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의 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반지하 방 모여살던 기억 ‘공익부동산’ 변호사로 만들어
영동대교 밑 쫓겨난 '넝마공동체' 할머니들에게 보람 느껴

이강훈 변호사는 주거권 보호를 받지 못해 쫓겨난 사람들에게 변론을 해주기도 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거권을 위해 관련법 개정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최정호 기자>
▲ 이강훈 변호사는 주거권 보호를 받지 못해 쫓겨난 사람들에게 변론을 해주기도 하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거권을 위해 관련법 개정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최정호 기자>

[폴리뉴스 최정호 기자] 변호사의 부동산 분야 공익 활동은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그동안 공익을 쫓는 변호사들만이  철거민을 대상으로 변호 활동을 해왔다. 법의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관련법 개정 활동도 해왔다. 핵심 인물이 이강훈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얼마 전까지 참여연대 주거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법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늦은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이 변호사는 “검사로 재직할 수 있었으나 관료주의가 싫어 변호사를 택했다”고 했다. 변호사로 활동 중 돌연 미국행을 택했고 1년여 만에 귀국해 부동산 관련 공익 변호사로 첫발을 내딛었다. 

이 변호사가 공익 활동을 시작할 때는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가 적었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만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사회복지 및 주거복지 활동하는 변호사가 소소하게 있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이 ‘토지 공공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변호사는 “공익 활동하면서 좋은 변호사들을 한 사람씩 알게 됐고 지금은 소위 ‘베프’가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강훈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주거 취약 계층에게 관심 갖는 이유?
유년시절 경험이 크다. 어머니 생전에는 농촌 개량주택에서 편하게 살았다. 어머니의 작고로 아버지가 자식 다섯을 돌봐야 했다. 아버지는 직장(교사)에 다녀야 했고 나와 형제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서울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갔다. 반지하에 방 한두 개 있는 집이었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두침침한 서울의 반지하 방은 공황상태를 불러 일으켰다. 겨우 적응해 살았는데 아버지가 사촌에게 투자를 잘못해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아버지 사촌 집에서 살게 됐고 생활할 때가 없어 좁은 마루 한 편에서 커튼 치고 살았다. 유년 시절 가장 힘들었을 때였다. 변호사 하면서 주거 취약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보게 되면 신경이 쓰이고 도와주고 싶다. 

부동산 공익 변호사가 된 이유?
변호사 6년차 즘 갑자기 일에 싫증 느껴 아내를 설득해 미국 유학을 택했다. 1년짜리 LLM(법학 석사) 과정을 밟고 귀국하려 했는데 아내가 방문 학자로 캘리포니아에 있게 돼 미국에 더 체류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 봉사활동 하려고 ‘시니어 리갈 핫라인’이라는 시민단체에 찾아갔다. 노인 주거문제, 상속, 유언, 증여 등에 대해 전화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단체였다. 이 단체에는 변호사, 자원봉사자, 건축가 등이 소속돼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하려고 했는데 매일 가게 됐다. 몇 달 봉사하면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또 미국이라는 나라가 공공의 영역이 발달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체는 1970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봉사활동으로 변호사가 주거 분야에서 어떤 공익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변호사로 기억에 남는 공익 활동?
민변 통해 강남의 영동대교 밑 도로를 무단 점거한 ‘넝마공동체’를 알게 됐다. 윤팔병(전 아름다운가게 대표) 씨가 운영하는 단체로 할머니들이 헌옷을 분류하면서 살아가는 자활공동체다. 이들은 구청의 명령으로 쫓겨났다. ‘할머니들이 텐트치고 사니까 냄새가 너무 난다’ ‘거지들 숙소냐’ 등의 민원이 심해져 구청이 행정집행한 거다. 이들은 탄천으로 쫓겨났고 살겠다고 버텼다. 탄천에서의 철거 과정은 국가 가하는 폭력의 정도가 지나쳤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했을 정도였다. 이때 법률 지원을 해줬고 다 고소고발 했다. 할머니들이 많이 고마워했다. 그분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을 알게 됐고 주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체들이 이 무렵 많이 결성된 것 같다. 

재건축 재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2012년에는 강제집행이 많았다. 주로 재개발 쪽이었고 폭력이 난무했다. 국가의 공공 집행 절차가 엉망이었다. 법률가가 직접 집행하는 게 아니라 방치했다. 개선의 필요성을 느꼈다. 무작정 ‘도시정비사업’을 공부했다. 내가 알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전문성을 갖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한 20여 개의 현장을 돌아다닌 것 같다. 주로 서울시 뉴타운 문제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법률 상담해줬다. 

재건축 재개발의 문제점은?
재건축 재개발을 하게 되면 반드시 소유자 간에 마찰이 발생한다. 사업하면 누군가는 구속되는 현실이다. 재개발에서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끝내는 절차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2~2013년 서울시 뉴타운이 과다 지정됐다. 재건축 재개발에 과도한 특혜가 있었다. 재개발은 공공성이 떨어진다. 민간에 의존하기 때문에 ‘투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거세입자들의 목소리도 들어봤고 현금청산자들 시점에서도 바라봤다. 원주민들은 소득과 자산이 부족해 추가 분담금이 나오면 감당 못한다. 또 상당수가 노인이다. 일을 할 수도 빚을 질 수도 없다. 노인은 생활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다른 곳으로 옮기면 생활 기반이 깨져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 더 좋은 방식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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