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오찬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2020.6.17 [청와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오찬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2020.6.17 [청와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반도 정세가 다시 긴장 국면에 빠져들었다. 북한은 6월초부터 대남 비난을 릴레이식으로 재개하면서 ‘말 폭탄’을 퍼붓던 중에 드디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6.16)하여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부쳤다. 북한은 지금 대내외적으로 매우 엄중한 위기 국면에 처했다. 북핵 협상의 실패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황에 경제제재가 3년 째 지속되고 있다. 경제발전 전략은 고사하고 주민 생활마저 극도로 피폐해졌다. 코로나 정국과 함께 딜레마적 상황에 처한 북한이 국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① 한반도 긴장 조성: 폭파 이벤트 

 북한은 대북 경제제재 전선을 균열시키기 위해 한국의 약한 고리를 쳐야 한다. 그와 더불어 내부적인 통합·단결을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에 경제적 실패와 좌절을 남한에 떠넘겨 대남 적개심 고취와 함께 대내 긴장 분위기를 한껏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대남전략은 대미전략의 하위체계로, 대남 도발의 수준과 방향은 북한의 전략적 기조 위에서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세 차례의 폭파 이벤트를 연출했다. 먼저,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2008.6.27), 다음으로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2018.5.24), 그리고 이번 세 번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6.16)로 세계의 뉴스 초점을 모았다. 앞의 두 사안은 핵합의 관련 이행 조치의 일환인 ‘폭파 쇼’였다면, 이번 조치는 남북 합의의 상징물을 붕괴시킨 폭파 이벤트로 남북관계의 파탄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했다. 이어서 북한 총참모부의 군사적 행동을 암시한 ‘공개보도’로 미뤄보면 앞으로도 폭파 이벤트를 비롯하여 남북관계 파탄 조치가 몇 차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② 남북관계: 예고된 파탄

‘우리는 다르다’ 이는 대북 정책과 한반도 평화전략에서 문재인 정부 스스로 자평하는 입장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파 정부와는 달리 북한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런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 북한은 결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오히려 문 대통령에게 많은 양보와 배려를 해줬는데도 돌아온 것은 전혀 없다고 여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데 먼저 5억 달러를 송금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엄청난 경협 보따리를 풀었다. 이처럼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한 대통령을 만나 주는데 남쪽에서 큰 예물을 내놓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아무런 대가없이 문 대통령을 크게 예우했다. 백두산 부부등정을 비롯하여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까지 하도록 크나큰 영광을 베풀었다. 비록 후불이지만 북한이 바라는 대가를 문 대통령이 반드시 지불할 것으로 타산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재해제 역할과 실효적인 대북지원 두 가지였다. 

2018년 초의 평창 화해 무드 속에서 이어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쌍방의 합의 이행을 약속했지만 사실상 북측은 남측의 대북경협만을 노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북한은 제재해제는커녕 빈손뿐이었다. 북한 입장으로서는 2년 반 동안 그야말로 스스로 ‘희망 고문’을 당한 셈이다. UN 제재국면이 변명이 되기에는 평양은 인내의 한계를 넘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참사(2019.2.29)로 거의 맨붕 상태에 빠졌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이 제안은 남한 당국의 어드바이스(조언)로 알려졌는데, 이 제안을 믿고 따른 평양의 분노와 실망은 엄청났다(<중앙일보> 6.17). 그런데 하노이 북·미 협상 결렬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 분야는 북한의 분노 표출 시기의 지금까지 거의 개점휴업 상태였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으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 파탄은 남측이 자초한 결과라고 하겠다.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 조선중앙통신은 17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③ 김여정의 담화: 제2인자 위상 굳히기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분노의 삐라 담화’를 발표하였다(6.4). 여기서 대북전단(삐라)를 살포한 탈북자들을 “쓰레기, 똥개, 오물들”로 비난했다. 두 번째 담화에서는 탈북자들과는 다른 ‘배신자들’을 비난했다(6.13). 이 담화에서는 특히, “2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당장에 해낼 능력과 배짱이 있는 것들이라면 북남관계가 여적 이 모양이겠는가”라고 질책하면서, “말귀가 무딘 것들이 … 나름대로 우리의 의중을 평하며 횡설수설해댈 수 있는 이런 담화를 발표하기보다는 이제는 련속적인 행동으로 보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대북전단 문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문제가 사실상 본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며칠 동안 남한 당국이 담화에 놀라 즉각 반응을 보였지만 남북관계 파국 책임을 다른 측에 덮어씌우는 등 ‘횡설수설’하는 행태를 보니 아직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는 한탄이다. 이에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고 하여 대남 기대(제재해제 역할 및 대북지원)를 일단 접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앞으로는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메시지였다.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오후,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의 결실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했다. 북한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한 뒤 본격적인 행동의 첫 신호탄이었다. 남북연락공동사무소 전격 폭파는 두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하나는 연락사무소는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3년 동안의 최대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한반도 평화 구축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를 폭파시킴으로써 문 대통령의 치적 자체를 완전히 폭파시켜버렸다. 다른 하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사흘 전에 “멀지 않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을 선언했는데, 이를 실행함으로써 언행일치의 과시와 함께 그의 권위를 한층 드높였다. 

마침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북한 내 권력 서열 제2인자로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위원장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여기서 위원장 즉, ‘최고존엄’은 초월적 존재라면 북한 제2인자인 김여정이 국가 수반으로 남한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너로 격상된다. 김정은은 미국 대통령이나 중국 주석을 상대하는 위상이다. 김여정이 대남문제에서 악역을 맡고, 북미(북중) 정상회담이나 대남 포용의 장면에서 ‘민족의 태양’으로 떠오르는 ‘최고존엄’의 모습을 그렸다. 이는 남한 사회에 환호 세력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기대에 근거한다. 물론 허망한 개꿈에 그칠 수도 있다. 어쨌든 비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제2인자라고 하더라도 후계자라기보다는 ‘최고존엄’을 보좌하는 위상에 불과하다. 수령의 권력 누수를 초래할 수 있는 후계자 구도를 모색할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④ 북한 재정난 타개책: 공채 발행 

북한 김정은의 통치자금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마저 거의 말랐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에 북한 당국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17년만에 공채 발행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4.20).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대북제재로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 등 국제 금융기구에서 도움을 얻을 수 없고 중국의 지원도 어려운 상황에서 2003년 이후로 처음으로 공채를 발행했다고 밝혔다(4.27). 공채 규모는 북한 예산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알려졌으며 북한 내에 은닉된 외화를 가능한 한 많이 회수하기 위한 데에 발행 목적이 있다. 공채는 기관기업소, 돈주(신흥상인 세력), 재포(재일교포), 화교 등을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상 강매 방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공채 발행은 사회주의경제의 숫자 놀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곧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금번 공채 발행 경우 독특한 점이 엿보인다.

북·중 무역재개 국면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북한 무역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1월 말 봉쇄했던 북·중 국경을 6월부터 개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하면서, “최근 무역회사들이 6월부터 공식 무역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지시 전달과 무역 기관들이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주목된다(<조선일보> 5.27; <동아일보> 5.28). 북한 경제는 지난 해 마이너스 6% 성장을 기록한데다, 대중 무역 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만큼 셀프 봉쇄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다시 개방한 데에는 더 이상의 경제난을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4월 북·중 공식 무역 재개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역 유입을 우려한 중국의 난색으로 무산되었다가, 김 위원장이 5월 초 시진핑 주석에게 구두 친서를 통해 무역 재개 요청을 하면서 성사되었다. 이즈음 김 위원장이 시 주석에게 코로나 방역 성과를 축하하는 구두 친서를 보낸 사실이 보도되었다(<조선중앙통신> 5.8). 중국에게는 북한의 안정과 체제유지가 UN 제재유지 준수보다 우선되는 전략적 가치이다.

여기에 공채 발행의 성과를 담보하는 방안이 나타났다. 북한의 기업소, 무역회사, 돈주들은 대중 무역을 위해 당국으로부터 무역허가증(무역 와크)을 재발급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역 공채를 구입하거나 기관·기업소의 경우 중앙은행 공채를 구입해야 한다. 북·중 무역의 본격 재개는 좀 더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데 주목되는 점은 북한 당국이 무역 허가증 발급으로 공채 구입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내부 자금 확보에 효율적인 방안일 수 있다. 그 결과 북한이 무역 재개와 함께 공채 발행으로 어느 정도 통치자금과 국가재정 확보가 가능해지면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금 확보와 경제 회생의 수준은 여전히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편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내각에서 공채와 관련 최근 1차 재정 총화(평가)가 김여정에게 직보됐다고 한다, 여기서 김여정이 공채 관련 부서들의 업무 현황을 지시·관리하는 총책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데일리 NK> 5.27). 자금 문제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돈 문제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외 누가 있겠는가!

⑤ '새로운 길': 대미·대북특사, 평화대가 
  
북한의 대남 도발과 한반도 긴장 조성은 미국 대선과 관련된 대미전략과의 연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한반도 긴장 고조가 CNN 뉴스 초점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트럼프 대선 캠프 측에 전혀 반갑지 않다. 한반도 문제 자체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측에 매우 좋은 비판거리가 된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가 미국 시민의 이목을 끄는 뉴스가 되는 상황은 트럼프에게 불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외면하고 모른 척 하기는 힘들 것이다. 

2012년 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 가동 시기의 북미관계가 2020년 6월 현재 상황의 데자뷰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유예로 이른바 '2.29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북한이 4·15 축전에 맞춰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자 4월 초 미국 특사가 비밀리에 급거 평양을 찾았다. 그럼에도 북한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위성’ 발사를 단행했다. 미국은 ‘2.29 합의’ 위반으로 북한을 성토했지만, 대선 국면에 북한의 대미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8월에 다시 비밀리에 평양에 들어갔다. 이처럼 2012년 4월과 8월 오바마 재선 국면에서 북한 정권과 시도했던 2차례 비밀 접촉 사례가 트럼프 재선 국면에서 오버랩 되고 있다.
  
   <한국의 대미특사, 미국의 대북특사>

지금 평양은 워싱턴의 손길을 기다린다. 북한에게 미국의 제재 전선에 묶여 있는 한국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은 남북협력을 위한 대미 설득에도 한계를 보였고, 인도적 지원조차 치졸하게 좌고우면해왔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남한과 얘기할 필요도 없고 특사를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했던가? 한국은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대북특사가 아닌 대미특사가 필요하다. 한반도 긴장 고조는 트럼프 측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바이든 측에 매우 유리한 비난의 빌미만 된다. 트럼프는 ‘말귀가 무디지’ 않다. 워싱턴이 평양에 대북특사를 보낸다면, 대북지원은 모두 한국이 부담하겠다고 제의해야 한다. 여기서 한미 공조가 빛을 발할 수 있으며 북한, 미국, 한국 3자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   

  <대가 없는 평화는 없다>

우리는 북한의 좌절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와 함께 이제 북한 당국은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더 이상 ‘공짜 평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가 없는 평화는 없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설득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대북지원을 과감하고 ‘배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우선 인도적 차원에서 코로나(COVID 19)방역 관련 대규모 지원을 즉각 단행하고 아울러 식량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평양종합병원 건설 프로젝트를 우리가 맡아서 추진해야 한다. 병원 건설은 어디서나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되어왔다. 대북 인도적 지원 과정에 대한적십자가 전면에 나설 때이다. 통일부는 일단 뒤로 물러서고, 평양에 대한적십자사의 깃발이 힘차게 나부끼도록 해야 한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