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IBK기업은행의 정체성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은행 노동조합이 충돌했다. ‘국책은행’과 ‘상장회사’라는 시각이 갈려서다. 지난 3일 취임한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은 노조 반발에 부딪혀 12일째 출근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관료 출신인 윤 행장에 대해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고 단호히 밝혔다.

그는 “과거 민간금융기관, 민간은행장 인사에 정부가 사실상 개입을 했기 때문에 낙하산이라고 했었다”며 “(하지만) 기업은행은 정부가 출자한 국책은행이고 정책금융기관이므로 인사권이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판단할 때) 변화가 필요하면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이고, 안정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발탁하는 것”이라며 기업은행장 인선에 대한 시각을 내비쳤다.

반면 같은 날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성명서에서 “문 대통령이 기업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 지분 53.2%를 제외한 46.8%의 지분을 외국인 주주를 포함한 일반 주주들이 가지고 있는 상장회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행이 지원하는 여신은 시중은행들도 같은 구조로 지원하고 있다”며 “국책은행보다는 시중은행 성격이 더 강한 곳이 기업은행”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은 기업은행에 대한 청와대와 은행 내부의 시각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윤 행장에 대한 청와대와 은행 노조의 평가가 “정부의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로 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기업은행 지분은 현재 기재부가 53.24%, 국민연금공단이 7.91%,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1.82%와 1.47%, 우리사주조합이 0.16%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35.4%는 외국인 주주 등의 소유다.

즉 정부와 국책은행의 보유 지분이 절반을 넘긴 점(국책은행)과 외국인 주주 등 일반 주주의 지분이 상당수 있는 점(상장회사)이 충돌하는 셈이다.

또 중소기업은행법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금융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국책 특수은행이 맞다. 같은 법 제26조엔 기업은행장을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로비에서 노조원들이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 로비에서 노조원들이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기업은행이 시중은행과 영업경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시중은행들은 저마다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대출 영업 확대를 꾀하고 있다. 중소기업금융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은행도 기존 고객유지에 적극 나선 상태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윤 행장이 “은행업과 금융업 근무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므로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윤 행장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 경제정책 전반을 담당한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은행업과 금융업에서 종사한 이력은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은 “윤 행장이 경제 금융 분야에 종사해 왔고, 경제 수석과 IMF 상임이사를 했으므로 경력 면에서 미달되지 않는다”며 “(노조에 대해)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발언은 ‘외부 관료 출신 행장은 은행 현장을 잘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윤 행장의 임명을 반대해 온 기업은행 노조의 입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임명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김 위원장은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것이지 내부인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사실상 노조가 내부 승진 행장을 원하는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퇴임한 김도진 행장을 비롯해 기업은행장은 지난 2010년 이후 세 차례 연속 내부 출신이 맡아 왔다. 첫 내부 승진 인사인 조준희 행장 임명 당시 기업은행 노조는 “금융시장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췄다”며 환영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내부 출신 행장이 은행 내 줄서기나 코드 인사 등 폐단을 부르고, 노조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 동의서를 강요했던 권선주 전 행장처럼 정부 신임을 얻기 위해 무리한 행보를 보인 사례가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다.

한편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출근저지 투쟁 및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총파업의 경우 은행장 인사 반대만으론 불가하고 임금단체협상 등을 통해야 한다. 이에 일각에선 노조가 임금이나 처우 등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신임 행장을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비슷한 사례로 최근 관료 출신이었던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의 경우 임명 반대 투쟁을 선언한 노조와 협의 끝에 임금협상, 직원처우 문제 등의 건의를 수용하고 정상 출근에 성공한 바 있다.

또 기업은행 노조는 과거 내부 출신 행장인 권선주, 김도진 행장 임명도 반대했었다. 친정부적 모습을 보였다거나, 부정청탁 의혹이 있다는 이유였다.

때문에 금융권에선 노조가 연례행사처럼 신임 행장에게 실력행사를 하는 것인지, 정부가 낙하산 인사로 관치금융을 재현한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윤 행장은 취임 이후 이날까지 종로구 금융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지난 13일엔 중구 은행연합회 뱅커스클럽에서 은행 임원 전원과 새해 첫 경영현안점검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윤 행장은 경영혁신을 강조하며 ‘혁신 추진 TF’ 신설을 지시했다. 또 미국과 이란 갈등 등 국제 이슈가 국내 경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시행에 따른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고위험 금융상품에 대한 불완전 판매 대책 등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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