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체제 우위가 낳은 결과, 北風 진보세력 호재 전환, ‘야당심판론 vs 정권심판론’ 대치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집권 후반기를 이끌 신임 정세균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1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집권 후반기를 이끌 신임 정세균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한국정치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이념’이다. 이는 국가가 나아갈 외교안보와 경제운용의 지향점이다. 한국의 이념은 해방 후 남북분단과 6.25전쟁에 의해 규정됐다.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 반북한이 그것이다.

역대 선거에서 ‘레드 콤플렉스’는 기본상수였다. 1987년 민주화, 1990년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에도 반공·반북이데올로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10.4선언으로 영향력이 약화됐다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종북-반북프레임’은 보수세력의 전가의 보도였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으로 그 근저가 흔들렸고 2018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반북대결 프레임’은 약화됐다. 이는 반북정서가 약화됐다기보다는 남북 체제경쟁에서 남한의 승리가 일반 국민들에게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2018년 9월 18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남북 간 체제경쟁에 대한 사실상의 종언으로 봐도 무방했다.

2040세대의 탈이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 이러한 경향은 20대와 30대에서 더 강하다. 이들은 통일을 이전 세대와 달리 현실적인 잣대로 바라본다. 개인의 가치와 미래를 우선시하는 심지어 1인 독재체제의 북한에 대한 혐오정서까지 있다. 50대 이상의 반북정서가 ‘콤플렉스’와 ‘두려움’에 기반한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들의 보수성향은 개인주의와 시장친화성에 바탕을 뒀다. 이들에게 ‘공정’가치는 ‘시장경쟁’의 틀 속에 있고 ‘복지’와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이들에게 미래 불안감을 가중시킨데 그 원인이 있다. 기성세대는 과거 성장의 과실을 향유하겠지만 자신들의 미래는 희생당할 것이라는 심리가 강하다. 이들에게 민주당의 ‘수구적폐 청산’이나 한국당의 ‘종북-좌파 독재’ 주장은 식상한 프레임이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과거 선거에서 위력을 떨쳤던 기존의 이념구도도 변화하고 있다. ‘반공-반북 콤플렉스’가 걷힌 공간을 점차 ‘시장’과 ‘차별정서’가 치고 들어오는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보인 ‘소득주도성장 대 혁신성장’의 대립은 ‘시장’을 둘러싼 갈등이다. 

무엇보다 진보적 가치를 상징하는 ‘연대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 도시서민 간의 ‘연대’의 고리는 ‘시장’의 다양한 공격 앞에 무기력한 양상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고착화에서 보듯이 계급·계층 내부의 ‘연대’도 흔들리고 있다. 이중구조와 격차는 대·중소기업, 노동시장 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역에 확산돼 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을과 을 간의 전쟁’은 한국사회의 기본 구성요소가 됐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정서를 강화시켜 왔다. 약자들을 갖가지 벌레(충)로 통칭해 온지 오래다. 이것이 젊은 층의 보수화와 연결돼 있다. 

젊은 층을 주머니 속의 표로 생각했던 민주당이나 정의당에게는 위기다. 이들은 진영 내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 등 기득권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공허하게 ‘연대와 차별 철폐’를 외친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한국당 등 기존 보수야당도 이들의 지지를 담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낡은 ‘반북-반공 이데올로기’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北風은 진보세력의 호재로 넘어가, 보수야당의 ‘반북대결노선’ 집착도 원인  

그러면서 과거 보수진영의 전유물이었던 ‘북풍(北風)’은 진보세력에게 호재로 넘어갔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가 4.27 판문점 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영향권에 놓였던 것은 그 전환점의 서곡이었다.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면 집권세력에 유리한 선거지형이 펼쳐지는 상황이다.

4.15총선도 마찬가지다. 3차 북미정상회담, 남북교류 확대 등이 이뤄질 개연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총선 전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차 미중 무역합의처럼 북미협상에서 낮은 단계의 합의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고 남북협력사업의 길도 열릴 수 있다. 다만 북한이 핵실험을 재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경우 북풍은 여권에게 역풍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 변수’가 여권에게 유리한 선거지형을 제공하는 상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선점한 ‘한반도 평화경제’ 헤게모니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당 등 보수세력이 ‘반북 대결노선’에 집착하면 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도기적인 이념적 혼재상황은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 이슈로 폭발하는 조건이 됐다. 4.15 총선을 앞두고 이념구도는 명확한 그림 없이 ‘국정안정론 대 정권심판론’의 선거프레임에 완전히 빨려 들어간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월 23일 서울역에서 귀성객에게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월 23일 서울역에서 귀성객에게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야당 심판론 vs 정권 심판론’ 대치, ‘검찰개혁 대 검찰장악’이 가장자리에 위치

4.15 총선에서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상황이다. 정치, 외교·안보, 민생·경제, 사회·문화 모든 정책영역에서 문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찬반으로 진영이 갈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진영이 갈리는 전선의 가장자리에 ‘검찰개혁 대 검찰장악’ 프레임이 존재한다. 그 바탕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공언한 ‘진보세력 20년 집권론’이 있다. ‘박근혜 탄핵’으로 잠깐 권력을 내준 것으로 생각한 보수진영의 위기감이 ‘좌파 독재론’으로 표출됐고 그 출발점을 ‘검찰장악’에다 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선거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것을 목도한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했다. 이는 진보진영의 권력이 한층 강화된 데 따른 ‘위기감’ 표출이다.

검찰권력의 분산과 사정기관 간의 견제, 균형 원리를 실현하고자 한 검찰개혁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검찰개혁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신(新)권력’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생겨났다. 미지의 새로운 길을 선택했지만 막상 문을 나서면서 두려움이 밀려오는 현상과 비슷했다.

여기에 ‘조국 사태’는 도덕성 문제를 야기했고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추진할 정당성이 있느냐는 반발정서도 키웠다. 공정 가치를 중시하는 2030세대가 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4.15 총선을 ‘검찰개혁’ 이슈로 뒤덮게 됐다. 문재인 정부와 현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 심리’가 이를 통해 표출된 탓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청와대의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비리 의혹 감찰무마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 간의 갈등이 불거졌고 추미애 법무부장관 임명 이후 검찰에 대한 인사가 몰아치면서 ‘청와대 대 검찰’ 간의 대결 국면이 총선까지 이어지게 된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심판론은 검찰개혁 외 전 분야에 걸쳐 있다. 대표적으로 경제·민생 분야를 보면 세계경제 침체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일자리와 고용이 개선됐다고 여권은 주장하고 있지만 야권은 이 때문에 ‘경제 파탄’과 ‘민생 파탄’을 야기했다고 공박하고 있다. 또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두고 ‘국가예산 일자리’와 ‘재판 파탄’이란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권을 중심으로 ‘야당 심판론’이 대두되는 상황도 목도되고 있다. 검찰개혁에 발목을 잡는 보수야당의 행태를 심판해야 한다는 프레임이다. 비단 검찰개혁 뿐 아니라 한반도평화와 적폐청산 반대, 유치원비리 등 관행적 비리구조 청산에 반대하는 야당에 대한 심판정서가 상당히 고조됐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점을 감안하면 ‘야당 심판론’은 ‘촛불 정신’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한국당이 수구적 보수와 단절하지 못하고 친박 중심으로 당이 꾸려지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 될수록 ‘야당 심판론’의 기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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