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는 미국, 日 수출규제에 방관하다 韓 ‘지소미아 종료’에 한·일 동시 압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IMIA) 종료는 일본의 태도변화가 전제돼야 철회할 수 있는 사안임을 강조했다.[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IMIA) 종료는 일본의 태도변화가 전제돼야 철회할 수 있는 사안임을 강조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협정을 종료 6시간을 앞두고 일본과의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대화 조건부로 유예했다. 이제부터 ‘칼집’에 든 한국의 ‘지소미아 카드’가 일본이 뺀 ‘수출규제’의 칼을 제어할 지 여부가 주목거리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2차장은 11월 22일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최근 양국 간의 현안 해결을 위해 각각 자국이 취할 조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면서 “우리 정부는 언제든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 통보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하였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한일 간 수출 관리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일본 정부와의 조율 끝에 나온 간략한 브리핑이었지만 많은 함축성을 내포했다. 

일본 경제산업성도 동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3개 품목은 계속 개별 심사를 한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계속 유효하다”는 기본입장을 나타내면서도 “(불화수소 등 3개) 개별 품목에서 한일이 건전한 수출 실적을 쌓고, 한국 측이 적절하게 운용하면 (수출 규제조치를) 수정 검토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한국 정부의 WTO 제소절차 중단 결정을 명분으로 추후 국장급 대화에 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가 일본과의 무역 대화 조건부임을 명확히 했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대화 요구를 거부해왔던 만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조치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다 요이치 경산성 무역관리부장(국장급)은 회견에서 “이번 발표는 한일 지소미아와는 전혀 별개”라고 했지만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 재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상대국의 관리체계를 봐가며 부단히 수정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다시 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일본이 수출규제조치를 놓고 한국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7월 1일 이후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해온 기본방침을 철회한 것은 분명하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도 수출규제와는 별개라며 한국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 효력 발생 하루 전에 무역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 내용적으로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별개라는 기존의 원칙에서 물러선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WTO제소 정지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지소미아와 연계된 사안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교에서 일방적인 승자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으로선 ‘지소미아 유예’를 얻었고 한국은 ‘한일 무역 대화’를 통한 수출규제조치 철회의 장을 획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남은 초점은 한일 간의 무역협상을 통해 어떤 식으로 한일이 외교적 해법을 마련해낼 지 여부로 모아지게 됐다.

공은 일본에 넘어가, ‘수출규제조치’에 대한 日선택이 지소미아 향배도 결정

향후 외교적 해결과정을 전망하면 한국이 ‘지소미아 카드’를 여전히 칼집에 넣어두고 언제든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유리해 보인다. 반면 일본은 4개월 전에 ‘빼서 휘두른 칼’인 수출규제조치를 변경을 가해야 한다. 즉 공은 일본에 넘어가 있고 일본의 선택에 따라 지소미야 효력 발생도 연계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소미아 효력 유예 결정에 대해 “일본의 우리에 대한 수출규제조치 해결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은 잠정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정지한다는 것”이라며 “우린 언제라도 이 문서 효력을 다시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액티베이트(ACTIVATE)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하고 있다. 이 경우 지소미아는 그날자로 다시 종료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단히 설명하면 7월 1일 이전 상황으로 복귀해야 한다. 화이트리스트에 한국 다시 포함시키고 3개 품목에 대한 임의 수출규제조치가 철회돼야 지소미아 연장과 WTO 제소를 철회할 수 있다”고 했다. 향후 진행될 한일 무역대화의 결과에 따라 지소미아 효력 발생 여부가 결정된다는 일본에 대한 압박이다.

나아가 이 관계자는 “현재 상황의 근본 원인은 일본이 제공한 것으로 일본이 초래했다”면서 “불가피하게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은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존 입장”이라고 했다. 일본이 지난 4개월 간 ‘자신이 휘두른 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다.

한일 양국이 각자 자국의 입장에서 체면을 세우기 위한 브리핑을 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결과를 보면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소미아와 연계해 무역대화를 받아들였고 이 무역대화의 결론에 따라 지소미아의 향배가 결정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배후는 미국, 日 수출규제에 방관하다 韓 ‘지소미아 종료’에 한·일 동시 압박

과정을 복기하면 미국의 역할이 눈에 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번 결정과정과 관련 “(11월 4일 태국서) 대통령께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직접 접견했다. 또 15일에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접견해 기본 입장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이러한 대통령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께 전달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러한 설명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철회 없이는 지소미아 종료는 불가피하다는 문 대통령의 입장을 미국이 받아들여 일본의 태도변화를 이끌었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다. 실제 미 국무부 데이비드 스틸웰 동아태 차관보와 존 설리번 부장관이 지난 19일부터 일본에 머물며 비공개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이 일본만 압박한 것이 아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관리, 합참의장 등이 한일 방위비 협상 직전 한국 정부를 향해 ‘지소미아 압박’을 강도 높게 했다. 그리고 미 상원의회는 21일(현지시간) ‘지소미아 연장 촉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일 양국 정부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애초 일본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관여 않는다는 스탠스를 보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중재 역할을 기대했으나 난망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안보상 국익이 걸린 지소미아 문제로 넘어가자 한국을 압박하면서도 일본에 대한 태도도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애초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을 때 미국이 나설 것으로 예상했고 미국이 한국을 굴복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완강하게 일본의 선행조치를 요구하면서 미국은 일본을 동시에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한일 정부 발표의 배후에는 미국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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