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가수 김수희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김수희는 1953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여덟살로 부산에서 태어나 어릴적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했으며, 18살때인 1970년 미8군 쇼 무대에서 '블랙캣츠'라는 그룹의 멤버로 노래를 시작했다.

여성밴드인 블랙캣츠로 활동하며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1976년 업소에서 활동을 하던 김수희는 데뷔 곡'너무합니다(윤향기곡)'및 '남포동부르스', 리메이크 곡 '알뜰한 당신', 자작곡'정거장' 이 수록된 자신의 첫 앨범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첫 앨범을 발표하고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그녀는 다시 미8군 무대로 복귀하여 음악생활을 이어 갔다. 하지만 당시에 그녀는 뛰어난 작사·작곡능력으로 '나를 두고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가수 김훈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1982년 '멍에(추세호 작사작곡)'를 녹음할 당시 임신상태 였었고, 딸아이를 출산을 했지만 매니저는 여가수가 유부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방송활동에 문제가 될것을 우려해 미혼이라고 속이고 ‘멍에’를 발표하게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로서 아이를 숨기고 활동하는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생방송 무대에 딸을 데리고 나가 결혼 사실을 밝혔다. 당시 생방송에서 딸을 공개하면서 시청자들은 놀랐고 언론에서는 대서특필 됐다.

하지만 '애모'의 빅히트로 아이를둔 엄마 '김수희'에게 많은 사람들이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1983년 10월 4일, 대마초 사건 혐의를 받아 곤혹을 치렀다.
20일 만에 복귀한 뒤에는 작가에도 소질을 보인 바, 1983년에는 처음으로 가요계 현장 소설 《너무합니다》를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그리고 1984년에는 소설 《설(雪)》을 집필하여 출간해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해에 〈잃어버린 정〉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여 본격적으로 인기 가수 대열에 들어섰다. 김수희는 주로 자신만의 독특한 창법을 가미한 서정적이고 분위기 있는 노래만 부르다가 1986년에 기존의 노래들과 달리 빠른 템포의 트로트곡인 〈남행열차〉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여 현재도 사랑받고 있다.

이 때 기존의 창법 위주보다는 자신만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대학교 응원가, 야유회의 필수 노래로 자리잡았으며 대학로 성인 팬을 몰고다녔으며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특히 이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국민 가요로 선정되었다. 또한 그 당시에 여자 조용필이라고 불릴 만큼 상당한 가창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여자 조용필"이라는 닉네임으로 명성을 다진 그녀는 1989년에는 일본에 진출하였고, 1991년에 〈애모〉를 발표하면서 팝 발라드 음악으로 전향했다.

특히 이 곡은 발표 당시 처음에는 그리 주목받지 않다가 2년 후인 1993년 갑자기 대중들의 많은 요청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김건모, 신승훈과 신예 아이돌 힙합 댄스 음악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신인 가수들을 제치고 인기를 크게 얻어 KBS 가요대상 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 대상을 수상해 이색적인 결과를 낳았다.

1994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영화 《애수의 하모니카》의 시나리오를 직접 제작하고 영화 감독까지 맡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희프로덕션을 설립해 음반 제작자로도 활동하면서 신신애를 가수로 스카우트하고 무명이었던 편승엽을 유명세를 타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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