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군으로 광주영령에 죄책감”, “광주 5.18 소식,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실’ 접해”

[폴리뉴스 정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집회 때 자신은 군(軍)에 ‘사즉생’ 각오로 맞서자는 입장이었지만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의 ‘서울역 대회군’ 결정으로 5.18 광주가 외롭게 싸우고 희생자가 발생한데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전 광주MBC가 방영한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오월 영령’에 대한 생각을 묻자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매일 서울역에 모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대적 집회를 함으로써 군이 투입되는 빌미를 만들어주고는 결정적 시기에는 퇴각 결정을 내린 것 때문에 광주 시민들이 정말 외롭게 계엄군하고 맞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사실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고, 저뿐 아니라 광주 바깥에 있던 당시 민주화운동세력들 모두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부채의식이 이후 민주화운동을 더욱 더 확산, 촉진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그런 점에서 광주 오월 영령들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은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과 같은 그런 존재”라고 답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서울역 대회군’과 관련 “5월15일에 무려 20만 명이 서울역에 운집했다. 그 상황에서 군이 투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는데, 당시 집회를 이끌던 서울지역  대학 총학생의 회장단들이 해산을 결정했다. 그게 이른바 ‘서울역 대회군’”이라며 “그런데 나는 그때 그 결정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어 “그때 경희대 복학생 대표였는데, 나뿐 아니라 대체로 복학생 그룹들은 민주화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군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에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각오로 맞서야 한다, 그 고비를 넘어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 국제사회가 주시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가혹한 진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광주 5.18 소식,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서 경찰관으로부터 ‘진실’ 접해”

문 대통령은 자신이 광주 5.18 소식을 처음 접한 때에 대한 질문에 “5.18 전날인 5월17일 비상계엄령이 확대되고, 그날 바로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래서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이 되었던 중에 저를 조사하던 경찰관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경찰관들은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된 것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시민군들이 예비군이나 경찰 무기고를 열어서 무기를 들고 이렇게 맞서고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을 저에게 경찰정보망을 통해서 올라오는 소식들을 매일 매일 전해 주었다”고 당시 광주 상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 사실들이 당연히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석방되고 난 이후에 보니까 그런 사실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폭도들의 폭동인 양 그렇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저는 광주 바깥에서는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광주의 진실, 그런 것을 접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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