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앞선 확증편향의 결과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미래통합당 태구민 당선인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총선 당선자 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미래통합당 태구민 당선인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총선 당선자 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제 곧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할 태영호 당선인이 2년전에 냈던 『3층 서기실의 암호』에는 많은 일화들이 소개된다. 그 가운데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들도 많지만,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신분으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을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된 일화들도 적지않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들이다.

“2015년 5월 김정은은 자라양식공장을 '현지지도'했다. 공장 현황이 말이 아니었다. 새끼 자라가 거의 죽었다. 공장 지배인은 전기와 사료 부족을 이유로 들었으나 김정은은 “전기, 사료, 설비 문제 때문에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넋두리"라고 심하게 질책했다. 김정은을 수행하던 고위 간부들도 고개를 떨군 채 그의 지시를 받아쓰기에만 급급했다. 돌아오는 차에 오르면서 김정은은 지배인 처형을 지시했고 그 즉시 총살이 이뤄졌다.”(519쪽)

“2016년 5월 당대회 때는 김정은이 주석단에 앉아 있는 데도 당 대표들이 자꾸 졸았다. 그러자 회의실 온도를 14℃로 낮추고 냉풍을 내리 쏘아 수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다. 이 대회에서 평양시 철도국 정치부장과 국장을 반당분자로 몰아 당대표직을 박탈했고 그중 한 명은 자살했다.” (523쪽)

읽으면서 거북했던 것은 자신이 직접 보았을리 없는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했다더라”는 식의 간접 화법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마치 직접 확인이라도 한 것 같은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디선가 전해들은 얘기를 옮긴 것이었을텐데, 일말의 조심스러움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김정은 위원장 건강이상설도 그러했다. 탈북민인 태 당선인은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하다’는 강조 어법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북한 조선중앙TV에 공개된 김 위원장은 순천 인비료공장을 방문하여 자연스럽게 걸으며 담배를 피는 등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 탈북민인 지성호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면서 사망 시점까지 특정하며 곧 북한의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과는 99%의 확률을 비켜간 나머지 1%였다.

한반도를 흔들어 놓을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두 사람은 어째서 어처구니없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 것일까. 더구나 일반적인 탈북민도 아니고 국회의원 당선인이라는 공인의 신분이 아니던가. 여러가지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목적이 앞서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과신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붕괴이다. 태영호 당선인은 앞의 책에서 “나는 통일의 과정을 북한의 노예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는 것으로 묘사하고 싶다. 노예들이 촛불을 들 그날은 머지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성호 당선인은 미국에 갔을 때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안에서 민주주의가 일어나 북한 정권을 뒤집어엎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굳이 탈북의 선택을 한 두 사람이 북한 정권 전복의 날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우 그러한 목적이 앞서기에 그만큼 정보의 취사선택에 대한 객관적 판단 능력은 뒷전으로 밀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크게 들리는 확증편향에 갇힐 위험이 크다. 두 사람이 김정은 건강이상설이라는 가짜 뉴스의 전파자가 되었던 상황은 그 단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이미 태영호, 지성호, 두 당선인의 북한 정보는 신뢰할만한 것이 되지 못함이 드러났다. 앞으로 두 사람이 국회 안팎에서 북한의 다른 미확인 정보들을 마구 터뜨리고 그로 인해 여러 혼란이 빚어질 상황에 대한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당선인이 처해있는 조건을 생각하면 그들로부터 북한 권력 내부의 고급정보들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말처럼, 10년간 영국에서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었던 태영호 당선인은 고위직도 아니었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적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북한에서 어렵게 살다가 탈출한 지성호 당선인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탈북하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무슨 수로 북한 내부의 최고급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저 ‘카더라’ 수준에 불과한 두 사람의 말을 대단한 정보라도 되는 듯이 다루었던 언론들도 함께 반성해야 할 일이다.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객관적 정보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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