출 제재 유예 등 일부 제재 완화가 상응조치로 제시됐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이미 그들이 비핵화 선(先) 조치를 충분히 취했기에, 이제는 미국이 합당한 상응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명길 대사는 협상 결렬 성명에서 이러한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는 “핵 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 발사 중지, 북부 핵 시험장의 폐기, 미군 유골 송환과 같이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과 신뢰 구축 조치들에 미국이 성의 있게 화답하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은 스톡홀름 실무협상을 그들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화답을 듣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는 입장이다.
 
2. 왜 결렬되고 말았는가?

우선 북․미 양측의 상호 불신 속에 전략적 목표가 전혀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협상은 처음부터 겉돌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한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양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합의(새로운 관계 구축, 조선(한)반도 평화체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미군 유해 송환)의 이행을 미국에 촉구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해 미국이 화답해야 할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즉, ‘적대시 정책 철회’ 사안은 다음과 같다. 이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동맹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금지, ▽한미연합군사훈련 완전 중지 등을 포괄한다. 사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존재 거부, 즉 미군의 완전한 축출을 의미한다. 중국에게는 이러한 북한이 고맙기 그지없다. 북한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그들의 요구인 미국의 축출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 그때 가서 비핵화 문제를 한 번 쯤 생각해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 폐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는 북한의 절대 불변의 입장이다. 핵은 한반도 통일의 보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금번 스톡홀름 실무협상에서 싱가포르와 하노이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그러나 북한은 싱가포르 합의의 재현, 즉 두 번째 버전을 기대했다. 평양은 싱가포르의 ‘황홀한 추억’에 젖어 ‘노딜’로 끝난 하노이 참사(2019.2.28)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로 미국 조야의 냉소와 거센 비판을 받은 반면, 하노이 ‘노딜’은 민주당조차 환영하는 가운데 미국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트럼프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평양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 가도에서 외교적 성과 과시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와 상관없이 북미 정상회담 이벤트를 반드시 펼칠 것이라고 확신했다. 평양 수뇌부는 ‘늙다리(dotard)’ 트럼프가 대통령 재선 야욕 달성을 위해 ‘세기적 타협’인 (싱가포르 재판 형태의) 북미 정상회담의 끈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사태를 낙관했을 수도 있다.

때마침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질(9.10 현지시간)은 북한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강경파 볼턴 해임이 무척 고무적인 분위기로 다가왔다. 더욱이 경질 과정에서 트럼프가 ‘새로운 방법(a new method)’을 얘기하자 기대감이 한층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미 언론은 볼턴이 북핵 문제보다는 국방안보 사안을 재선에 활용하려는 백악관 내 정치적 충성파들과의 충돌로 해임되었다고 하면서,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한 탈레반과의 협상 거부 때문이라고들 얘기한다. 북한 비핵화 방식에서 볼턴의 ‘리비아 모델’(선 핵폐기, 후 보상)이 해임 사유라기보다는 미국의 대외전략과 안보 문제에서 정략적 접근을 완강히 거부해온 볼턴이 결국 트럼프와 그의 충성파들에게 당했다는 말이다. 미국의 대외전략의 핵심 사안인 이란, 러시아, 중동, 아프간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의혹’에서도 정통 안보 라인과 정치적 충성파 간 암투의 결과로 보인다.

트럼프는 유태계 보수와 네오콘 그리고 공화당 중진 그룹 등을 의식해서 볼턴의 ‘리비아 식 방법’을 해임 구실로 삼았지만 그런 와중에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새로운 방법’이니 하는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을 뿐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볼턴 해임이나 ‘새로운 방법’이니 하는 말은 북한 비핵화 협상과는 본질적인 관련성이 크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촉발시켰고, 김명길 대사가 실토했듯이, “유연한 접근과 새로운 방법,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평양의 판단 착오를 스스로 드러낸 장면이다.

평양은 트럼프의 야욕을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다리’의 신상 변화 혹은 변심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만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문제가 불거졌다. 평양은 당황했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장 6자회담 북측 단장을 역임한 김계관이 등장했다. 그는 외무성 고문 직책으로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그의 전임자들과는 다른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과 용단에 기대를 걸고 싶다”는 입장을 내비쳤다(9.27 한반도 시간). 이 담화는 미리 준비된 것일 수 있지만, 트럼프의 ‘탄핵조사 개시’ 보도(24일 미국 시간=한국 시간 25일 오전 국내 보도)로 탄핵 절차에 돌입하자 거의 하루 만에 나왔다.

북미 협상이 탄핵정국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이에 이미 뒷자리로 물러난 김계관이 나서서 트럼프에 대한 기대를 적극 표명했다. 탄핵정국의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북미 협상 자체가 표류하거나 협상 구도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지도 모른다. 이렇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탄핵정국이 그야말로 ‘다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 된다. 평양은 하원의장 펠로시(Nancy Pelosi)의 탄핵 절차 시동에 크게 놀랐다. 김계관 담화는 탄핵 절차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전에 큰 틀에서 협상을 수용해 줄 것을 바라면서 트럼프의 ‘용단’에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은 미국 측의 소극적인 입장도 한몫했다. 미국 입장에서 협상 결렬은 결코 놀랍거나 실망스럽다고 볼 수는 없으며,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요 몇 달 사이 북미 협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6월 말 트럼프-김정은의 DMZ ‘깜짝 회동’(6.30)은 정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거래의 달인’이라는 트럼프의 노회한 협상술의 발휘였을 뿐이다. 이는 사실상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첫 방북(6.20)에 대한 트럼프 식 맞불전략으로 이해된다. DMZ ‘깜작 회동’으로 베이징으로 기울 수 있는 김 위원장을 다시 중간쯤으로 잡아당겨 놓았다. 여기서 트럼프는 또다시 특유의 ‘립 서비스’를 보탰고, 김 위원장은 어깨를 한껏 추스르게 되었다. 그날 이후 트럼프는 북미 협상 문제를 저 멀리 밀쳐놓았다.
 
트럼프는 UN 연설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문제를 파고들지 않았다. 다만 북한 비핵화는 북한의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는 말을 재탕했을 뿐이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 북핵 카드를 활용한다면, 협상 콘텐츠 못지않게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내년 후반기 선거일에 상당히 근접한 시기에 북미 정상회담 이벤트를 펼치는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다. 아마 트럼프는 미국의 대외전략의 성과로 이란과의 협상,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 그 다음 마침내 ‘세계 평화’를 이루어냈다는 위업 과시로 북․미 정상회담을 순차적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이런 계산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금년 내 비핵화 협상을 서둘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탄핵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말았다. 펠로시가 마침내 ‘탄핵 조사’ 선언으로 칼을 빼들었다. 탄핵정국의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문제 대응 이외에 어떠한 사안에도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다. 과연 북한 비핵화 협상이 탄핵정국을 뒤집고 탄핵 국면을 완전히 전환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사안일까? 그동안 평양은 안타깝게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트럼프에 대한 기대, 그의 용단에 집착했다.  
  
금번 북미 협상은 평양 측의 불합리한 기대와 잘못된 정세 판단 등이 결렬 요인으로 작용했다. 두 측면에서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하나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양은 트럼프의 특유한 개성과 외교성과 과시 야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며, ’핵 무력‘을 완성한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는 상대방의 타산과 의도 그리고 노회한 대응 등을 정확히 읽지 못한 자기중심적 논리에 따른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물론 트럼프는 미국의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대외전략의 궤도에서 벗어난 언행으로 세계를 무척 놀라게 했다. 트럼프의 행보와 발언은 매우 불안하고 신뢰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동맹국들은 ’트럼프 리스크‘를 신중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평양은 국가의 전략적 이익과 개인의 정치적 야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트럼프를 ’말아 먹을‘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보듯이 트럼프는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야욕을 앞세우는 등 국정 최고 책임자의 지위에 아주 부적절한 사람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트럼프의 정치적 야욕의 셈법이 평양의 계산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트럼프는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할 수는 있어도, 결코 남에게 호락호락 속아서 손해 볼 위인이 아니다. ’트럼프와 함께 댄스‘는 환상적 희망에 그칠 뿐이다.

  또 다른 한계로 북한 정책결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북한은 수령체제 국가이다. 수령은 실수와 잘못이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무오류(infallibility)’의 존재이다. 서양사에서 무오류적 존재는 한 때 교황에게만 해당된 용어였다. 무오류적 ‘최고 존엄=수령’의 전략적 방침에 어떠한 수정도 있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시진핑, 푸틴 등 제국의 황제급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자고자대(自高自大)’한 수령 앞에 어느 누가 감히 대미 협상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대미 협상의 주도권이 통전부에서 외무성으로 넘어갔다고 하나 협상의 자율성은 고사하고 내부 토론조차도 있을 수 없는 구조에서 어떠한 의견도 나올 수 없다. 북한 내에서는 수령에게 조언은커녕 조그만 아이디어조차 낼 수 없으며, 아무도 그러한 시도를 꿈도 꾸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로지 김 위원장 혼자서 정세를 판단하고 대미 전략을 수립하고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누가 수령에게 정세 분석과 함께 대응전략에 대해 조언할 수 있을까? 평양에는 없다. 북측 실무협상 팀은 이미 정해진 방침 이외에 어떠한 얘기도 꺼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김 위원장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 주위에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조언 그룹의 존재와 역할이 필요하다.  

3. 북미 협상 어디로 가는가?

스톡홀름 결렬 속에 탄핵정국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비핵화 협상의 앞길은 험난하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 첫 번째는 연말연초의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합의 시나리오이다. 이는 정상회담 이벤트로 탄핵정국의 국면 전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 평양이 학수고대하는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환영할 만한 합의 내용이 도출되어야 가능하다. 싱가포르 합의의 재탕 수준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셈법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진전되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 더욱이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로 이 시나리오의 전망은 어둡다.

② 두 번째는 ‘협상 중단’ 시나리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적 지지와 인기를 얻는 방식으로 오히려 ‘협상 중단’을 선언할 수도 있다. 이는 하노이 교훈으로 ‘나쁜 딜(Bad Deal)’ 보다 ‘노딜(No Deal)’이 환영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전제한다. 하노이 노딜은 트럼프 지지세력 뿐만 아니라 민주당원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이 경우 한반도 위기 국면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선제공격설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 속에 ‘말 폭탄’이 쏟아지게 된다. 트럼프는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정치적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다.

③ 세 번째는 협상이 마냥 표류하는 시나리오이다. 탄핵정국에 대응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절박한 정치적 입장에서 북미협상 문제 자체를 검토할 여지가 없을 수 있다. 탄핵정국이 끝날 때까지 북미협상은 트럼프의 적극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고 마냥 표류하는 사안이 될 수 있다. 평양은 초조하지만 또 다시 대미 도발 카드를 꺼내들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두 가지 카드는 핵실험과 ICBM 시험 발사인데, 핵 실험은 중국의 인내의 한계를 넘게 된다.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는 중국의 압박에 따른 조치였다는 지적도 있다. 핵 환경오염에 큰 두려움을 가진 중국 동북 지역의 반발이 문제였다. 일본 열도를 넘기는 중거리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를 감행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힘들다. ICBM 시험 발사는 트럼프가 기다리는 카드일 수 있다. 국내정치적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호기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양의 계산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평양은 오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노이 ‘노딜’과 스톡홀름 결렬은 평양의 잘못된 정세 인식과 오판의 결과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에 목말라 굉장한 유연성을 발휘해 그들의 제안을 수용하는 큰 양보를 할 것으로 믿었다. 평양은 매우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은 대통령의 권능과 미국 정치제도의 틈새를 노리고 있는데, 미국의 정치제도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을 대통령 트럼프에게서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점이 무척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정국을 스스로 초래했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재선을 위한 개인의 정치적 야욕이 미국의 정치제도 즉, 정부의 제도화된 대외전략과 국가안보의 소명의식 속에서 일해 온 안보담당 그룹의 거부로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이벤트를 트럼프 개인의 재선을 위한 정략적 발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만만찮다. 그렇다면 탄핵정국에서 트럼프는 재선 카드로 북미협상을 활용하는데 매우 신중하지 않을 수 없으며,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북한 판’으로 인식되는 북한 비핵화 협상 문제가 미국 정치제도의 벽을 쉽게 뛰어넘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제도보다는 대통령 트럼프가 정책 결정의 핵심(Key)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매우 불합리한 ‘희망적 사고’에 그칠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 북미 제3차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물론 트럼프는 탄핵국면을 모면하거나 재선 카드로 '야바위' 게임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야바위는 매우 위험하며 성공할 것 같지 않다. 평양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느냐, 아니면 허망한 물거품이 되고 마느냐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이야말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구축으로 가는 길이다. 워싱턴과 함께 평양도 연말까지 ‘좀 더 숙고’ 할 필요가 있다.

조민 통일연구원 석좌 연구위원,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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